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산업을 소위 ‘굴뚝 없는 산업’이라고 한다. 공해를 유발하지 않으면서도 막대한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문화산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관광산업의 경제적 기여도와 고용 및 투자에 대한 기여도는 아직 전 세계 평균에 크게 미치지 못 하고 있다. 어쩌면 관광산업은 더욱 성장해서 이바지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셈이다. 여기 관광산업 발전의 초석을 닦도록 임무를 부여받았던 사람이 있다. 그는 변추석 전 한국관광공사 사장이다. 지난 2014년부터 한 해 동안 그는 한국관광공사의 새로운 브랜드 선정, 호텔 등급제 재정비, 최초의 안전여행프로그램 개발 등 관광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외래관광객 1400만 명을 무난히 유치했다.
 
 
 
 
 
커뮤니케이션 전도사

광고로 관광하다

 

‘나의 한국’에서

‘당신의 한국’으로

Imagine your Korea!

 
 
 
 
 
 
 
 
 
 
 
 
 
 
 
 
 
한가지 질문을 던져보겠다.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라고 생각하는가. 고요한 아침의 나라? 전통의 나라? 아니면 화려한 한류스타의 본고장? 모두 맞고, 모두 틀렸다. 지금 당신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바로 그 이미지도 한국이고 옆 동네 아무개가 그리는 그 이미지도 한국이다. 그래서 Imagine ‘your’ Korea다. 당신의 한국이 바로 그 한국이고, 이곳엔 당신이 상상하는 모든 게 있다. 고로 매력적이다. 그러니, 한국으로 오라. 이것이 변추석 전 한국관광공사 사장이 표방한 한국이라는 브랜드이자 한국 관광산업이 나아갈 방향이다.

  -Imagine your Korea! 무슨 뜻인지.
  “무한한 매력으로 상상력을 자극하는 곳이란 뜻이에요. 한류와 스포츠 등으로 높아진 위상, 아름다운 자연환경, 유구한 전통 등 오늘날 한국의 얼굴은 천태만상이죠. 그런 측면에서 ‘Imagine your Korea’는 관광 소비자의 관심을 유도하고 고부가가치를 제공하기 위한 일종의 캠페인 슬로건입니다. 관광으로서 한국의 이미지를 향상시켜서 더 많은 사람이 한국으로 오게끔 하는 게 목적이죠.”

  -어떻게 한국의 이미지를 제고한다는 건가.
  “한국은 ‘무엇이다’며 한가지로 정의내리는 기존의 방식은 구시대적이고 인위적이에요. 한국엔 김치와 한복과 아리랑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Imagine your Korea를 통해 한국의 이미지를 생산하는 주체를 우리가 아닌 소비자들에게 넘김으로써 오히려 긍정적인 개인맞춤형 이미지를 생산해낼 수 있는 거죠.”

  -하긴. 전 세계 사람들의 각기 다른 니즈를 충족하기 위해선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방법이었다.
  “외국인이라고 하면 말이 외국인이지 외국인이 어디 한둘인가요? 개개인을 일반화시키면 안 되죠. 물리적으론 부모와 자식 간이 가장 가까울 수 있겠지만 문화적으로는 한국 청년과 영국 청년이 더 가까울 수도 있어요. 같은 게임을 하고 같은 팝을 듣잖아요. 외국인뿐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도 마찬가지예요. 세대 차이, 지역별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마케팅은 더 이상 먹히지 않아요.(웃음)”

  -한국엔 당신이 상상하는 게 무엇이든 그게 있다는 의미인가.
  “맞아요. 과거의 관광은 단순히 유적지 등 명성 고적에 가서 맛있는 걸 먹고 좋은 호텔에서 자는데 그치는 하드웨어적인 관광이었다면 앞으로는 훨씬 더 소프트웨어적인 관광을 지향하는 거예요. 우리 삶 속에 존재하는 각종 문화를 다 포괄하는 개념의 융·복합적 관광이죠.”

  -이 시대는 관광산업 패러다임의 큰 전환기다.
  “이제 관광은 단순히 먹고 자고 여행 다니는 게 아니라 우리의 삶이에요. 모든 게 관광이에요. 한류도, 영화도, 드라마도 포함하는 문화로서의 관광 개념이죠. 결국 관광이 라이프스타일을 관장하게 될 거니까요.”

  -문화 자체가 관광이라니. 생각했던 것 보다 관광의 영역이 굉장히 광범위하다.
  “숙박, 항공, 예술, 스포츠, 여행, 외식…. 모두 관광이니까요. 아, 요즘은 의료관광도 있잖아요.(웃음) 정말 관광은 손을 안 대는 분야가 없죠.”
 
