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 가장 빛나는 시기. 여러분의 하루는 어떻게 지나가고 있나요? 강의를 듣고 과제를 하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저물어 가고 있진 않나요. 이렇게 젊은 날의 하루하루가 모여 우리의 모습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번학기 중대신문 심층기획부는 20대 청춘, 그 젊은 날의 초상을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오늘의 초상은 ‘혐오사회’입니다. 지난호에서는 대학가에서 유행어처럼 쓰이는 ‘XX충’을 통해 얼마나 혐오 단어가 만연하게 쓰이는지 조명해봤는데요. 이번호에서는 대학가를 충격에 빠뜨렸던 ‘단톡방 사건’에 주목해보고자 합니다. 혐오적 발언을 서슴지 않는 모습에 많은 학생이 한동안 충격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더 문제인 것은 이러한 혐오 행위를 마땅히 규제할 규범이 없다고 합니다. 젊은 날의 초상과 함께 혐오 사회를 극복할 방법을 찾아보시죠.
 
 
 
  성범죄로만 치부하기엔
  모두가 피해자였다

  쏟아지는 혐오 표현
  우산 없는 대학 사회
 
 
  지난해부터 대학가를 충격에 빠뜨린 ‘단톡방 사건(단체 카카오톡 방에서 이뤄진 인권침해)’은 최근까지 지속되고 있다. 지금까지 언론에 공개된 단톡방 사건의 대화 내용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불편함을 토로하고 있다. 대화 속엔 여성에 대한 무차별적인 성희롱과 혐오 표현이 즐비하다. 그러나 저질스러운 대화 내용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대학 사회의 미미한 대응이다. 일각에서는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이 솜방망이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단체 카카오톡 방에서 일어나는 각종 사건·사고를 마주한 대학의 대응을 집중 조명했다.
 
  치우친 스포트라이트
  혐오 표현은 크게 두 가지 범위로 나뉜다. 첫 번째는 인종, 성별, 장애, 성적지향 등의 속성을 이유로 특정 개인(들)에게 언어를 통해 수치심 등 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다. 두 번째는 어떤 집단에 대한 차별적 속성을 이유로 불특정 다수의 청자로 하여금 증오에 기반을 둔 차별 또는 폭력과 같은 구체적 행동을 조장할 수 있는 표현이다. 공개된 표현 중 폭력을 상기시키는 ‘슴가펀치’와 지역 차별적 발언인 ‘전라디언’ 등이 이에 해당한다.
 
  언론에 알려진 6개 대학인 경희대, 고려대, 국민대, 서강대, 서울대, 연세대 중 현재까지 가해자를 대상으로 한 처벌이 완료된 대학은 경희대, 고려대, 국민대, 서강대로 총 4곳이다. 이중 가장 먼저 사건이 발생했던 국민대의 경우 단톡방에 속해 있던 남학생 32명 중 6명만이 처벌을 받았다. 그중 가장 높은 징계인 무기정학을 받은 2명은 곧바로 졸업해 처벌의 의미가 퇴색됐다는 비판이 일었다. 경희대는 최대 3개월 정학 또는 근신 처분을 내렸으나 징계 기간이 방학 기간에 포함돼 형식적인 징계일 뿐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고려대는 최소 사회봉사부터 최대 5개월 정학이 이뤄졌다. 하지만 피해자대책위원회는 가해자들이 휴학 또는 입대를 해 사실상 처벌이 무의미하다는 입장이다. 그 밖에 서울대, 연세대는 징계에 대한 심의 과정에 있다. 
 
