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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중대신문이 만난 사람
이건표 세계디자인학회장(공예학과 74학번)디자인, 미래를 논하다
임지원 기자  |  jela04089@cau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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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1.06  00:5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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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학문의 흐름이 그렇듯 디자인도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로 구분할 수 있다. 과거 1세대 디자인은 미를 추구하는 그림적인 디자인이다. 그림을 잘 그리는 디자이너, 멋진 형태를 창조하는 디자이너가 곧 능력 있는 디자이너였던 시대였다. 그러나 2세대 디자인은 단순한 조형적 디자인에서 탈피해 인간 중심적인 디자인을 가능케 했다. 사람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는 목적의 철저히 사용자 중심적인 ‘친절한’ 디자인. 이것이 UX다. 그리고 이 UX 개념을 최초로 정립한 선구자가 바로 이건표다. 그런데 그는 또다시 디자인의 미래에 대변혁이 도래하고 있음을 예고하고 있다. 디자인3.0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 그 중심에서 시대적 사명을 부여받은 이건표 세계디자인학회장을 만나봤다.

   
 

꿈많은 소년
디자인 리더가 되다
 
디자인의 민주화 시대를
준비하며
‘디자인3.0’을 말하다
 
  -디자인3.0을 준비하고 있다고.
  “네. 이젠 사용자와 인간을 잘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요. 현재 교육계에선 사용자 중심적인 디자인을 가르치고 있지만, 곧 도래할 패러다임의 변화를 맞이하여 미래엔 우리가 무얼 가르쳐야 하고 어떤 연구를 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해요. 고민의 일환으로 카이스트에서 디자인3.0 포럼을 개최하기도 했죠.”

  -포럼에선 어떤 이야기가 오갔나.
  “북미, 유럽, 아시아를 대표하는 석학과 함께 차세대 디자인 연구와 교육 방향에 대해 논의했어요. 미래의 디자인을 위한 교육 커리큘럼도 정비하고 이 디자인3.0 흐름을 세계로 전파했죠. 이로써 한국이 3세대 디자인의 발상지가 된 셈이에요. 2년 동안 갈고닦으며 준비한 건데, 잘 끝나서 뿌듯하네요. 이제 시작이지만요.(웃음)”

  -역사적인 순간이다. 미래에 다가올 디자인 패러다임의 변화가 어떤 것이길래.
  “디자인의 민주화죠. 우린 이걸 ‘Em-powering’이라고 해요. 그동안은 디자이너만이 할 수 있었던 일들이 지나가는 아줌마도 아저씨도 할 수 있게 되는 거죠. 물병을 만든다고 한다면, 여태까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디자이너의 역할이었지만 앞으론 일반인도 자신의 물병을 디자인할 수 있게 될 거예요. P2P(peer to peer) 디자인이라고도 하죠. 디자이너가 오픈소스에 디자인을 올려놓으면 일반인이 그걸 자신만의 디자인으로 변형시켜서 직접 뽑아내는 거예요.”

  -이제 디자이너는 일반인이 디자인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는 건가.
  “디자인의 결과물을 구현하는 작업이 더 쉬워지고, 접근 영역이 일반인에게로 확대될 것이기 때문이에요. 몇십 년 전 집집마다 컴퓨터가 보급됐듯이 집집마다 3D 프린터가 보급되는 미래가 머지않았어요.”

  -실감이 잘 안 난다.
  “대학교 때 문자도안이라는 과목이 있었는데, 말 그대로 누가누가 예쁘게 글씨 쓰나 경쟁하는 과목이에요. 당시엔 폰트라는 게 없었으니까요. 저도 예술대 전체에서 1등을 할 정도로 공부를 잘했었는데, 그 과목에서만큼은 이기지 못했던 친구가 하나 있었어요. 알고 보니 그 친구는 고등학교 때부터 인쇄소에서 글씨 쓰고 그림만 그렸다는 거예요. 당시엔 조형적으로 예쁜 디자인이 곧 최고의 디자인이었고, 그 친구는 졸업하자마자 충무로에 사무실을 열어서 아주 그냥 대박이 났죠. 그런데 얼마 안 가서 문 닫고 미국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어요.”

