최근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를 보면 TV를 켜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할 지경입니다. 수없이 많은 한탄과 분노가 전 국민을 울분에 휩싸이게 했습니다. 여러분이 이 글을 읽을 즈음에도 울분이 늘면 늘었지 결코 줄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피차의 정신건강을 위해 뻔하고 속 터지는 서론은 건너뛰고자 합니다.

우리가 맞이한 초유의 사태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을 것입니다. 혹자는 대통령의 책임이라고 할 것이고 혹자는 여당이, 또는 정치권이 문제라고 할 것입니다. 이참에 조선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한국은 뿌리부터가 잘못되었다는 주장 또한 있겠지요. 다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글에서 저는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요즘 국내 뉴스가 워낙 대단했지만 한동안 해외 뉴스 역시 만만치 않았습니다. 브렉시트부터 시작해서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까지. 일본은 물론이고 프랑스와 독일마저도 우경화되고 있다고 합니다. 극우가 힘을 얻는 세계적 동향은 물론 염려되지만 그게 지금 우리가 겪는 사태와 도대체 무슨 연관이 있느냐는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큰 맥락에서 이 둘은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가 사상을 무기로 휘두를 때 일어날 수 있는 온갖 악(惡)에 시달린 서구의 역사 때문인지 그로부터 유래한 현대의 시스템에서 말하는 ‘올바름’이란 상당히 좁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특히 도덕에 대해서는 법을 포괄하는 규범, 다시 말해서 도덕의 상당 부분을 사회가 지향할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선택에 달린 것으로 간주하고 있지요. 이는 곧 우리가 미덕이라고 부르는 것 중 상당수가 사회적 합의의 대상이 될 수도, 정당성을 얻고 규범으로 기능할 수도 없다는 뜻입니다.
 
  난민 문제에 대한 유럽의 극우적 발언이나 도널드 트럼프에 열광한 미국 내 지지자들을 보면 재미있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자기네 공동체가 주창하는 미덕 또는 대의와 당면한 이익이 충돌할 때 당당히 후자를 고른다는 점입니다. 미덕의 입지가 좁아진 사회에서는 개개인의 이기심으로 타인이, 나아가 전 세계가 대가를 치를 선택을 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이번 사태는 물론 개인의 만행이고 집단의 부패이며 시스템의 실패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도덕과 상식이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설 자리를 잃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기성세대의 한 사람이자 교육자로서 여러분에게 앞으로도 과연 바르게 살아가라고 말할 수 있을지 막막한 동시에 바로 지금 이 사태를 보았기 때문에 더더욱 ‘바르게’가 중요한 시점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해방 이후 서구로부터 들어온 많은 것에 대해 그랬듯 그들이 지향하는 무색투명한 철학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했습니다. 하지만 공동체적 미덕이 없는 사회는 이기심에 얼마나 취약한지요. 소극적인 올바름, 소극적인 정의를 넘어서 좋은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어떤 미덕과 가치를 실현해야 하는지 적극적으로 이야기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노인숙 교수
중국어문학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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