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중세를 ‘어둠의 시대’ 혹은 ‘암흑기’로 표현합니다. 특히 14세기 중세에서는 종교가 사회에 영향력을 끼치는 것을 넘어 군림하고 있었는데요. 하지만 어둠이 있는 곳에는 빛이 있다는 말이 있죠. 움베르토 에코는 『장미의 이름』을 통해 중세 암흑기를 조명했고 『중세 Ⅲ』을 통해 어둠 속 빛을 쫓았습니다. 이번주 ‘학술이 술술술’에서는 에코의 저서 『장미의 이름』과 『중세 Ⅲ』을 통해 중세에 대한 시각을 알아봤습니다.

 

▲차용구 교수가 『장미의 이름』저자인 움베르토 에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독재와 교조주의에 맞서는 자유와 관용의 메시지

중세를 통해 본 위기의 양면성

 

지난 16일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차용구 교수(중앙대 역사학과)의 강연이 열렸다. 강연 주제는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과 서양 중세 후기의 역사’다. 차용구 교수는 『장미의 이름』을 단서로 중세 말의 시대상을 살펴본 후 『중세 Ⅲ』을 통해 암흑기로 치부됐던 중세에 대한 움베르토 에코의 시각을 제시했다.


  14세기 유럽을 뒤덮은 어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1327년 중세 이탈리아의 한 수도원에서 일어난 의문의 살인사건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소설의 흥미를 위해 허구적인 상황을 설정했지만 작품은 14세기 서양 중세의 혼란스러운 시대적 상황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종교재판과 보편 논쟁 등 실재하는 역사적 사건이 소설의 큰 흐름을 이루는 것이다.


  차용구 교수는 에코가 작품에서 중세 말 사회를 시종일관 어둡게 묘사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했다. ‘암흑기’로 대표되는 중세 말은 종교적 독선과 편견이 인간의 자유를 구속했던 시대다. 당시 교회는 막강한 권력으로 이성을 통제했다. 또한 교회가 추구하는 교리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생각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마녀재판과 화형을 통해 사회에서 완벽하게 배제했다. 교회라는 종교 집단이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14세기 유럽 사회는 경제, 정치, 일상 전반에서 큰 혼란을 겪고 있었다. 소빙하기에 따른 기근과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면서 농업생산성과 인구가 급감한 것이다. “소설을 지배하는 어두운 분위기는 에코의 주관적인 해석도 소설을 위한 극적 장치도 아니에요. 중세에 대한 일반적인 학설이 반영된 결과죠.”

 

  공산주의를 향한 경고
 『장미의 이름』 서문에는 에코가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가 드러나 있다. 서문에 제시된 1968년 8월 16일, 바로 ‘프라하의 봄’이다. 에코는 본래 공산주의에 심취했던 좌파 지식인이었다. 그는 민주주의를 외치는 사람들을 탱크로 짓밟는 프라하의 봄을 직접 목격했다. 에코는 자신이 사랑했던 공산주의가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에코는 중세 말의 교회를 소설의 시대적 배경으로 설정했다. 그는 교회와 공산주의의 유사성을 통해 비인간적인 이데올로기에 함몰된 1970년 냉전시대의 공산주의를 표현했다. 『장미의 이름』의 기저에는 권위적이고 교조적으로 변질된 공산주의에 대한 경고가 깔려 있는 것이다.


  수도원의 장서관은 소설 속 주된 공간적 배경으로 등장한다. 장서관은 권력에 의해 선별된 이데올로기를 존속시키는 역할을 한다. 수도사는 장서관에서 신학서를 연구하고 지식을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적으로 신학서를 베낀다. 교회는 기계적인 필사를 통해 교리와 다른 생각을 미연에 방지했다. “수도사의 필사는 교회의 권위에 도전하는 새로운 이론의 등장을 늦출 뿐만 아니라 진리의 탐구를 막고 있었어요. 미셸 푸코의 말처럼 권력을 가진 집단이 지식을 통제했던 것이죠.”