  징계 여부와 무관하게 6개의 대학 모두 공통점이 존재했다. 바로 단톡방 사건을 단순히 특정 개인에 대한 성희롱·성폭력 차원의 문제로 삼았다는 점이다. 피해자와 가해자를 찾아내 학내 성폭력, 성희롱 예방 및 처리에 관한 규정에 의거해 처벌을 논의한 것이다. 그러나 외부에 노출된 대화 내용 속에선 성희롱 표현 뿐만 아니라 여성 집단과 특정 지역에 대한 혐오 표현을 다수 발견할 수 있었다. 국민대의 ‘아가씨 장사’, 고려대의 ‘새따(새내기 따먹기)’, 연세대의 ‘야식으로 여자 주문할게’, 서강대의 ‘김치녀, 전라디언’, 서울대의 ‘슴가펀치’ 등이 그 예이다.
 
  허울뿐인 규정집
  이처럼 분명한 혐오 표현이 왜 징계 논의에는 거론되지 않은 것일까. 관련 사안을 담당하는 각 학교의 인권센터 또는 (양)성평등센터는 광범위한 혐오 표현과 성희롱 차원의 표현을 구분하지 않고 있었다. 서울대 인권센터 이주영 전문위원은 “혐오 표현에 대한 국내 법적 규정이 없기 때문에 학내에도 별도의 규정이 없을 수밖에 없다”며 “상담 접수를 혐오 표현으로 분류해서 받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에서 시행하는 법률을 기본으로 삼는 대학 학칙으로서는 형법으로 규정되지 않은 혐오 표현을 학칙에서 다루기 어렵다. 이주영 전문위원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혐오 표현은 피해자 군이 존재하지 않아 제재를 가할 구체적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경희대 성평등 상담실의 한 관계자 또한 “문제를 제기하고 수치심을 호소하는 피해자 군 없이는 학교의 제재를 요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중앙대와 서울대는 혐오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은 없지만 사안에 따라 인권에 대한 전반적 규정을 바탕으로 한 심의는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주영 전문위원은 “혐오 표현이 인권센터 규정으로 정의된 인권을 침해했다고 판단될 경우엔 사건에 필요한 조처를 한다”며 “형법이 적용되지 않더라도 학내의 자율적 규범을 통해 대응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중앙대 인권센터 김하나 전문연구원 또한 “인권센터 운영 규정을 근거로 교육이나 인식 개선에 대한 권고를 내리는 정도는 가능하다”고 말했다. 현재 구체적 규정이 없더라도 교내 별도의 조직을 통한 자의적 심의는 가능한 상태다.
 
  규범을 부탁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회에 발맞춰 바삐 변해야 하는 것은 규범이다. 사회에서 양산된 혐오의 감정과 ‘카카오톡’이라는 새로운 미디어가 결합한 이 사건에 대한 대학 사회의 대응은 과거에 안주해있는 대학 내 규범의 현실을 방증한다.
 
  예외적으로 고려대는 세칙에 따른 학생회 차원의 징계가 이뤄졌다. 단톡방 사건의 일부 가해자가 소속된 고려대 경제학과 ‘정경포효반’은 사건 발생 이전인 올해 3월 제정한 「성(性) 인권 침해 사건 대응 세칙」에 의거하여 학생회 차원의 징계를 결정할 수 있었다. 또한 「차별금지조항」, 「평등지향자치규칙」을 통해 심도 깊은 논의도 이뤄졌다. 정경포효반 김태훈 학생회장(고려대 경제학과)은 “세칙 제정 이전에는 학내에 성, 인권 사건이 발생해도 형사상의 문제가 없으면 학생회 차원에서 가해 학생을 피해 학생으로부터 분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며 “평등과 존중을 지향하고자 사건이 있기 전 세칙을 제정했다”고 말했다. 
 
  경희대 측은 단톡방 사건의 피해자가 소속됐던 동아리를 대상으로 동아리 윤리 강령을 새롭게 만드는 교육을 실시했다. 서울대 또한 학생이 참여하는 포럼을 개최해서 단체 카톡방에서의 윤리에 대해 논의한 바 있다. 혐오 표현에 대한 헌법과 학칙 상의 규범의 빈자리를 자치 규범과 의식이 채워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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