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인간
  • 중대신문
  • 승인 2016.11.06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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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을 갈구하는 사람들을 유혹하는 광고들이 눈에 자주 띈다. 아름다움을 향한 인간의 갈망은 남녀노소 구별 없이 어쨌든 행복한 삶을 위한 또 하나의 길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오늘날 뷰티(Beauty)나 에스테틱(Aesthetic)이란 단어를 검색해보면 대부분 화장(化粧)과 성형외과와 연관된 단어들이 나온다. 에스테틱이라는 표현이 ‘감성’을 의미하는 그리스의 에이스테시스(ασθησις)에서 유래한다는 점에서 감성적 지각 혹은 감성적 모습과 연관된 현재의 용법이 크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또한 오늘날의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자연스러운 흐름이기도 하다. 정신과 이성을 앞세우는 ‘이성중심주의’에 대항하여 ‘탈근대적 해체주의’가 육체와 감성에 대한 재평가를 수행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에스테틱(Aesthetics)은 보통 미학으로 번역되는데, 이 학문의 외연은 매우 넓다. 우선  미학은 미(아름다움)의 감상 능력, 예술적 창조의 문제 등을 다루는 학문과 미의 법칙성, 형식, 규범 등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 모두 가리키는 용어이다. 이 용어는 바움가르텐(A. Baumgarten 1714-1762)이 쓴 두 권으로 된 좬에스테티카(Aesthetica)좭(1750-1758)라는 라틴어 책 이름에서 유래한다. 이 책에서 바움가르텐은 ‘미’를 “지각할 수 있는 사물이 지닌 완전성”이라고 정의한다. 예술사상의 측면에서 보자면 이러한 정의는 감각을 인식의 준거로 중시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미 ‘사물이 지닌 완전성’이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 아름다움은 감각적 차원에만 부여되는 표현이 아니다. 조화와 균형을 아름다움이 존재할 수 있는 원리로 간주하는 것은 서양의 오랜 전통에서 비롯된다. 플라톤에 의하면 모든 미적 대상은 ‘미’의 이데아를 분유(分有)함으로써 비로소 아름답다고 한다. 미는 개체의 감각적 성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미적 대상에 불변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초감각적 존재이며 균형·절도·조화 등이 미의 원리이다. 이러한 전통은 중세를 넘어 계속 이어진다. 
 
  미켈란젤로는 “내가 그대의 아름다움에서 읽고 사랑하는 것은 현세의 영혼에게는 멀고 낯설다. 그것을 간파하고 싶어 하는 자, 그는 일단 죽어야 한다”고 말한다. 짐멜(G. Simmel)은 이 시에 대해 유한한 것에게 무한한 것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일이 미켈란젤로의 영혼이 처한 “운명의 공식”이라 부른다. 짐멜은 예술과 사랑을 인류가 이러한 갈망을 충족시키는 두 가지 수단으로 간주한다. 결국 “현세적인 것과 현세적인 것 그 이상”을 지녔다는 의미에서 예술과 사랑을 이란성 쌍둥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미켈란젤로의 예술정신이 오늘날 우리에게 기준이 되기에는 너무 아득해 보인다. 
 
  그런데 아름다움만으로는 왠지 인간성의 전체를 반영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전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진선미(眞善美)는 대체로 근대 이후에야 비로소 셋이 나란히 놓이게 되었다고 한다. 진선미 가운데 지성의 대상인 ‘진’ 다음에 의지의 대상인 ‘선’을 두는 것은 주지주의(主知主義)의 전통이 강한 서구의 고대나 중세의 철학적 전통이었다. 또 그리스에서는 미와 선이 ‘아름답고 선한 것(kalokagathon)’이라는 합성어로 되어 자연적·사회적·윤리적인 탁월성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러나 진선미 셋이 나란히 놓이게 된 것은 근대 이후이며 진선미의 구도는 인간을 지성, 감성, 의지를 지닌 심적 존재로 보고 각각을 조화롭게 함양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것은 르네상스시기에 설정된 전인(全人)적 인간상을 철학적으로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물론 오늘날 예술영역에서는 아름다움 혹은 미의 성질에 대해 사실 더 이상 합의를 찾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견해들이 분출되고 있다. 이는 그만큼 시대와 사회가 다원화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비록 미와 미에 대한 관념이 시대적 산물이라 하더라도 시대를 초월해서 이어지는 ‘미를 향한 추구’는 불변하다. 시대를 나이와 유비하면 변할 수도 있는 취향에 따라 격정적으로 외양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기보다는 절제하면서 상대적으로 오래 지속될 수 있는 대상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보는 것이 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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