  -무슨 이야기인가.
  “포토샵이 생겼으니까요. 그전까진 기업에서 큰 사진을 찍으면 반드시 그림 그리는 디자이너의 손을 거쳐서 수정해야만 했어요. ‘조형’은 오롯이 디자이너만의 영역이었죠. 그러나 포토샵이 보급되면서 일반인들도 사진을 수정하고 새로운 생산물을 창조해낼 수 있게 됐어요. 지금이 딱 그런 폭풍전야예요. UX가 최고다, 하면서 언제까지고 우기고 있다간 그 친구처럼 이민 가게 될걸요.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는데 정체하고 있으면 안 돼요.”

  -그렇다면 앞으론 어떤 교육이 이뤄져야 하나.
  “정말 순수하게 공부하겠다고 입학한 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걸 가르쳐주고 문제에 봉착했을 때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줘야 해요. 물론 대학이 사회에서 써먹을 수 있는 인간을 길러내는 직업학교는 아니에요. 그러나 학생들은 앞으로 30년, 40년 먹고살아야 할 텐데 그동안 또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겠어요. 디자인3.0을 대비해 이미 우리 카이스트에선 스타트업, 컴퓨터프로그래밍, 서비스 프로토타이핑, 비즈니스디자인 등 커리큘럼을 전면 재정비했죠. 이게 잘 운영되고 디자인3.0 교육을 확고히 하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웃음)”

  -디자인 1세대부터 3세대까지. 기나긴 여정을 거쳐왔다.
  “이번 디자인3.0은 학교, 학계, 한국을 넘어서 세계적인 스케일이죠. 이제 곧 마지막 여정이네요. 도시락 싸서 힘겹게 통학하던 흑석동의 그런 친구가 이렇게 저렇게 해서 지금까지 온걸 보면, 여러모로 감사하고 만감이 교차해요. 그동안 많은 분의 도움을 받았고, 참 많은 운이 따랐죠.”
 
  최고의 후학을 양성하는 카이스트 교수가 되어 UX(사용자 경험)·UI(사용자인터페이스) 개념을 최초 확립하고, 세계 디자인계의 패러다임 변화를 주도한 그이지만 본디 녹록지만은 않은 삶을 살았다. 가난했다. 형편이 넉넉지 못해 통학을 해야 했던 터라 새벽닭이 울기도 전에 눈을 떠야 했다. 어머니는 더 일찍 일어나셔서 새벽밥을 준비하고 연탄불에 신발을  덥혔다. 추운 등굣길, 집을 나선 소년은 달리는 기차 안에서 꿈을 그렸다. 더 큰 바다를 꿈꿨다.
 

  -가정형편이 어려웠다고.
  “네. 더더군다나 예대는 작품이니 뭐니 하면서 돈이 많이 들어가는 터라 더 힘들었죠. 졸업하자마자 교편을 잡아야 하나 취업을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제 인생이 바뀐 사건이 있었어요.”
 
  -어떤 계기였나.
  “교직이수를 위해 수강한 과목에서 교육의 여러 가지 기능을 배우는데 그중 하나가 많이 배우면 배울수록 신분계층의 상승 수단이 된다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별거 아닌 내용이지만, 나에겐 그게 참 와 닿았어요. 여러모로 경제적으로 어렵고 힘들던 땐데 눈이 번쩍 뜨이더라고요. 그래 맞아, 내가 공부를 잘해서 더 좋은 기회를 얻는다면 더 좋은 환경에서 더 좋은 공부를 하게 될 거라는 생각에 정말 열심히 공부했어요. 늘 1등을 놓치지 않았죠.”

  -일찍 철이 든 학생이었다.
  “하하. 주어진 정도(正道)를 성실히 걷는 학생이었죠. 성실한 학생이었으니, 그만큼 스펙을 쌓는 일에도 열중했어요. 상공미전이라고, 당시 디자이너가 취업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등용문 같은 게 있었는데 그거 하느라 한창 작품을 만들고 있던 때였죠. 어느 날 작품 모형을 제작하려고 청계천 쪽 공방에 갔었는데 대기업 디자이너로 근무하고 있는 선배를 만났어요. 그 선배도 프로젝트의 모형을 만들러 나왔다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선배가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당장 공모전 당선되고 취업하는 것도 좋지만 공부를 더 열심히 해서 해외 선진문물을 공부하고 오는 게 좋을 거라고요.”
 
