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성훈 교수가 새로운 사회주의 수단으로서 역사적 실험주의를 설명하고 있다.

20세기 말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이 몰락했다. 그 후 사회주의는 실패한 이데올로기라고 평가받았고 존재감을 잃었다. 하지만 프랑크푸르트학파 3세대인 악셀 호네트는 사회주의를 다시금 조명한다. 그는 사회주의가 결코 실패한 정치적 이념이 아니며 오늘날 새로운 사회주의를 창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호네트가 생각하는 사회주의는 무엇일까. 지난 25일 302관(대학원) 301호에서 호네트의 제자인 문성훈 교수(서울여대 기초교육원)가『사회주의 재발명』을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사회주의

  프랑크푸르트학파는 현 사회비판과 함께 대안적 사회를 제시하는 사회비판이론을 학문의 기초로 삼는다. 프랑크푸르트학파는 당시 사회의 대안적 체제를 사회주의라고 생각했다. 사회주의야말로 진정한 자유를 이룩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프랑크푸르트학파는 사회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계획경제를 제시했다. 계획경제는 스스로 시스템이 만들어지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달리 인간이 스스로 사회를 계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프랑크푸르트학파가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변화한다. 사회를 계획하고 통제하는 인간이 사회 안에서 계획되고 통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공론장 이론을 제시한 위르겐 하버마스 등 2세대 프랑크푸르트학파가 출현하기도 했다.

  그가 사회주의를 되돌아본 이유

  3세대 프랑크푸르트학파 악셀 호네트는 그만의 독자적인 사회비판이론을 제시했다. 그는 ‘인정’과 ‘무시’를 키워드로 삼아 현 사회를 바라봤다. 호네트는 서로를 ‘무시’하는 사회질서가 형성됐으며 그 대안으로 사회주의를 제시했다. 호네트는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 ‘ 아랍의 봄’등을 불평등에 대한 분노로 분석하며 분노는 상황에 대한 비판은 될 수 있지만 대안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회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호네트는 사회주의의 본래 이념을 통해 새로운 사회주의를 탐구하고 낡은 사회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호네트가 사회주의를 대안으로 다시 제시하게 된 것은 사회주의가 발생한 배경을 주목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는 프랑스 혁명이 제시한 3대 이념인 자유, 평등, 박애를 이룩하기 위해 탄생했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 끝에 쥐어진 자유는 시장에서의 자유에 불과했다. 축소된 자유 속 인간은 시장에서 자유를 누렸고 그 과정에선 필연적으로 경쟁이 발생했다. 경쟁은 불평등을 낳았다. 사회주의자들은 자유, 평등, 박애를 함께 실천할 방안을 고민했다. 로버트 오언, 생 시몽 등 사회주의자들은 노동협동조합, 중앙집권적 계획경제, 협동조합식 공동체 등을 내세웠다. 하지만 사회주의는 자유, 평등, 박애의 실현보다는 중앙집권적 계획경제를 강조하면서 변질된다. 소련은 그 대표적 예다.

  호네트는 많은 사람이 소련의 몰락을 중앙집권적 계획경제의 몰락이 아니라 사회주의의 몰락이라 착각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과거 사회주의 국가는 중앙집권적 계획경제를 사회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도구가 아닌 목적 그 자체로 설정하면서 패망의 길을 걸었다고 주장했다. 호네트는 중앙집권적 계획경제가 3대 이념을 실현하는 방법이 아니었을 뿐이지 다른 방법을 통해 이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사회주 의가 현 사회에 대한 대안이라고 확신했다.

  상호작용을 통한 사회적 자유

  호네트는 확신의 근거로 사회주의가 내포한 ‘사회적 자유’를 들었다. 사회적 자유에서는 타인을 자유의 방해로 인식하지 않고 자유의 조건으로 바라본다. 이로써 사회적 자유는 서로를 위한 자유다.

  사회적 자유와 반대되는 것은 자본주의의 ‘개인주의적 자유’다. 개인주의적 자유는 사적 소유를 정당화하고 시장에서의 자유를 보장한다. 이런 개인주의적 자유는 이기주의로 전락하고 이는 경제적 불평등, 착취, 지배의 원인이 된다. 이 관계에서 타인의 자유는 자신의 자유를 방해하는 요소다.

  사회적 자유는 개인주의적 자유와 다르다. 사회적 자유에선 자신의 자유와 타인의 자유가 충돌하지 않는다. 오히려 타인의 자유를 확보해야 자신의 자유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호네트는 사회적 자유를 획득해야만 자유, 평등, 박애를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본주의 체제 속 인간은 타인을 객체로 인식하면서 진정한 의미의‘인정’을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객체로서 인정하는 것은 진정한 인정이 아니다. 하지만 사회주의에선‘인정’이 가능하다. 사회주의 속 타인은 나와 같은 주체이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에서 사회주의는 불평등을 해결할 대안으로 대두된다.

  그가 제시한 새로운 사회주의

  호네트는 이전에 실패한 사회주의를 그대로 답습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사회주의의 재발명을 위해 낡은 사회주의를 청산하고자 했다. 그는 중앙집권적 계획경제를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대안일 뿐이었으며 시장을 사회화할 수 있다면 굳이 계획경제를 유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과거의 사회주의를 현실에 적용하기엔 경제구조가 과거와는 많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과거 사회주의자들의 주장과 같이 프롤레타리아를 혁명 주체로 삼기엔 오늘날 직업의 다양성, 이질성 등이 고려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생각한 사회주의는 사회적 자유를 통해 자유, 평등, 박애를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주의다. 호네트는 새로운 사회주의로서 역사적 실험주의와 민주적 생활양식을 제시한다. 호네트는 20세기 말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 몰락의 역사에서 벗어나 사회적 자유의 실현을 보여주는 제도적 성과에 주목한다. 현재 실행되고 있는 사회복지권, 최저임금제, 노동조합 등이 그 예다. 즉 사회주의는 정책을 만드는 실험이자 탐색 과정이다. 또한 호네트는 기존처럼 사회주의를 경제적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것을 거부했다. 그는 정치적 관점, 친밀성 관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주의를 바라볼 것을 강조했다.

  한국과 사회적 자유

  호네트에 관한 강연이 끝나고 문성훈 교수와 강연에 참석한 김누리 교수(독일어문학전공)가 호네트의 사회주의를 통해 한국 사회를 논하기도 했다.

  현재 한국에서 유행하는 단어 중 하나로 ‘금수저-흙수저’가 있다. 부유층은 계속해서 부유하고 극빈층은 계속해서 가난하다는 의미다. 문성훈 교수는 “최근 사회는 금수저-흙수저 문제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 며 “하지만 단순한 분노보다는 금수저-흙수저 논란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호네트의 주장대로 사회적 자유가 있는 사회주의가 현 사회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누리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사회주의는 레드 콤플렉스로 인해 쉽게 다뤄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지난 10월 정의당은 민주사회당으로 당명을 변경하려고 했다. 하지만 ‘사회’라는 단어가 공산주의를 내포한다는 이유로 당명 변경이 취소된 바 있다. 김누리 교수는 “불행하게도 한국 사회는 사회 없는 사회다”며 “이는 일종의 레드 콤플레스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적 자유가 있는 사회주의를 통해 한국 사회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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