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실 밖에서 학생들을 만난다면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골랐어요.” 강의실 밖에서 만난 최민지 교수(교양학부)와의 대화는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사람과의 대화처럼 편안했다. 그는 기자와의 대화에서 시종일관 눈을 맞추고 공감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학생들이 왜 그의 강의에 애정을 표하는지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가 학생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이번주 강의실 밖 산책에서는 최민지 교수와 함께 심리학 저서 『마음가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취약성을 보호하기 위해
집어드는 마음가면
허나 취약성은 나약함이 아니다
 
 
 
현대인들은 자신이 ‘취약한 점’을 어떻게든 감추려 한다. 그것이 특정 업무를 수행할 때의 ‘능력’의 결핍이든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갈 때의 ‘성격’적 결함이든 말이다. ‘좋지 않은 모습을 드러내선 안 돼’라고 수없이 되뇌고 자신의 약점을 누군가가 알아차렸을 때 패닉(Panic)에 빠진다. 인격적 가면인 ‘페르소나(Persona)’를 쓰고 아예 자신의 본모습을 감추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최민지 교수는 ‘숨기지 말라’고 주문한다. 그는 오히려 우리가 우리의 모습을 드러낼 때 강해진다고 말한다. “저도 처음부터 취약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 건 아니에요.” 학부 시절 그 누구보다 자신에 대한 방어심리가 강했다는 그는 어느 날 심리연구가 브레네 브라운의 강연을 보게 된다.
 
  -언제 브라운의 심리연구를 접했나요.
  “지난 2010년에 브라운의 TED 강연을 처음 보게 됐어요. 제가 브라운의 강연을 보고 저서인 『마음가면』까지 찾아보게 된 이유는 그 강연에서 브라운이 한 말에 큰 감명을 받아서였어요.”
 
  -브라운이 어떤 말을 했는지 궁금해요.
  “브라운은 TED 강연에서 약 1년간 다이애나라는 심리치료사에게 상담을 받았다고 말해요. 사람들의 심리를 연구하는 사람이 스스로 심리상담사에게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고 고백하는 것을 보며 저는 많이 놀랐어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TED 강연에서 자신의 커리어에 매우 치명적인 사실을 스스로 말한 거니까요. 그 강연에 직접 찾아온 사람만 수백 명이었고 자신이 강단에서 내뱉은 말은 영상으로 촬영돼 전 세계로 퍼져나갈 텐데 말이에요. 그러나 사람들은 오히려 브라운의 고백에 불신(不信)이 아닌 공감(共感)을 보였어요. 그리고 그가 강연 내내 이야기했던 ‘취약성(Vulnerability)’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을 거예요. 자신부터가 스스로 취약성에 대해 고백했으니 말이에요.”
 
  ‘수치심(shame)’은 간단히 말하면 단절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내가 가진 이것을 알거나 보게 되면 나는 관계 맺을 가치가 없는 사람이 되고 말 거야’하는 두려움. 수치심은 타인과 공감하거나 연결하는 능력이 없는 몇몇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감정입니다. 이 감정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 각자의 고통스러운 취약성입니다. 그런데 누군가와 진정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서로를 낱낱이 내보여야 합니다. 진짜 모습을요. -지난 2010년 TED 강연 ‘취약성의 힘(The power of Vulnerability) 中
 
  -수치심과 취약성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취약성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거예요. 그 자체로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죠. 감정을 유발하는 어떤 핵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브라운은 취약성을 ‘불확실성, 위험, 감정 노출’이라고 정의했어요. 수치심은 취약성과 함께 다니는 감정이에요. 자신의 취약성을 들여다보고 인정하고 극복하려고 할 때 수치심은 사라지죠. 반면 취약성을 숨기는 사람들은 수치심에 익숙한 경우가 많아요.”
 
