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중심으로 한 종합무대예술인 오페라. 오페라가 되려면 두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합니다. 16세기 말에 유행했던 이탈리아 곡의 형태를 따르면서 모든 대사가 노래로 표현돼야 하죠. 이번주 ‘학술이 술술술’에서는 단테의 서사시 『신곡』을 토대로 만들어진 두 오페라 <리미니의 프란체스카>와 <잔니 스키키>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두 오페라는 영원불멸의 거작으로 일컬어지는 『신곡』을 어떻게 표현했을까요? 함께 보시죠.

 
▲ 전희숙 음악평론가가 단테의 서사시 『신곡』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걸작의 탄생 이면에는 패배자의 분노가 있었다
두 개의 지옥에서 그려진 희극과 비극
 
지난 4일 청아인문아카데미에서 전희숙 음악평론가의 강연이 열렸다. 강연의 주제는 ‘단테의 서사시 『신곡』과 오페라’다. 전희숙 평론가는 『신곡』을 재창조한 두 개의 오페라와 그 속에 담긴 해석을 중심으로 강연을 진행했다.
 
  망명지에서 피어난 대서사시
  알리기에리 단테는 1265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태어났다. 그는 시인으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출세와 명예를 향한 갈망이 큰 정치인이기도 했다. 당시 피렌체에는 두 개의 당이 당쟁을 일삼고 있었다. 바로 로마 교황을 지지하는 겔프당과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지지하는 기벨린당이다. 겔프당은 다시 로마 교황인 보니파키우스 8세를 지지하는 백당과 당시 교황을 반대하는 흑당으로 나뉘어 있었다. 단테는 백당에 속해 있었다. 그는 흑당을 몰아내기 위해 찾아간 로마의 교황청에서 자신이 속한 백당이 흑당에 의해 축출됐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단테 자신도 흑당에 의해 피렌체에서 추방당한다.
 
  망명한 단테는 정계에 복귀할 것을 꿈꾸면서 라벤나의 영주인 귀도 노벨로의 후원 속에 창작 활동을 시작한다. 그리고 집필을 시작한 지 20년 만에 『신곡』을 완성해낸다. 망명한 땅에서 위대한 서사시를 탄생시킨 것이다. 전희숙 평론가는 “단테는 누군가가 자신의 정적을 조금이라도 옹호하면 ‘입을 찢어버리겠다’고 말하면서 끊임없이 정계에 복귀할 날을 기다렸다”며 “하지만 그가 끝내 정치계에서 멀어졌기에 『신곡』이라는 걸작이 탄생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전희숙 평론가는 『신곡』 중 지옥편의 이야기를 담은 오페라 두 편을 소개했다. 리카르도 잔도나이의 <리미니의 프란체스카>와 자코모 푸치니의 <잔니 스키키>다. 단테가 그린 지옥에는 총 9층의 단계가 존재하는데 단계가 높아질수록 죄가 무겁다. <리미니의 프란체스카>는 지옥의 두 번째 단계를, <잔니 스키키>는 지옥의 여덟 번째 단계를 바탕으로 전개된다.
 
  애욕(愛慾)의 죄악
  <리미니의 프란체스카>의 여주인공인 프란체스카는 실존했었던 인물로 단테의 후원자인 귀도 노벨로의 고모다. 그녀는 가문 간의 합의로 지오반니라는 인물과 정략결혼을 하게 된다. 원치 않는 결혼이었지만 그녀는 자신이 결혼하게 될 상대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그 상대에게 첫눈에 반한다. 결혼할 상대와 사랑에 빠진 것뿐인데 그녀가 애욕의 죄로 지옥에 떨어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신곡』에 등장하는 무수한 이야기 중 프란체스카의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조명한 사람은 보카치오라는 문학가였다. 보카치오가 프란체스카의 이야기를 조명한 이후 예술인들은 이를 자신의 작품 소재로 쓰기도 했다. 보카치오는 프란체스카의 결혼이 명백한 사기 결혼이라고 봤다. 그녀가 남편이 될 사람을 처음 소개받았을 때는 절름발이 지오반니 대신 그의 형인 파올로가 나왔다. 프란체스카가 결혼 이후 마주한 남편은 이미 사랑하게 된 파올로가 아니라 절름발이이자 추남이었던 지오반니였다.
 
  프란체스카의 애욕(愛慾)은 여기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파올로를 잊을 수 없었던 프란체스카는 그와 불륜 관계를 이어가고 결국 남편에 손에 죽임을 당한다. 그리고 애욕의 죄인들이 모인 지옥의 구렁텅이에서 평생 돌풍을 맞으며 어둠 속을 헤매게 된다.
 
