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의 그 날,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못했던 7살의 나는 붉은 텔레비전을 보았다. 붉은 화면은 붉은 파도를 쏘아 보냈다. 그 파도는 몇 시간을 더 몰아쳤다. 서울광장의 시민들, 그리고 붉은 악마들은 누군지도 모를 사람들과 어깨동무를 한 채 함성을 질렀다. 그 장면은 숫기 없는 내게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대체 시청앞 광장이 뭐길래’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아고라에서 시작된 광장은 넓은 공간이 아니었다. 아테네의 광장은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임과 동시에 철학가들이 격렬하게 의견을 주고받는 토론의 장이었으며 정책을 심의하는 최종의결기구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아테네가 아고라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은 당연하다. 모든 국민에게 그 권리를 주지 못했지만, 적어도 광장을 통해 민주주의의 이상을 구체화했기 때문이다. 참정권을 지닌 계급을 일컫는 ‘시민’이라는 개념이 아테네에서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아고라에 비해 한국의 광장인 시청앞 광장은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배경에서 생겨났다. 고종이 아관파천하면서 그가 머물고 있는 덕수궁 주변의 시가지를 정비하면서 광장이 만들어진 것이다.
 
  외세에 의해 만들어진 광장이라지만 그 역할은 분명하다. 3.1운동, 4.19혁명, 6월 항쟁 등 민주주의 쟁취를 위한 한국 근현대사가 이뤄진 주 무대가 된 것이다. 이를 통해 덕수궁 앞 공터는 광장으로 거듭났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광장에 대한 의식은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모습은 시청앞 광장이 서울광장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지극히 드러난다. 2003년 당시 서울시장은 시청앞 광장의 재건축을 위한 디자인 공모전을 진행했다. 하지만 치열한 경쟁 끝에 당선된 ‘빛의 광장’은 시청앞 광장을 대체하지 못 했다. 시청앞 광장의 디자인은 뚜렷한 이유 없이 잔디광장으로 채택됐다.
 
  그렇게 조성된 잔디광장은 개장과 동시에 ‘잔디 보호’를 위해 시민들의 출입을 금지했고 이는 7개월 동안 지속됐다. 이후에는 전동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을 잔디광장에서 쫓아내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 이유 역시 ‘잔디 보호’였다.
 
  ‘잔디 보호’라는 기치 아래에선 시민의 기본권도 보장받지 못 했다. 작년 한 일간지에서는 잔디 보호를 위해 정부가 잔디 광장 위에서의 집회나 궐기를 엄격히 관리해야한다는 사설을 실은 바 있다. 그 일간지는 잔디는 ‘시민’의 것이니 ‘시민’이 누릴 수 있도록 잔디 위에서의 집회나 궐기를 제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주장 속에서 집회나 궐기를 하는 이들의 맥락은 무시됐다. 그들은 더 이상 시민으로서 존재하지 않았고, 그들의 주장은 떼쓰는 것이 됐다. 그들은 단지 ‘잔디를 해치고 있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그들이 ‘잔디를 밟고 있는 사람’이기 이전에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그들에 대한 비판도 이러한 상기 이후에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광장이 본 목적을 상실하고 그저 공터 또는 공원으로서 전락하는 것을 막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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