 
  관광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 달라진 이 시점에 변추석 전 사장은 한국관광공사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새로이 설계함으로써 시기적절하게 전환을 이끌었다. 그러나 그가 처음부터 관광산업 전문가는 아니었다. 그는 시각디자인과 커뮤니케이션디자인을 전공해 광고계에 17년 이상 몸담아온 광고쟁이였던 것이다. 또한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홍보 본부장을 맡아 ‘ㅂㄱㅎ’ 로고를 디자인하기도 했고 박 대통령 당선 뒤에는 당선인 비서실 홍보팀장을 맡았다. 관광 전문가도 아니었던 그는 어떻게 관광산업을 주도할 수 있었을까.
 
 
 
  -원래 시각디자인과 커뮤니케이션디자인을 전공했다고.
  “네. 졸업 후 당시 LG애드(現 HS애드)에 입사해 17년 하고도 반년을 광고에 매진했어요. 지금은 카피와 영상 등 중요한 광고 요소가 많지만 그땐 디자인 중심의 광고가 대부분이었으니까요. 대표적으로 금성(現 LG)의 테크노피아 캠페인을 진행했었죠. 80년대 삼성과 금성이 ‘별들의 전쟁’이라는 광고전을 벌였을 당시예요. 이뿐만 아니라 대한항공부터 쥐약 광고까지 안 다뤄본 게 없어요. 정말 몇 천개는 했을 거예요.(웃음)”

  -그쯤 되면 광고 ‘골수’다.
  “쭉 광고를 하다가 직접 ‘Silver Bullet’이라는 독립광고대행사를 차려서 2년 동안 CEO로 있었어요. 원래 실버불렛은 늑대인간을 유일하게 죽일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이라는 뜻이잖아요. 그만큼 문제를 해결하는 단 하나의 방법을 제시하겠다는 의미죠.”

  -한국 관광산업을 위해 ‘Imagine your Korea’를 제시한 것처럼 말인가.
  “일맥상통해요. 실버불렛은 한샘, 한빛은행(現 우리은행), 한빛소프트 등의 광고를 맡았었는데, 대표적으로 엠파스 광고를 꼽고 싶네요. 당시엔 네이버와 네이트도 없고 야후가 세계적인 브랜드일 때였죠. 엠파스는 조그마한 국내 브랜드였거든요. 근데 그때 ‘야후에 없으면 엠파스’라는 캠페인으로 야후를 깨부수는 전략을 사용한 거예요. 성공적이었죠. 이외에도 ‘아이러브파리’ 캠페인 등을 진행했어요.”

  -단순 디자인을 넘어 광고 커뮤니케이션을 섭렵했다.
  “처음엔 디자이너로서 시작했는데 오랜 시간 광고계에 몸담으며 광고전략을 공부하게 되고,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가 튼 거죠.(웃음) 프랑스 칸 국제광고제 심사위원을 맡기도 하고 지난 2010년엔 국민대 조형대학장과 디자인대학원장에 부임했어요. 2012년엔 박근혜 후보 캠프와 당선인비서실에서 홍보를 총괄했죠.”

  -당시 ‘ㅂㄱㅎ’ 로고를 디자인하기도 했다는데.
 

  “ㅂㄱㅎ로고는 PI(President Identity)를 최초로 확립한 사례예요. 그동안 대통령 선거 땐 단순히 사진과 이름, 기호, 구호만 내세웠는데 ‘ㅂㄱㅎ’을 통해 대통령 후보 개인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구축함으로써 효과적인 선거로 이끈 거죠. 이게 바로 정치 커뮤니케이션이에요.”

  -광고 커뮤니케이션의 기본 원리를 정치에 대입한 결과다.
  “그렇죠. 정치는 처음 맡았던 분야지만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을 잊지 않으면 돼요. 결국은 아이덴티티, 즉 정체성을 확립해야 하는 거든요. 제가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 공식 포스터를 제작했을 당시 온 대한민국을 ‘Red!’로 물들였던 것처럼 ㅂㄱㅎ의 빨간색으로 2012년 대한민국을 물들였던 거죠.(웃음) 그게 캠페인의 힘이고 커뮤니케이션의 힘이에요.”

  -커뮤니케이션의 대가다.
  “처음엔 기업의 이미지를 팔기 위해 광고업에 종사했고 그 뒤엔 그걸 중심으로 정치 커뮤니케이션을 하게 된 거죠. 특히 정치 커뮤니케이션의 경우 단순히 성공한 게 아니라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냈기에 의미가 크다고 생각해요.”
 