  잔도나이는 그의 오페라 <리미니의 프란체스카>에서 프란체스카의 사랑을 탐미적으로 그린다. 탐미주의는 아름다움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문예 사조를 뜻한다. 잔도나이는 비록 프란체스카가 불륜을 저질렀지만 그녀의 사랑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그 자체로서 아름답게 느껴지도록 그렸다. 잔도나이가 프란체스카가 죽어가는 모습을 묘사한 부분은 탐미주의의 절정을 이룬다. 프란체스카는 남편이 찌른 칼로 인해 죽음에 이르면서도 파올로를 향해 입을 맞춘다. 오페라 속 에선 ‘프란체스카의 향긋한 입술이 파올로를 덮었다’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잔도나이가 탐미주의를 바탕으로 오페라를 만든 것은 당시 예술 사조에 대한 잔도나이의 깊은 고민에서 비롯됐다. 전희숙 평론가는 “잔도나이는 당시 이탈리아에서 유행하던 낭만주의 사조와 오스트리아, 독일에서 새롭게 유행하게 된 모더니즘 음악 사이에서 고민했다”며 “그러나 어느 한쪽을 택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음악을 만들기로 결심했는데 그것이 바로 탐미주의적 음악이다”고 설명했다.
 
  탐미주의적 해석이 가미된 오페라 <리미니의 프란체스카>에는 콘트라스트 즉, 대비가 돋보인다. 프란체스카의 사랑 이야기가 나타난 부분에서는 감미롭고 신비한 오케스트라 연주가 사랑을 찬미하는 반면, 프란체스카의 남편과 남편의 형이 등장할 땐 웅장한 음악을 사용하는 것이다. 전희숙 평론가는 “단테가 『신곡』에서 둘 사이의 갈등을 드러낸 것처럼 잔도나이도 두 세계를 음악을 통해 극명하게 대비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몸을 찢으면서 나타난 남자
 『신곡』에서 단테는 지옥의 여덟 번째 단계에 이르자 자신의 몸을 찢으면서 나타난 한 남자를 마주한다. 그는 바로 잔니 스키키다. 유언장을 위조한 죄로 사기의 지옥인 여덟 번째 지옥에 갇히게 된 그다. 전희숙 평론가는 “본래 『신곡』에는 잔니 스키키가 매우 짧게 등장하지만 세월이 흘러 『신곡』에 주석이 붙어 이야기가 풍부해지면서 잔니 스키키의 이야기도 오페라로 재구성됐다”고 말했다.
 
  푸치니의 희극 오페라 <잔니 스키키>의 스토리는 이렇다. 잔니 스키키는 단테와 동시대인으로 변장술에 능했다. 그는 아버지의 유산을 노리는 시모네 도나티의 부탁을 받고, 시모네의 아버지로 변장한 다음 거짓 유언을 했다. 하지만 이후 유언장을 변조한 죄가 발각돼 지옥에 떨어져 온갖 고초를 겪게 된다.
 
  사실 도나티 가문의 청년 리누치오와 잔니 스키키의 딸은 결혼할 사이였다. 하지만 도나티 가문의 사람들은 잔니 스키키의 가문이 미천하다는 이유로 이 결혼을 반대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도나티 가문의 사람들은 죽은 아버지의 유산이 교회에 기부될까 두려워 스스로 반대했던 가문에게 범죄를 의뢰했다.
 
  재밌는 것은 잔니 스키키가 이를 철저히 이용해 그들에게 골탕을 먹였다는 것이다. 그는 도나티 가문의 재산을 빼돌린다. 오페라는 이 부분에서 다양한 음악의 변주를 통해 웃음을 자아낸다.
 
  『신곡』의 잔니 스키키에 관한 이야기가 오페라로 재창조되면서 오페라에는 원작과 일부 다른 해석도 있다. 종교에 대한 굳건한 신념이 있었던 단테와 달리 오페라 작곡자 푸치니는 교회에 대한 풍자 의식을 작품에 담았다. 전희숙 평론가는 “푸치니가 <잔니 스키키>를 작곡할 당시인 중세시대는 교회에 부가 집중된 시기였다”고 말했다. <잔니 스키키>에서는 “성직자들은 위장이 튼튼해. 아무리 먹어도 체하는 법이 없어”라는 가사로 교회를 비판했다. 또한 <잔니 스키키>는 당시 성직자를 새에 비유하며 부패한 성직자들을 풍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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