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형식 강사가 위르겐 하버마스의 『사실성과 타당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최근 대한민국은 비선 실세의 국정개입과 각종 비리 논란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위르겐 하버마스에 따르면 비선 실세의 대학 비리 파문은 효율성의 논리가 지배하는 ‘체계’가 학교라는 ‘생활세계’를 침해한 경우라고 볼 수도 있겠죠. 그렇다면 ‘체계’와 ‘생활세계’가 가리키는 바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들이 훼손한 민주주의의 가치는 하버마스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이번주 ‘학술이 술술술’에서는 위르겐 하버마스의 『사실성과 타당성』을 다룬 중앙게르마니아 강연을 찾아가 봤습니다. 함께 볼까요.

효율성보다 ‘생활세계’를 추구해야
의사소통의 권력은 사회적 연대로 흘러
 
지난 4일 302관(대학원) 301호에서 열린 중앙게르마니아에서 윤형식 강사(서울과기대)의 강연이 진행됐다. 강연의 주제는 ‘위르겐 하버마스의 『사실성과 타당성』’이다. 윤형식 강사는 위르겐 하버마스가 주장한 현대사회의 문제 그리고 해결책에 대해 강연했다.
 
  하버마스가 걸어온 길
  위르겐 하버마스가 유년시절을 보냈던 시기의 독일 사회는 나치즘이 만연해 있었다. 하버마스는 나치 전범을 처벌하는 ‘뉘른베르크 재판’을 목격하고 나서야 나치즘의 실체를 깨닫게 된다. 뒤늦게 독일 나치당의 비인간성과 야만성을 실감한 하버마스는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기 위해 프랑크푸르트학파에 합류한다. 이후 하버마스는 마르크스주의의 실현방식에 대한 견해 차이를 겪으며 프랑크푸르트학파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을 갖게 된다. 윤형식 강사는 “하버마스는 프랑크푸르트학파와는 다른 방식으로 현대사회에서 인간해방을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고 말했다.

  인간해방에 대한 연구가 반영된 하버마스의 책 『공론장의 구조변동』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구성원이 제기한 의견이 국가정책으로 반영되는 절차를 정리했다. 이후 하버마스는 『인식과 관심』을 집필하면서 인간해방의 잠재력을 찾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느꼈고 이를 반영해 『의사소통 행위이론』을 저술했다.
 
  강연에서 주로 언급된 『사실성과 타당성』은 『의사소통 행위이론』을 바탕으로 하버마스가 처음에 쓴 『공론장의 구조변동』을 재구성 한 책이다. 즉 『사실성과 타당성』은 하버마스가 느껴온 문제의식이 총집합된 책이라고 볼 수 있다.

  하버마스는 냉전이 종식된 이후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에 드러난 각각의 오류를 지적하기 위해 『사실성과 타당성』을 집필했다. 그는 공산주의 진영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구체적인 생활방식을 공산주의 그 자체로 혼동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자본주의 진영은 신자유주의의 부작용으로 사회적 연대가 결여돼 있는 것을 문제 삼았다.
 
  효율과 민주주의의 사이
  『사실성과 타당성』은 하버마스 사상의 핵심인 민주주의 이론을 새롭게 정립했다. 이는 하버마스가 규정하는 근대화의 특징에서 출발한다. 윤형식 강사는 “하버마스는 근대화가 ‘생활세계’와 ‘체계’를 분리하고 ‘생활세계’를 합리화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보았다”고 설명했다.

  하버마스에 따르면 ‘생활세계’에는 문화, 사회, 인격이 있다. 문화는 사회 구성원이 공유하고 있는 가치와 생활양식이고 사회는 결혼, 학교 시스템과 같은 제도를 이른다. 인격은 한 개인이 태어나서 사회와 제도에 적응하는 과정이다.
 
  반면 ‘체계’에는 크게 경제체제와 행정 권력 시스템이 있다. 경제체제는 화폐를 통해 사람들 사이의 행위가 조정되는 것을 말하며 행정 권력 시스템은 행정 권력을 통해 사람 사이의 행위가 조정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전통사회는 의사소통을 통해 물물교환이 이뤄지는 ‘생활세계’였다. 그러나 현대사회에 이르러 ‘생활세계’와 ‘체계’는 명확히 분리된다. 근대화로 인해 화폐제도라는 ‘체계’가 생기면서 전통사회가 변화한 것이다. 윤형식 강사는 “화폐제도라는 체계가 생긴 이후 의사소통의 노력이 사라지면서 체계의 효율성이라는 논리가 생겼다”고 말했다.

