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제공: 한국여성민우회

젊음, 가장 빛나는 시기. 여러분의 하루는 어떻게 지나가고 있나요? 강의를 듣고 과제를 하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저물어 가고 있진 않나요. 이렇게 젊은 날의 하루하루가 모여 우리의 모습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번학기 중대신문 심층기획부는 20대 청춘, 그 젊은 날의 초상을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오늘의 초상은 ‘낙태죄’입니다. 지난달 15일, 29일 각각 보신각엔 ‘나의 자궁은 나의 것’이라는 문구의 판넬을 든 검은 옷을 입은 이들이 모였는데요. 보건복지부에서 인공임신중절 수술의 처벌을 강화하는 입법예고를 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입법안은 실질적으로 무효화 됐지만 낙태죄 전면 폐지, 임신중지의 권리 보장 등 근본적인 요구는 해결되지 않았다는 비판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번호 젊은 날의 초상과 함께 그 검은 물결을 따라가 보시죠.
 
  책임도 비난도 피해도 모두 여성의 것
  피해자를 죄인으로 만드는 ‘낙태죄’

  지난달 15일, 29일 보신각에서 두 차례 ‘검은 시위’가 열렸다. 1차엔 300여 명, 2차엔 500여 명의 사람들이 검은 옷을 차려입고 보신각에 모여 낙태죄 폐지를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검은 마스크와 검은 옷걸이로 더욱 검은색 일색이 된 그들은 함께 분노했고, 슬퍼했고 또 서로를 위로했다.

  나의 권리에 표하는 애도
  지난 9월 보건복지부가 의료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은 임신중절수술을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규정했으며 임신중절수술 시 최대 12개월까지 의사면허를 자격 정지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해당 개정안이 시행된다면 임신중절수술을 전면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여성에게 행해지는 임신중절수술에 관한 이 일련의 논의에서 정작 여성은 배제당하고 있었다.

  검은 시위는 이를 비판하며 낙태죄의 당사자인 여성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열렸다. 지난달 29일 시위의 주최 중 하나인 한국여성민우회 여성건강팀의 서지영 활동가는 낙태죄 존재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2010년 프로라이프의사회가 임신중절수술을 한 병원들을 고발한 사태나 이번 일처럼 낙태죄는 반복적으로 수면 위로 떠올라 왔어요. 그럴 때마다 여성들은 ‘원정 낙태’를 가거나 열악한 환경에서 임신중절수술을 받아야만 하는 처지에 놓이죠.” 그렇기에 그들은 이번 사태가 의료법 개정안의 백지화를 넘어 낙태죄 폐지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답답해서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낙태죄로 인해 실질적으로 피해를 입게 되는 여성이 일어나지 않으면 아무도 바꿔줄 사람이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지윤씨(27)는 당사자인 여성이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란 절박감에 시위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참여자는 여성이 주를 이뤘지만 곳곳엔 남성들의 모습도 보였다. 남성들 또한 시위에 위화감 없이 어울려 함께 목소리를 냈다. 1, 2차 시위를 모두 참여했다는 최윤호씨(익명·30)는 성별을 떠나 인간이기에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비록 저는 ‘나의 자궁은 나의 것’이란 구호를 자신 있게 외치진 못했지만 자궁은 공공재가 아니란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했어요. 그저 틀린 것을 틀렸다고 말하는 것뿐이죠.”

  유쾌한 피해자들의 통쾌한 외침
  엄숙하고 경직됐을 거란 예상과 달리 시위의 분위기는 밝고 활기찼다. 참여자들은 낙태죄의 피해자를 자처하며 위축돼있지 않았다. 당연히 자신의 것이어야 할 권리를 주장하는 이들의 모습은 당당하기만 했다. 시원한 풍자엔 다 같이 웃고, 분노할 일엔 함께 분노하는 유쾌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시위엔 다양한 피켓들이 등장했다. ‘나의 자궁은 나의 것’, ‘낙태는 여성의 기본권’, ‘진짜 문제는 낙태죄다’ ‘국가는 나대지 마라’ 등 주최 측에서 준비했던 피켓은 물론 ‘나의 자궁은 공공재가 아니다’ 등 참여자들이 각자 준비한 피켓들도 있었다. 딱딱하지 않고 유머러스하게 쓰인 피켓은 시위 분위기를 한층 더 활력 넘치게 만들었다. 시민들은 기독교 음악을 개사한 ‘낙태죄와 싸울지라’, ‘우리는 애 낳는 기계가 아니랍니다’ 등의 노래를 함께 부르며 시위의 분위기를 고조시켜 나갔다.

  시위는 자유 발언 후 거리행진을 하고 또 한 번 자유 발언을 하는 식으로 이뤄졌다. 자유 발언 시간엔 주최 측 혹은 발언자의 주도로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수많은 이들이 자유 발언대의 마이크를 잡았고 개중에는 자신의 낙태경험을 고백하는 이들도 있었다. 최대한 담담하게 말하고자 노력했지만 그들의 발언은 마치 피를 토하는 듯했다. 올해 5월에 임신중절수술을 받았다고 밝힌 한 발언자는 ‘인터넷에 낙태수술을 검색하면 살인마다, 죄책감도 없다, 모성애도 없다는 등의 반응들이 보인다’며 ‘나는 여자, 예비신부, 엄마이기 전에 인간이다’고 울분을 토했다.

  시위 참여자들은 발언자들의 말을 그저 듣기만 하지 않고 열성적으로 공감을 표했다. “말을 더듬어도, 음정이 맞지 않게 노래를 불러도 아무도 비웃지 않았고 박수쳐 주며 함께 노래를 불렀어요. 개개인임에도 하나라는 기분이 들었죠.” 장채원 학생(방송통신대 영어영문학과)은 시위 현장에서 있었던 발언뿐 아니라 참여자들의 반응들을 보면서도 감명받았다고 밝혔다.

  지난달 15일 시위 후엔 폴란드, 멕시코, 아르헨티나 등 아직 낙태죄가 존재하는 여러 나라에서 연대의 메세지가 오기도 했다. 따라서 지난달 29일 시위에선 폴란드, 아일랜드, 스페인어로 된 피켓을 들거나 구호를 외쳐 연대를 표했다. 페미당당 심미섭 대표는 아일랜드에서 활동 중인 이에게서 온 메시지를 대리 발언함으로써 낙태죄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며 함께 바꿔나가야 하는 문제임을 알리기도 했다.

  시민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최윤호씨는 시민들의 반응을 보며 행진을 하는 이유를 찾았다고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분들도 많이 봤고 카페에 앉아계시던 여성분이 박수를 치고 계신 것까지도 봤어요. 그걸 보며 행진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게 하는 것이 실제로 효과가 있다는 것을 느꼈죠.”

  시위대의 외침은 그를 지켜보던 시민뿐 아니라 시위의 참여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참여자들은 시위를 통해서 위로받고 힘을 얻었다. “시위가 끝나면 암울한 현실에 힘이 빠질 줄 알았어요. 그런데 서로 얘기를 하고 들은 것만으로도 힘이 된 거예요. 오히려 희망이 생겼고 우리는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주혜 학생(동덕여대 경영학과)은 힘을 보태러 간 시위에서 오히려 힘을 얻어왔다며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김은서 학생(익명·중앙대 역사학과)은 시위를 통해서 전 세계의 수많은 여성들과의 연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다른 나라와의 연대를 보며 정말 많은 사람이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낙태죄라는 문제에 대해 제 주변뿐 아니라 모두가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을 뿐인데도 든든한 기분이 들었죠.” 국가에 의해 고립됐던 여성들은 함께 고민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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