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외국인은 버스에서 한국 남성에게 ‘냄새난다’, ‘더럽다’ 등의 폭언을 들었다. 아무 죄도 없이 욕설을 들은 외국인은 인종차별적인 모욕을 당했다며 한국 남성을 고소했다. 2009년, 한국 최초로 이뤄진 인종차별에 대한 기소였다. 당시 국내엔 인종차별에 대한 법이 없었기에 그 한국 남성은 모욕죄로만 처벌을 받았다. 차별에 관한 규제가 미비한 한국 법의 한계가 드러난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7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차별은 혐오라는 이름으로 우리 사회에 더욱 만연해졌다. 그렇다면 지금의 법은 이전의 한계를 극복했을까. 이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법 관련 전문가들을 만나봤다.
 
  고소한 삶을 위한 고소의 필요성
  한국 현행법상에서 혐오 표현과 같은 모욕적인 언사를 처벌할 수 있는 방안으론 모욕죄나 명예훼손죄를 들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법률로 혐오 표현을 처벌하는 데엔 한계가 있다. 법무법인 민후 김경환 대표변호사는 그 이유로 해당 죄목들의 적용 범위가 한정적인 것을 꼽았다. “모욕죄나 명예훼손죄는 대상을 명확히 할 수 있을 때만 적용 가능해요. 규모, 조직 체계 및 집단 자체의 경계가 분명한 집단이나 개인에 대한 혐오는 처벌할 수 있지만 포괄적인 집단에 대한 혐오는 처벌할 수 없는 거죠.” 한 국회의원이 여성 아나운서들에게 모욕적인 발언을 했을 때 무죄 처분을 받았던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었다.
 
  포괄적인 집단을 향한 혐오를 규제하기 위해서는 혐오금지법 또는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 하지만 한국 법상의 차별금지법은 장애인차별금지법뿐이다. “차별금지법이 있으면 혐오적 언행을 조심하게 되는 효과를 볼 수 있어요. 문제는 현재로썬 장애인을 제외한 대상에 대해선 혐오가 차별적 행동으로 드러나더라도 막을 방법이 없다는 거죠.” 김경환 변호사는 더 넓은 범위에 적용되는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실 혐오 표현에 대한 제재는 국제적 합의로 보장돼 있다. 세계인권 선언은 물론이고 국제인권규약 20조나 인종차별 철폐 협약에는 명시적으로 혐오 표현에 관한 금지 사항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홍성수 교수(숙명여대 법학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혐오 표현에 관련한 제재가 없는 한국의 현실을 지적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국제인권규약이 이행 가능하게 하는 법적 조치가 마련돼 있지 않다고 볼 수 있어요. 하지만 제재 수단이 없기에 조치를 권고는 할 수 있어도 강제할 수는 없는 상황이죠.”
 
  비교할수록 드러나는 미비함
 
  그렇다면 다른 나라들은 혐오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독일, 프랑스를 포함한 많은 유럽 국가는 혐오 표현을 법으로 처벌하는 길을 택했다. 독일의 경우 ‘일부 주민에 대한 증오심을 선동하거나 모욕 또는 악의로 비방해 인간의 존엄을 침해하는 행위’ 등에 대해서는 ‘국민선동죄’로 최대 징역 5년형에 처할 수 있게 했다. 프랑스 형법 내 차별적 모욕 처벌 규정이나 영국의 평등법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미국의 경우 표현의 자유와의 충돌 위험성 때문에 표현까지는 법적으로 규제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미국이 혐오 표현에 관용적인 것은 아니다. 법을 대체할 만큼 강력한 사회적인 기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상당수 회사나 대학 등에서 ‘표현 강령’을 제정해 혐오 표현을 징계 사유로 두는 것도 이러한 사회적 기제의 일종이다.
 
 
   미국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혐오 표현 처벌을 위한 법 시행에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표현의 자유와의 충돌이다. 한국에서도 2013년 ‘혐오죄’가 발의됐지만 혐오 표현에 대한 형법적 규제 방식에 대해서는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통과되지 못 했다. 또한 차별금지법 반대 측에서도 표현의 자유를 들며 차별금지법 제정 자체를 저지하고 있기에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유럽은 물론 표현을 규제하지 않는 미국조차도 혐오가 범죄로 이어졌을 때는 혐오범죄방지법에 의해 가중 처벌하며 엄중히 다루고 있다. 김성천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그에 비해 한국은 혐오 범죄에 관해서도 법률로써 정해진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범죄 동기에 따른 형량을 적은 양형 기준표가 있어요. 그 기준표에도 혐오 관련한 기준은 없고 그나마 동기가 비열하다는 식의 지표가 포함된 정도죠.” 혐오와 관련된 한국의 법률은 표현에 관한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미비한 수준이었다.
 
  법은 방법일 뿐
  물론 개인이 혐오에 법적으로 대응할 방안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홍성수 교수는 국제인권위원회법이 미약하나마 차별금지법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차별금지법처럼 더 넓은 범위의 집행력은 가지고 있지 않지만 국가인권위원회법이 그나마 그런 역할을 하고 있어요. 개인으로선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하는 것도 혐오에 대응하는 방안 중 하나가 될 수 있죠.”
 
  함영주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법제도 내에서 혐오에 대응할 방안으로 ADR(대체적 분쟁해결)을 꼽았다. ADR은 판결이 아닌 조정?합의 등을 사용해 분쟁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이미 해외에선 높은 비율로 소송을 대체하고 있는 제도이다. “판결이 승패를 가른다면 ADR은 승패를 가르지 않고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해요. 이해의 부족에서 오는 혐오에 대해서는 법적 처벌보다 ADR이 더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될 수 있죠.” ADR은 현재 법률이 보호해주지 못하는 포괄적 집단에 대한 혐오에도 대처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인호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혐오 표현의 개념을 넓게 잡고 규제하고자 하면 헌법이 보호하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봤다. 결국 혐오 문제에 접근할 때는 매우 좁은 개념으로 전제하고 접근해야 하기에 법만으로 모든 혐오를 규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홍성수 교수 또한 혐오 대처에 있어 법이 필요는 하지만 전부는 아니라고 말했다. “법의 제정은 혐오의 법적 제재 측면뿐 아니라 혐오를 지양하는 사회적 담론 형성에 일조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필요해요. 하지만 법이 모든 혐오를 규제할 순 없기에 궁극적으로는 교육 등의 사회적 의식을 개선하는 작업이 요구되죠. 법은 이를 응원하는 장치 정도로 봐야 해요.” 홍성수 교수는 외려 사회적 분위기 형성을 위한 노력이 곧 법을 만드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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