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강진 주작산 휴양림에서의 일이다. 맑은 가을 이른 새벽 설핏 잠에서 깨어나 보석처럼 영롱하게 빛나는 수많은 별을 만났다.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산 능선 위 하늘 가득 만조 바다에 물비늘 같은 별들이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분명 잠에서 깨어났는데 다시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옅은 회청색 하늘의 가득한 별들은 나를 순수의 세계로 이끌었다. 옛날 별 밤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던 고향에서는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내 안에 숨겨져 있던 어릴 적 기억이 고요한 산중의 밤하늘에서 조용히 되살아났다. 날이 밝아 올 때까지 별들이 연출하는 풍경에 취해 황홀했다. 
 
  별이 지닌 메타포 중 가장 흔하게 쓰이는 낱말을 들라면 꿈이다. 밤하늘을 가득 메운 별들은 사람을 아련하게 혹은 몽롱하게 하는 마법 같은 무언가가 있다. 현실이 팍팍할 때 우리는 이를 벗어나고자 꿈을 꾼다. 하지만 팍팍한 현실을 벗어나기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제 별을 따는 것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하다.
 
  우리가 지금 바라보는 별빛은 대개 머나먼 우주의 공간을 흘러와 지구에 다다른 수억 광년의 빛이다. 어쩌면 실체는 사라지고 없는 허망한 빛일 수도 있다. 현실에서 꾸는 우리의 꿈도 이와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태어나서 꾸는 꿈을 다 이루고 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어릴 적 소박하든 거대하든 그 꿈을 비슷하게 이룬 사람은 있을지라도 완벽하게 이룬 사람은 없을 것이다. 
 
  꿈의 시작은 욕망이다. 욕망은 태어나면서 갖는 생존을 위한 본능이다. 욕망은 날것 그대로이지만 이를 포장하면 의욕이 되고 열정이 되다가 종국엔 그것은 꿈이라는 단어로 그럴듯하게 남는다. 꿈을 뒤집어보면 욕망이 커다란 똬리를 틀고 있다. 꿈은 욕망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사람의 욕망은 그 크기를 제한할 수 없기에 꿈도 마냥 부풀고 자라난다. 이것이 우리가 삶에서 완벽한 꿈은 이룰 수 없게 만드는 이유다. 
 
  가끔 밤하늘의 어둠이 현실에서 만나는 장벽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우리의 꿈꾸기를 방해하는 혹은 꿈꾸기를 계속하기 위해선 넘고 극복해야 할 장애물처럼 다가온다. 어둠이 우리의 앞을 가로막는 막막하고 답답한 현실이라면 별들은 그 벽에 난 작은 숨구멍이자 작은 창이다. 
 
  살아가면서 꿈을 이루기가 어렵다 하여 꿈꾸기를 포기할 수는 없는 법. 현실에서의 꿈꾸기란 밤에 꾸는 초현실적인 몽롱한 것이 아니라 밝은 대낮의 치열한 꿈꾸기이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욕망의 토대 위에 이루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들에 대한 크고 작은 상상을 한다. 상상과 현실 사이를 하루에도 수없이 오간다. 어떤 꿈은 이루어지고 어떤 꿈은 좌절된다. 크게 보면 일희일비의 연속이다. 어쩌면 진정한 꿈꾸기는 결과보다는 과정에 있다. 꿈을 이루는 것보다 꿈꾸는 그 과정 자체에 의미를 둘 때 우리는 행복해진다. 이 지점에 우리의 진정한 삶의 의미가 자리하고 삶의 비의가 담겨있다.
 
 
 
김선두 교수
미술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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