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청바지의 키워드는 ‘대장장이’입니다. 중앙대에 대장장이가 있다는 것 다들 모르셨죠? 본인의 생각을 하얀 종이 위에 까만 글자로 녹여내 시로 탄생시키는 전명환 학생과 머릿속에 떠다니는 사색을 녹여내 연극 작품으로 탄생시키는 김상훈 학생이 이번주 청춘인데요. 그들의 ‘생각 대장간’에 함께 들어가 볼까요? 아차, 그 전에 두 청춘의 뜨거운 매력에 녹아버리지 않도록 조심하시는 것 잊지 마세요! 
 
사진제공 전명환 학생
바쁜 세상 속 당신들의 상처를
글로 매만져주고 싶어요
 
생각을 글로 풀어 적는 게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닙니다. 그 글로 다른 사람을 촉촉하게 만드는 건 더욱 어려운 일이죠. 이번주 첫 번째 청춘은 이미 중앙대에 글쟁이로 소문이 자자한 전명환 학생인데요. 「방어진 시외버스 터미널」은 제36회 계명문화상 시 부문에서 당선된 그의 작품입니다. 그의 감수성에 함께 젖어보실래요?
 
 
 
  방어진 시외버스 터미널
  - 졸업 작품1) 
                                                                       전명환
  
  칼이 떠다니는 바다에는 술 위에 배가 뜬다
  바람을 먹고 자라는 배들은 만석이 될 때까지 해를 거두었다가, 얼마 안
되는 빛까지 잔에다 들이붓고 말하는 법을 까먹은 등대만 눈을 깜빡인다
  바다 향이 이렇게 독하다
  동네에 불을 지르는 생각 같다
  생각
 
  소년은 쥐고 싶은 것이 많다
  한 번쯤 쥐어 본 것들을 다시 놓지 않겠다고 결심할 때 소년은 과거로
도망치고
  이 동네 사람들은
  바다에 떠다니던 칼을 하나씩 주워 온다
  대부분 사람을 죽이기 손쉬운, 생김새다
  생김새니까 죽은 사람만 있고
  죽인 사람은 없다
  칼을 무서워하는 뜨내기들은 바람에 귀가 배여 있다
  뜨내기들이 그렇다
  
  나 또한 집에 칼을 세워두었다
  나름 살 만한 동네라는 말이 거기서 나오고
 
  몇 년째 일기에 꼭 쓰는 말이 있다
  이 동네 사람들은 허세를 부린다 술을 마시면 누구나 그렇고 남자들은
대게 그렇다
  그러니까 문제인 것이다
  검은 비닐엔 만 원이 겨우 담기는데
  게다가 단골이라니,
  빨리 이 동네를 떠나야겠다는 생각뿐
  가끔은 당신의 칼과 악수하는 상상
  그때는 기쁘게 속삭이고 싶다
 
  아저씨, 나는 더 무서운 사람을 알아요
 
                     
1) 한국의 고등학생들은 일반적으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난 후부터 졸업 때까지 다양한 종류의 아르바이트를 한다.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흥미로운 사실은 기성세대들이 그것을 ‘사회경험’이라고 부른다는 점이다. 이는 한국의 속담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에서도 볼 수 있는 정서이며 이것이 곧 한국 청춘들을 젊음과 열정이라는 이름하에 ‘굴릴’ 수 있게 한 민족적 배경이다. 홍민욱, <한국 사회에 나타나는 한국어>, 2015, 13p 
 
 
 
  -시를 다 읽고 나니 명환씨의 어떤 경험에서 이런 구절들이 탄생했는지 궁금해져요.
  “방어진이 있는 울산의 바다 옆엔 공장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어요. 그곳 편의점에서 꽤 오랜시간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공장일이 너무 고되다 보니 대부분의 근로자가 퇴근하며 항상 제가 일하는 편의점에 들려 술을 사 가시더라고요. 그런데 하루는 술에 잔뜩 취한 아저씨가 와선 중얼중얼 뭐라고 시비를 거는 거예요. 오래 일을 했기에 취객 대하는 데에는 도가 텄던 때라서 적당히 반응을 해드리고 묵묵히 제 할 일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아저씨가 이리 와보라고 하더니 제 귀에 대고 ‘너 말 그딴 식으로 하면 내가 나중에 와서 너 죽일 거야’라고 하시더라고요.”