  윤형식 강사는 체계의 효율성과 관련된 예시로 지난달 28일 서울시에서 이뤄진 체납 차량과 대포차 단속을 들었다. 서울시에서 파견한 단속반은 체납 차량의 번호판을 떼고 대포 차량은 강제로 견인하는 조치를 취했다. 하버마스에 따르면 서울시가 주도한 단속 활동은 행정 권력 시스템이라는 ‘체계’에 의해 이뤄진 일이다. 행정 권력은 화폐제도와 마찬가지로 효율성을 추구한다. 이러한 효율성은 의사소통을 배제한 채로 권력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확보된다.

  하버마스에 따르면 현대사회의 문제는 체계가 효율성을 앞세워 생활세계의 영역을 침해한다는 데에 있다. 그는 현대사회가 체계의 논리로 생활세계를 침범해 들어오는 것을 제대로 방어하지 못한다고 보았다. 이는 체계가 사회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체계가 생활체계를 침범하는 것을 용인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기인한다. 윤형식 강사는 “대학이라는 ‘생활세계’에 자본주의 논리라는 ‘경제적 체계’가 들어오면서 민주주의의 가치가 손상됐다”며 체계가 생활세계의 영역을 침해한 사례를 설명했다. 결국 체계가 생활세계를 침범하는 현상으로 인해 민주주의의 가치가 훼손된다는 것이 하버마스가 주장한 내용의 핵심이다.

  뿌리부터 민주주의
  하버마스는 민주주의가 상실·축소되는 현대의 세태 속에서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회복하는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민주주의의 가치 상실을 극복하기 위해 하버마스가 주장한 해결책은 ‘발본적 민주주의’의 실현이다.

  ‘발본적 민주주의’의 실천은 민주적인 의사소통을 통해 이뤄진다. 윤형식 강사에 따르면 이런 민주적인 의사소통은 바로 사회적 관계와 강제성으로부터 자유로운 ‘논의(Diskurs)’에서 비롯된다. 여기서 논의는 어떤 문제에 대해서 자유롭게 생각을 발표하고 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다.

  ‘논의원칙’은 논의가 사회적인 제약 없이 이뤄지는 것을 말한다. 도덕 규범은 이러한 논의원칙에 의해 확정되며 보편적 규범이다. 반면 윤리 규범은 이를테면 대한민국과 같이 특정 공동체에서 적용되는 규범으로 법이라고 할 수 있다. 윤형식 강사는 “도덕 규범과 윤리 규범을 구분하고 윤리 규범이 법의 형태로 성립되는 것이 민주주의의 원칙 중 하나다”라고 설명했다.

  공론장이란 어떤 문제의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해 사회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장이며 비조직화된 공론장과 조직화된 공론장으로 나뉜다. 법의 성립은 비조직화된 공론장에 속한 ‘의사소통의 권력’이 조직화된 공론장에 영향을 미치면서 이뤄진다.

  비조직화된 공론장은 시민사회를 매개로 형성되며 찬반의 의견으로 나뉜다. 비조직화된 공론장에서 형성된 논의의 결과는 여론의 형태로 결집돼 조직화된 공론장에 들어간다. 조직화된 공론장은 법을 제정하는 의회를 이른다. 그들은 비조직화된 공론장의 ‘의사소통 권력’을 받아들여 새로운 법을 제정한다. 하버마스에 따르면 결집한 형태로 조직화된 공론장에 들어간 여론은 그 자체로 ‘의사소통의 권력’이 된다.

  윤형식 강사는 “법은 사람들에게 복종을 요구하는 장치이지만 ‘의사소통 권력’을 통해서 만들어진 법은 단순히 지배의 도구가 아닌 시민연대의 도구로 작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통사회에서는 의사소통을 통해 사회적 연대를 작동시켜왔지만 현대사회에서는 법으로 제정된 복지제도를 통해 사회적 연대를 실천한다.

  하버마스는 공론장의 순기능과 함께 존속이 불안정하다는 공론장의 취약점 또한 지적했다. 윤형식 강사는 “민주주의 축소에 따른 대안은 시민사회를 기반으로 한 공론장이다”라며 “공론장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버마스는 공론장의 유지하는 데에 지식인의 역할을 강조한다. 지식인의 역할은 공동체의 규범적 기반구조의 손상을 감시하는 것에 있다. 또한 지식인에게는 공동체의 손상을 감지하면 대립을 두려워하지 않고 발언할 수 있는 자세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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