  차용구 교수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호레호 신부가 중세 말 교회를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호레호 신부는 맹목적인 신앙에 눈이 멀어 있는 인물이다. 그는 교회의 교리를 위협할 수 있는 금서에 접근하려는 이들을 독살한다. 이같은 호레호의 행동은 중세 말 교회의 모습과 닮아있다. 중세 말 교회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배척하고 그들을 처형함으로써 사회에서 철저히 배제했다. 이는 에코가 프라하의 봄에서 목격한 공산주의의 무차별적인 폭력과 일맥상통한다.


  호레호 신부가 지키고 있던 금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웃음에 대해 호레호 신부는 극렬한 혐오감을 드러낸다. 웃음은 값싸고 천박한 것이며 인간의 부정함을 합리화하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호레호 신부가 웃음에 대해 가진 혐오는 그가 권위주의를 대표하는 인물이기 때문이에요. 권위주의는 웃음이 권위의 파괴를 부르기 때문에 웃음을 두려워하죠.” 웃음은 권위가 지속될 수 있는 경직된 사회를 와해시키기 때문이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중세 말 교회는 기존의 교리와 다른 생각을 배제했고 의심의 가능성을 철저하게 제거했다. 이는 모두 교회의 권위를 존속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중세 말의 교회는 권위를 지키기 위해 많은 것들을 탄압했어요. 에코는 교회와 교회적 가치를 지키는 호레호의 모습을 통해 공산주의의 교조주의적인 모습을 비판하고 싶었던 것이죠.”


  에코는 소설의 끝자락에서 인물의 입을 빌려 절대적인 진리에 대한 의구심을 드러냈다. 소설의 주인공인 아드송의 스승 윌리엄 수도사는 ‘진리의 다양한 가능성에 관심’을 둬야 하며 ‘우리가 경계할 것은 한 사람만이 진리라는 조급증과 불관용’이라고 말한다. 절대 진리에 대한 지나친 집착에서 자신을 해방시키고 진리에 대한 의심을 통해 다양한 진리를 탐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차용구 교수는 현대 사회에서도 절대적인 하나의 진리가 아닌 다수의 생각이 존재할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에코가 이 소설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사고의 다양성이에요. 결론적으로 『장미의 이름』은 자유와 관용의 소설이죠.”


  위기는 갱신의 기회다
  에코는 『장미의 이름』을 통해 드러낸 중세 ‘암흑기’를 마냥 절망적인 상황으로 보고 있지 않았다. 그는 이후 집필한 『중세 컬랙션』의 『중세 Ⅲ』에서 위기의 양면성을 설명했다. 위기가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차용구 교수는 중세 암흑기를 중심으로 일어난 위기 극복에 대해 설명했다. 종교의 영역에서 걸출한 이단이 무수히 등장하면서 큰 변화가 일어났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청빈을 추구하면서 기존의 교회와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 이단의 청빈 추구를 목격한 교회에서는 초심으로 회귀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위기의 극복은 종교적인 영역 밖에서도 일어났어요. 경제, 생활, 교육 등 다양한 영역에서 변화의 움직임이 일어났죠.” 농업 생산성의 감소로 사람들은 교역에 눈을 돌렸다. 이에 따라 조선업, 제련업 등의 분야에서 실질적인 생산율의 증가를 기록했다. 교역으로 인해 수익률이 높아졌고 인구가 감소하면서 노동력의 가치가 신장됐다. 경제 성장과 생활 수준의 향상을 반영하듯 고등교육기관인 대학도 무수히 등장했다. 또한 지식인층의 증가에 따라 서책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구텐베르크 인쇄술이 등장했다.


  차용구 교수는 위기는 언제나 인간사회에 상존하고 있으며 일상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위기는 사회의 흐름에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변화의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요. 위기의 부재는 나태를 부르고 나태는 현 사회에 대한 점검을 방해하죠. 위기는 침체된 사회를 환기해 나태에 이르지 않도록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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