  -취약성을 숨기려는 사람들은 어떤 행동을 하나요?
  “브라운은 취약성으로 인해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마음갑옷을 입는다고 표현해요. 마음갑옷에는 크게 세 종류가 있어요. 행복한 순간에도 불행한 순간을 상상하는 ‘기쁨 마비시키기’,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내면 비난이나 비판을 받지 않을 거라고 여기는 ‘강박적 완벽주의’, 취약성으로부터 비롯된 수치심과 같은 감정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감정 마비시키기’가 있죠.”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교수님은 어떤 경우에 취약함을 느끼시는지 듣고 싶어요. 
  “매 순간 저의 취약함을 발견해요. 하루에도 몇 번씩 느끼는 것 같아요. 저는 제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예를 들어 제가 학생들에게 적극성이나 표현력을 기를 수 있는 <ACT>나 <연극과뮤지컬의이해>를 강의하고 있지만 저 역시 강단 위에서 긴장하고 떨릴 때가 있어요. 또 저는 어떤 면에서 허술하고 덜렁거릴 때가 많아요. 지금은 브라운의 영향도 받고 저 자신도 노력해서 취약성에 대해 들여다보고 수치심을 극복하려 하고 있지만 사실 대학시절부터 그랬던 건 아니에요. 저도 마음갑옷을 꽤 자주 입던 사람이었어요.(웃음)”
 
  -교수님이 그러셨다니.
  “학부 시절의 저는 자존감이 굉장히 낮은 사람이었어요.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서 평가한 한 마디에 쉽게 무너지고 좌지우지됐죠.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공격이나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 기제가 굉장히 강해요. 대학을 졸업한 후 현장에서 공연을 기획하고 연출하는 일을 할 때의 저는 방어 기제를 총동원했었어요. 누군가 이야기할 때 일부러 웃지 않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공격적으로 말하기도 했죠. 힘든 시절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취약성의 힘을 알고 계신 것 같아요.
  “우리는 보통 자신이 취약한 점을 얼른 찾아내서 극복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완벽함을 추구해요. 따라서 자신의 취약성이 드러나면 상처받거나 공격당할까봐 그런 자신을 숨기려고 황급히 ‘마음가면’을 쓰죠. 저 역시 취약성을 발견할 때마다 ‘나는 왜 못하지?’라든가 ‘사람들이 이걸 눈치채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막 숨기려고 하고 그래서 진짜 내 모습이 아닌 만들어낸 ‘어떤 모습’으로 또 살아가기도 했죠. 브라운은 그 가면을 쓰는 사람은 영원히 취약성이 불러오는 수치심, 불안, 위선과 같은 것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해요. 그 말이 맞았어요. 제가 어떤 사람인지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난 후에는 마음이 훨씬 편해졌죠.”
 
  -그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을 것 같아요.
  “맞아요. 예를 들어 예전에는 학생들이 제가 모르는 것을 질문했을 때 저는 적잖이 당황하곤 했어요. 저의 취약성을 들켜버린 순간이었죠. 그때의 저는 최대한 그 순간을 자연스럽게 넘기려고 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조금 힘들었어요.” 
 
  -지금은 어떻게 하시나요?
  “그런데 지금은 그냥 학생들에게 터놓고 이야기해요. ‘나도 잘 모르겠어요. 함께 알아볼까요?’라고요. 취약성을 마주 보는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 같아요. ‘나는 이런 사람이야’ 하고 나를 직시하는 거죠. 또 저는 일부러 취약성을 노출하기도 해요. 학생들에게 나는 참 모자라고 허술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하죠. 그러고 나면 오히려 학생들을 대할 때 자연스럽고 더 진심으로 대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저는 늘 부딪히려고 시도해요. 어떤 위험성이라든가 제가 수치심을 느낄 수 있을 만한 상황에 말이에요. 그런 것들에 직접적으로 부딪혀서 하나씩 한 번 해보려고 노력해요.”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저는 취약성을 바라보는 자세에 대한 고민을 너무 늦게 시작했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사실 노력 중이죠.(웃음). 여러분은 실패할 자유가 있는 시기를 보내고 있어요. 정말 실패해도 괜찮아요. 나이가 더 들면 비교적 실패의 아픔이 더 크게 느껴져요. 그 전에 취약성으로 인한 실패를 때로는 겪어봐도 좋다고 생각해요. 학생들에게 취약성이 불러올 비판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마음갑옷을 하루빨리 벗어던지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