  -당시엔 해외 유학이 전혀 보편적이지 않을 때일 텐데.
  “졸업하고 삼성전자 같은데 취직하는 디자이너의 길이 있는가 하면 유학을 다녀오는 길이 있었는데 둘을 병행할 수는 없으니 어느 한 가지를 선택해서 작전을 세워야 했어요. 그런데 그 선배가 실무에서 느낀 여러 한계를 바탕으로 굉장히 절절하게 이야기하길래, 유학을 가야겠다고 결심했죠. 그렇지만 그 당시 유학이라는 건 정말 막연한 신기루 같은 거였어요. 디자인전공자가 영어공부를 할 필요도 없었고 다들 왜 유학을 준비하냐고 볼 때라서 힘들기도 했죠.”

  -부족한 형편에 더욱 어려운 길이었을 것 같다.
  “그렇죠. 그래도 꿋꿋하게 영어공부를 했어요. 그 당시 삼성전자에 추천을 받아서 취업할 수 있었음에도 거절했어요. 저같이 통학해야만 하는 어려운 가정형편은 취업이 일생일대의 과제라 넙죽 절이라도 해야 할 판이었는데도요. 그만큼 더 큰 배움에 대한 갈망이 아주 컸어요. 유학 갈 수 있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에요.”

  -그래서 유학은 가게 됐나.
  “당시 문교부에서 최초로 디자인분야의 국비유학생을 뽑는다는 거예요. 알아보니까 문교부 국비유학생은 5년 장학금에 생활비도 지원해준다더라고요. 아, 이걸 위해 여태까지 고생했나 싶었어요. 냉큼 지원했죠. 시골에서 버스 타고 올라와서 엄청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광화문에 붙은 방을 확인했는데, 제 이름이 합격자 명단에 있는 거예요. 아직도 그때 생각만 하면 가슴이 벅차요.”

  -디자인계 최초의 국비유학생이라니, 대단하다.
  “대한민국 정부에서 뽑힌 사람이고 신용을 보장한다는 어마어마한 백지수표 같은 걸 들고 미국으로 떠났어요. 미술로 유명한 아트센터컬리지로 갈 것인지, 혹은 리서치 중심의 학문을 연구하는 학교로 갈 것인지 고민하던 참에 국내 디자인 이론 및 연구의 선구자이신 국민대 교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해주시더라고요. ‘학생, 디자인 방법론이라는 게 있는데, IIT(일리노이공과대학교) 가서 공부해봐’라고요. 전 IIT가 뭔지도 몰랐고 디자인 방법론은 더더욱 뭔지도 몰랐어요.”

  -당시 디자인 1세대만 해도 방법론적인 접근이 드물었다.
  “맞아요. 근데 찾아봤더니, IIT가 바우하우스의 계보를 이은 학교라는 거예요. 바우하우스는 배워서 알잖아요, 멋진 거잖아.(웃음) 그 이유로 IIT에 가게 됐어요. 82년 8월 일이죠.”

  -처음 밟아본 타지는 어땠나.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미제 제도기, 켄트지, 포스터컬러를 막 사들인 거예요. 그런 거 써보는 게 로망이었거든요. 석사 마칠 때까지 한 번도 쓸 일은 없었지만요.(웃음) 그림을 그릴 일이 거의 없고 컴퓨터를 사용해서 공부하더라고요. 그만큼 디자인 방법론이라는 게 생각했던 것과는 거리가 있었어요. 신선한 충격이었죠.”

  -적응하는데 꽤 힘들었겠다.
  “영어도 유창하게 못하는 데다 학풍이 워낙 달라서 고생 많이 했죠, 뭐. 교수님께서 ‘자 우리 브레인스토밍을 해볼까요’ 하시는데 도대체 브레인스토밍이 뭔지도 모르겠고 애들은 쓸데없는 소리를 막 찍찍거리고 있더라고요. 시험을 본다는 공지를 못 알아들어서 전혀 준비도 못 해간 적도 있고요. 적응하는 데 6개월 걸렸어요. 적응 후엔, 서서히 디자인이라는 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디자인에 대해 무엇을 느꼈나.
  “디자인이란 게 그림을 그리는 것만이 디자인이 아니구나, 과학적인 분석과 연구를 해야 하는구나, 단순히 조형을 잘하고 그림을 잘 그리는 게 능사가 아니라 사용자를 깊이 이해하고 체계적인 프로세스가 필요하구나, 라는 걸 느꼈죠. 그렇게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게 됐어요. 새로운 방법론을 적용해서 오사카 디자인 공모전 대상을 받아 1억 원을 받기도 했죠.(웃음)”

