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있는 척’이나 ‘교양도 없이’라는 표현을 접하면 교양(敎養)의 ‘과잉’뿐만 아니라 그 ‘결핍’도 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전자는 아마도 내면적인 성숙함이나 인격의 형성 없이 겉으로만 세련된 행동과 지식을 보여주는 것을, 후자는 인간이 최소한 가져야 할 품위의 결여를 말하는 것 같다. 
 
  교양(Bildung)은 ‘도야(陶冶)’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서구 전통에서 교양은 먼저 육성(Kultur)의 개념과 연관되어 자신의 자연적 소질과 능력을 계발하는 인간의 독특한 방식을 의미하였다. 그러나 교양은 빌헬름 폰 훔불트(W. v. Humboldt)에 의해 단순한 능력 혹은 재능의 계발 이상의 것을 의미하게 된다. 교양은 “정신적이고 도덕적인 정진(精進) 전체에 대한 인식과 감정으로부터 조화롭게 감성과 성격으로 흘러들어 가는 인간의 본질적 특성”으로 승격된다. 이러한 교양개념은 공동체적 감각인 ‘공통감각(Sensus Comunius)’과 연결된다. 공통감각은 로마의 황제이자 스토아 철학자 아우렐리우스(M. Aurelius)의 ‘공동의 상상력’에 기초하는 공공복리에 관한 감각, 사회에 대한 사랑, 자연스러운 애정 등을 의미한다. 데카르트를 비판했던 이탈리아 철학자 비코(G. Vico)는 근대 학문의 우수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한계를 지적하면서 ‘사려 깊음(Pruden-tia)’과 올바르고 바른 것을 말하는 ‘능변(Eloquentia)’을 강조한 고대인의 지혜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역설한다. 근거에서 나온 앎, 즉 이성의 ‘추상적 보편성’이 아니라 구체적 상황에서 보편적인 것을 찾아가는 ‘구체적 보편성’으로서 공통감각의 형성은 인간이 협소한 자기 이해와 이해관계의 한계를 벗어나 사회적 안목을 길러주게 된다. 
 
  우리 시대의 교양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최근 물의를 일으키는 소위 배운 사람들의 행태를 보면 고매한 인격이나 도덕성은커녕 최소한의 교양도 갖추지 못한 사람들처럼 보인다. 그들은 분명 고등교육을 이수하였고 어려운 과정을 통해 사회에서 자신의 위상을 확보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런 ‘출세’의 과정을 거치면서 그들의 내면세계는 점차 삭막해지고 이해관계를 다루는 자동계산기로 변질된 것처럼 보인다. 물론 그들에게 나름 삶의 고충이 있었겠지만 그들의 계산법은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큰 상처를 주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니체(F. Nietzsche)는 이미 오래전에 허식에 가득 찬 “교양 계급과 국가는 대단히 천박한 화폐 경제에 마음을 빼앗겼다. 세상이 이렇게 세속적이었던 적이 없었고, 사랑과 선의가 빈약했던 적은 없었다”고 한탄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의 일탈로 간주해야 할지 아니면 사회 전반에 만연해있는 일반적 상태로 파악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다만 교육, 특히 대학의 교육이 이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대학에 부과되는 책임은 교육적 차원에서도 제기될 수 있지만 대학 문화라는 생활세계에서 생겨나는 요청일 수도 있다. 먼저 대학에서 제공되는 교양과목도 교양의 본래 목표를 벗어난 왜곡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지금 상황이라면 차라리 교양이라는 이름을 포기하고 ‘기초교육’과 같은 현실에 맞는 이름을 찾는 것도 하나의 방책이다. 학생들은 수많은 도구 과목을 이수하고 스스로 충분히 교양을 쌓았다고 오판할 수 있다. 단순한 고전(古典)교육이 교양 교육에 더 명실상부하게 부응할지 모른다. 그러나 진정한 교양의 형성은 교과목이 아니라 그들이 참여하고 향유하는 대학문화의 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다양한 방식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 인간성의 가치와 공동체의 목표를 치열하게 논의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사회생활에 필요한 관념을 획득할 수 있다. 먹고사는 문제가 당연히 중요하지만 모든 학문의 존재가치를 실용성과 효용성에 초점을 맞추어 이러한 부분에 대해 ‘투자’하지 않는 대학이나 구성원은 자신의 직무를 유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교양있는 인간을 양성하기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우리 문화에 대한 인식과 실천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대학 문화는 어떠한가? 우리를 공동체로 묶어주고 사회적 리더로 성장시켜줄 수 있는 문화는 주점과 같은 축제문화의 낭만으로 부족하다. 전인적인 인간성의 함양을 위한 토양으로서 문화가 필요하다. 100년 전통을 눈앞에 두고 있는 우리 대학의 문화는 어디서 확인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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