  -네?
  “당황스럽죠? 그런데 당시 전 그 말이 별로 무섭지 않았어요. 정말 위험한 짓을 할 생각이라면 품에 칼이라도 들고 다니면서 절 위협했겠죠. 이미 많이 취해서 정신이 없는 사람이었고 사는 게 힘들 아저씨의 마음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됐거든요. 아저씨의 위협은 제겐 그냥 허세일 뿐이었죠. 이런 경험을 토대로 적게 된 시예요.”

  -눈앞에 그곳의 모습이 그려지는 것 같아요.
  “당시 심사위원분들은 심사평에서 이 시를 읽고 나니 방어진이 궁금해진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그 말이 참 좋더라고요. 하지만 지금은 울산과 방어진을 떠났으니 전 이 시에서 벗어날 때가 됐어요.(웃음)”

  -어떤 뜻인가요.
  “「방어진 시외버스 터미널」은 울산에서 20년을 보내며 쌓아온 제 감정들을 모두 풀어놓은 작품이에요. 이젠 그 후의 시간을 담아내야 할 때죠. 울산을 떠난 후의 시간은 약 2년밖에 되지 않아요. 그래서 이 2년을 작품으로 담아내는 게 저의 남은 과제예요.”

  -명환씨는 언제 처음으로 펜을 쥐었나요.
  “본격적으로 글을 써보자고 알지도 못하는 작법책을 뒤져보고 그랬던 건 중학교 2학년 때부터예요. 김진명 작가의 『황태자비 납치사건』을 읽고 소설을 쓰는 게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갖게 됐죠. 15살이었던 제가 할 수 있는 건 ‘딱 이거다’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펜을 들게 되는 그 순간이 궁금해요.
  “떠오른 생각과 문장을 바로 글로 옮겨 적어 메모하는 습관이 있어요. 이렇게 적어두었던 메모들에서 작품이 시작되면 펜을 들죠. 메모하는 습관을 들이는 데에 꼬박 3년이 걸렸어요.(웃음)”

  -역시 글쟁이답네요.
  “요즘 사람들은 너무 바빠서 내가 나에게 말을 거는 시간이 참 부족하죠. 그런데 보통 영감은 이런 때에 떠올라요. 예를 들어 수업 시간처럼요.(웃음) 학창시절 선생님이 수업하실 때 몰래 딴짓 하는 게 그렇게 재밌었잖아요. 이런 것처럼 굳이 독립된 공간과 시간에 있지 않더라도 주변의 모든 것들을 배제하고 나만의 시간을 스스로 갖는 순간이 꼭 필요한 것 같아요. 굳이 메모를 위해서가 아니더라도요.”

  -언젠가 ‘짠’하고 등장할 작품들이 벌써 기대가 되는데요?
  “원래는 문학을 통해 사람들의 상처에 집중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2000년대 이후가 되면서 문학의 세계가 좁아지고 사회적으로도 개인이 뭔가의 변화를 만들어내기 어려운 구조가 돼서 요즘은 자신이 없어졌어요. 즉 나 혼자서는 변화를 만들어내기가 어려운 사회가 되어버렸잖아요. 그래서 이런 걸 알리고 싶어요. 개인이 무언가를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대해서 우리 세대가 짚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아직 직접 얘기하기엔 경험과 연륜이 부족하니 지금은 그런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나’를 얘기하고 있죠.”

  -쭉 펜을 놓지 않으실 거죠? 이런 생각을 계속 글로 남겨주길 바라요.
  “사실 요즘 같은 시대에 글을 쓴다고 하면 굶어 죽을 거라고 얘기를 하잖아요. 그렇다고 교편에 서자니 나처럼 가난하게 글 쓰는 애들을 양성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어요. 앞으로 문학이 엄청난 사랑을 받지 못하더라도 글을 쓰는 사람들이 존중받을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어요. 혹은 제가 그 세상에 이바지해서 문학인을 재생산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되면 참 좋겠네요.”

  -청춘, 걱정하지 말아요. 문학이 갖고 있는 힘을 우리는 잘 알고 있잖아요.
  “요즘 대학생으로 살기 참 버겁죠. 이건 버티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살아내는’ 거잖아요. 흘려보내기도 하고 지나치기도 하면서 겨우겨우 살아내는 것처럼요. 보장 없는 세상을 막막하게 살아가면서 이야기들을 쌓아두고 나중에 가서 이 시대에 대해 증언할 수 있는 사람들이 청춘이라고 생각해요. 살아내야 하는 우리 존재들, 힘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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