  -한국엔 언제 다시 돌아왔나.
  “석사를 졸업하고 보니 전 세계 어디에도 디자인 분야 박사과정을 보유한 대학이 없더라고요. 사실은 박사과정 생긴 지가 그렇게 오래 되지 않았어요. 하여튼 졸업은 다가오는데 어떡하지 고민하고 있다가 카이스트에서 산업디자인학과 교수직을 부탁받았어요. 85년도 무렵 우리나라의 디자인이 점점 발전하고 삼성이나 LG 같은 기업에서도 그림만 잘 그리는 디자인이 아닌 또 다른 디자인의 필요성이 막 대두하던 시기였죠. 타이밍이 좋았어요.”
 
  유학생활을 접고 귀국한 그는 교수직을 맡아 후학 양성과 연구에 주력을 기울이다가 2002년, 일본의 쓰쿠바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후 디자인 방법론의 일인자로 거듭난다. 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장을 맡으며 방법론적 디자인으로 카이스트의 정체성을 굳히는 데 앞장선다.
 
  -디자인 방법론에 관해 설명해 달라.
  “방법론의 학문적 모태는 시스템엔지니어링이에요. 제품의 효용성만을 따지는 굉장히 정량적인 분야죠. 근데 가만히 보니까 이건 너무 비인간적인 거예요. 사용자가 원하는 디자인은 이런 게 아닐 텐데 말이에요. 그렇다면 통계학을 디자인에 접목해서 실제로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제대로 파악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우리 학교 경영대학 강의를 청강했어요. 그 교수도 참 부담스러웠을 거예요.(웃음)”

  -디자인과 통계의 접목이라.
  “지금은 굉장히 흔해졌지만 당시 디자인 쪽 분야에선 최초로 통계를 접목했을 거예요. 통계 소프트웨어를 직접 다루면서 좀 더 사용자가 원하는 바를 정확히 파악하고 학제적인 영역을 넓혔죠. 근데 통계라는 게 객관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숫자놀음이라 원하는 대로 조작할 수 있는 부분도 매우 많더라고요. 마치 대통령 선거처럼요.”

  -통계의 허구성을 느낀 건가.
  “그렇죠. 근데 어느 날 타임지에서 ‘여러분은 이런 경험 없습니까?’라는 제목으로 도날드 노먼의 『일상 물의 심리학(the psychology of everyday things)』이라는 책을 소개한 문장이 눈에 띄더군요. 읽어보니 강의 중에 프로젝터가 막혀서 다시 뺐다 끼느라 불편했던 적이 있냐고 묻더군요. 저도 당시에 이곳저곳 강연을 많이 다닐 때라, ‘완전 맞아!’하며 공감했어요.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여러분의 잘못이 아니라, 사람들의 인지심리를 고려한 관점으로 디자인되지 않아서 생긴 문제입니다’고 거예요. 도대체 뭐길래 이런 이야기를 할지 너무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았어요. 그땐 지금처럼 아마존이 있을 때도 아니니까 결국 한 달이나 걸려서 힘들게 책을 구했죠.”

  -어떤 내용의 책이었나.
  “인지심리학에 관한 책이었어요. 너무 재밌어서 막 무협지 보듯이 무릎을 치면서 이틀 만에 읽어버렸죠. 마치 허전함을 느끼던 부분을 딱 꼬집어주는 것 같았어요. 이 책 덕분에 인간의 심리, 행동을 고려하는 친절한 디자인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게 UX·UI예요.”

  -디자인 2세대 시작의 역사적 순간이었다.
  “그렇게까진 아니고요.(웃음) 단지 산업공학 등의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다뤄지는 개념을 디자인 분야에서 좀 더 일찍 모색한 것이죠. 기업에서도 그런 접근방식이 너무 하고 싶은데 적극적으로 연구했던 교수가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나 봐요. 그다음부턴 막 연구실에 프로젝트 의뢰가 쓰나미처럼 밀려 들어왔죠. 30년 동안 초지일관으로 연구했지만 가장 학문적인 보람을 느꼈던 때예요. 덕분에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술대회인 CHI(Computer Human Inte-raction)에서 아시아 통틀어 가장 기여도가 높은 히어로에 뽑히기도 했어요.”

