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를 감히 회의하며…
  • 이효석 기자
  • 승인 2016.10.10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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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크라테스의 변명』|플라톤 저/황문수 역|문예출판사|1999년 02월
어스름한 일몰 무렵 가을바람을 느끼며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꺼내본다. 때는 BC 399년.  지중해의 뜨거운 햇볕이 내리쪼이는 대낮에 치열한 논쟁이 벌어진다. 아테네의 아고라 광장 한복판에서 벌어진 한 지식인에 대한 재판 과정을, 플라톤은 그렇게 묵묵히 지켜보고 있던 참이다. 그가 그토록 사랑했다던 스승의 마지막 모습을 말이다. 아테네 민주주의는 점차 타락의 소용돌이로 침전되기 시작했고 지중해의 물살은 서서히 알렉산더를 향하고 있었다. 이미 소크라테스의 나이가 일흔에 이르렀을 때다. 해가 서서히 지기 시작했을 때 표결이 시작됐다.

  광장에선 소크라테스를 고발한 멜레토스, 아니토스 등의 선전·선동적인 연설이 계속됐다. 소크라테스는 이를 논리적으로 공박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두 차례의 표결을 통해 결국 사형을 선고받았다. 1차 투표에서 30표 차이였던 표 차이는 2차 투표가 끝났을 때 80표까지 벌어졌다. 그리스 시민들은 더 강하게 소크라테스의 사형을 주문했다. 소크라테스가 1차 판결 이후 더 모질게 시민들을 꾸짖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애초부터 제대로 교육받은 사람들이 뒷받침하지 않는 민주주의는 다수에 의한 폭정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를 해왔다. 이 고집 센 노인의 비타협적인 태도는 그리스 시민들을 더 자극했다. 아고라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자신들에 대한 비판만큼은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경멸을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죽음은 그리스 시민들의 ‘다수결의 원칙’에 의한 선택이었다. 플라톤은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민주정치에 의해 사형된 것을 목격한 후 여론 재판이 대세가 된 그리스 민주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는 민주주의가 토론에서 언변이 뛰어나고 사람들을 잘 유혹하는 몇몇 사람에 의해 움직여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선각자 중에선 민주주의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적지 않다. 정치적 평등주의가 무능력한 폭정과 대중들의 하향 평균적인 정치는 아닌지 의심하는 이들도 많았다. 또한 민주주의 자체가 특정한 이념이 아니라는 게 많은 학자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래서인지 민주주의라는 말 앞엔 자유·사회·직접·간접·참여·숙의 등 많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국민이 주인이 되며 국민 개개인의 선택과 행동이 존중받는 정의롭고 이상적인 최상의 정치제도. 그 제도는 결국 당대, 아니 인류의 지성에게 독배를 건넸다. 민주주의의 타락이다. 그럼에도 오늘날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는 도발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민주주의는 이미 상식이 됐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옹호하는 다수결의 원칙과 진리 사이에는 꽤 큰 간격이 있다. 실제로 진실을 외쳤던 소수가 다수의 정치적 모략 때문에 희생된 역사적 사례는 무수하다.

  물론 현재로썬 필자는 민주주의를 대체할만한 마땅한 대안을 제시할 수 없다. 또한 민주주의라는 인류의 이상(理想)이 잘못됐다고 하고 싶지도 않다. 확실한 것은 적어도 플라톤은 솔직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의 ‘이데아론’ 만큼이나 꽤 순수했고 순진했다. 그의 주장처럼 철인통치(哲人統治)라면 과연 정의(正義)를 담보할 수 있을까. 오늘날 철인이라 할 수 있는 이들 중 대중과는 달리 스스로의 탐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이가 있는가. 오히려 우리는 그 ‘잘난’ 철인들의 탐욕이 만들어낸 비극을 매일 뉴스로 접하고 있지 않은가.

  또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민주주의가 헌법학책이나 길거리에 존재하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오늘날의 현실 정치를 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법문을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定意)는 보다 현실적인 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타인을 배려하고, 적당히 체념하고, 서로 주먹질 하지 않으면서 힘을 나눠 갖는 것 등. 꽤나 볼품없어 보이는 정의지만 이런 것들 말이다. 이렇게 하면 민주주의가 가능하냐고? 물론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민주주의에 대한 적당한 체념과 회의 때문에 민주주의가 유지된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민주주의 외에 다른 대안이 별로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또 민주주의가 유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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