  -세계 유수 대학과 기업에서 탐내는 인재였을 텐데.
  “모두 거절했어요. 전 한국과 우리 대학이 너무 좋았거든요. 제자들이 각계 각지에서 활약하는 것을 보는 보람이 아주 컸어요. 연구를 많이 하다 보니 한국디자인학회에서 편집장, 학술 이사를 거쳐 학회장을 맡기도 했죠. 그리고 한국·일본·대만 디자인학회와 가장 권위 있는 영국 디자인학회 등을 모아서 세계디자인학회를 만들었어요. 그곳에서 사무총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학회장으로 있습니다.”

  -세계 각지의 학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강연도 많이 다닌다는데.
  “세보니까 한 40개국 다니는 것 같아요. 처음엔 동양사람으로서 영어도 떠듬떠듬하며 얼마나 힘들었던지요. 그런데 디자인 방법론에 대한 발표로 기립박수를 받기도 했어요. 굉장히 영예스러운 일이죠.”

  -LG 부사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아, 그러다가 어느 날 LG에서 부사장으로 와달라는 거예요. 실무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니 처음엔 거절했죠. 그래도 LG 쪽에선 UX 중심으로 변화하고 싶다며 설득했어요. 고민 많이 됐죠, 당시 학과장 하면서 우리 학과가 국제화되고 잘 풀려나갈 때였으니까요. 결국 학교와 병행하는 조건으로 2년 반 동안 다녀왔어요.”
 
  -실제 실무현장은 어땠나. 무엇을 보고 왔는지.
  “실무를 보니 학계와의 괴리가 큰 걸 느꼈어요. LG엔 핸드폰 디자이너만 150~200명이 있었는데, 사실 요즘 핸드폰 디자인 다 똑같잖아요. 얇은 네모. TV도 종잇장 하나 내놓으면 끝이고요. 디자인할게 거의 없단 말이에요. 더는 외형이 아니라 그 안의 UI, 공학적인 재료의 특성, 생태계와 서비스와의 연결, 소비자연구, 애플리케이션 제작을 위한 프로그래밍이 중요한 때예요.”

  -왜 실무와 학계의 괴리가 생기는 것인가.
  “과연 지금 대학에선 무슨 기준으로 신입생을 뽑는지, 교육은 무얼 가르치고 있는지, 보면 답이 나와요. 이건 진짜 아니에요. 실무에선 망하니 안 망하니 하며 구글이라는 플랫폼 중심의 회사와 처절하게 싸우고 있는데 아직까지 시각디자인, 산업디자인 등 디자인 안에서도 분야를 나눠서 가르치고 있는 게 과연 올바른 것인가에 대한 회의가 컸어요. 그런 걸 처절하게 느낀 기간이라 제겐 소중한 경험이었죠.”

  -학계로 돌아와선 무얼 했나.
 “교수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눴어요. ‘카이스트가 연구분야 1등이니, 아시아에서 1등이니, 뭐가 필요한가. 우린 늘 미국이나 유럽을 빨리 쫓아가는 걸로 1등이 된 것이다’고 현실을 직시했죠. 그리고 기업의 경험을 가지고 와서 우리 디자인 미래 교육을 통째로 재정비하자고 했어요. 그렇게 발생한 산물이 2년간 준비한 새로운 교육비전, 바로 디자인 3.0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에요.”

  -긴 여정이었다.
“학계와 기업 등 디자인에 걸친 다양한 분야를 몸소 체험해보고 나서야 도착한 지점이죠. 새로운 미래가 닥쳐오는 시점에서 앞으로의 디자인은 ‘무엇이다’고 정의내리지 않으면 우리 학문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있어요. 그러나 앞으로의 디자인의 가장 큰 핵심 골자는 조율자이자 코디네이터의 역할을 한다는 데 있을 거예요. 다른 일반적 사용자들의 크리에이티비티를 도와서 그들이 직접 디자인할 수 있도록 관계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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