 
  ‘커뮤니케이션 정립 전도사’. 그가 거친 발자취마다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붐이 일었다. 디자인, 광고, 정치, 그리고 관광까지. 광고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내고 독립광고대행사를 창립한 데 이어 정치의 패러다임까지 바꿔버린 그는, 한국관광공사로 향했다. 하지만 순탄대로만 밟았던 건 아니었다. 부임 초기, 관광 전문가가 아니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이곳저곳에서 흘러나왔고 세월호가 침몰했다. 수학여행 금지령 등으로 관광 분위기가 경직되었고 업계는 심각한 불황에 빠졌다. 그가 부임한 후 2주차에 벌어진 일이다. 그러나 그는 업계 관계자들과 끊임없는 소통을 하고 새로운 비전을 선포하며 위기를 타개해 나갔다.
 
 
  -부임 2주 만에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한국관광공사도 함께 애도하며 두 달을 보냈어요. 그동안 직원들과 수많은 토론과 회의를 거쳐 앞으로 한국관광공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 ‘관광’의 개념 전환에 대해 논의했죠. 우선 국내 최초의 안전관광 프로그램을 개발했어요. 안전여행 종합전략 수입, 매뉴얼 개발, 관광지 점검, 업계 관계자 및 담당자 교육을 맡을 특별전담 TFT를 구성했죠. 100여 명의 고등학생들과 함께 수학여행을 떠나는 등 직접 현장에서 미비점을 보완했어요.”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
  “원론으로 돌아가서 그 시기에 가장 필요한 것, 해야만 하는 것에 집중했을 뿐이에요. 호텔 등급 재정비도 마찬가지죠. 원래의 무궁화 등급제는 들쑥날쑥해서 정확도가 상당히 떨어질뿐더러 그마저도 한국관광호텔업협회와 한국관광협회중앙회에서 자율적으로 담당했던 제도예요. 외래관광객 1400만 명이 한국에 방문하는데, 기대와 다르면 굉장히 실망하잖아요. 그건 국가 브랜드이미지의 손실이에요. 신뢰의 문제고요.”

  -대대적인 작업이었겠다.
  “전 세계 매뉴얼을 다 찾아서 우리나라에 맞는 걸로 법률화했죠. 등급을 신청하면 절차에 의해 심사를 해요. 미슐랭처럼 암행어사를 파견하기도 하면서요.(웃음) 신라호텔을 시작으로 지금은 웬만한 호텔은 등급제로 표준화됐을 거예요.”

  -관광공사가 관할하는 영역이 굉장히 넓다.
  “맞아요. 그게 약이자 독이었어요. 왜냐면 워낙 영역이 넓다 보니 정체성에 혼란이 있었던 거예요. 모두들 각자 자신이 속해있는 부서가 곧 관광공사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죠. 50년 동안 면세점을 독점해 왔으니 면세 분야에 종사하는 직원들은 관광공사가 곧 면세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경주보문단지와 제주중문단지 등 관광단지 개발사업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관광공사가 곧 건설·토목을 관할하는 도시개발 기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또한 해외 마케팅에 종사하는 직원들은 관광공사를 해외 마케팅 회사로, 숙박·쇼핑·예술정보 등 관광정보를 생산하고 수집하고 가공하고 유통하고 번역하는 친구들은 관광공사를 정보회사라고 생각했죠.”

  -정체성에 대한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었겠다.
  “그래서 우선적으로 관광의 개념을 정의하고 21세기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가치와 비전을 만들어 체제를 구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분야에 오래 몸담아온 관광 전문가가 아니라 객관적인 시각으로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광고 전문가라고 생각했죠. 지금은 21세기, 커뮤니케이션의 시대니까요.(웃음)”

  -‘광고’로 ‘관광’했다.
  “광고도 결국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일이다 보니 사람을 연구하게 되거든요. 관광도 마찬가지잖아요. 결국은 인문학이에요. 무엇에 기뻐하고 무엇에 슬퍼하는지 사람의 심리를 파악해서 딱 그 적절한 길목에서 기다리는 거죠. 그게 커뮤니케이션이에요.”

  -말 그대로 통섭이다.
  “그래서 제가 커뮤니케이션의 통섭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게 ‘통합’과 ‘변화’예요.”

  -통합과 변화, 무슨 의미인가.
  “저는 통합, 즉 통일의 반대말이 변화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 둘을 같이 추구해야 해요. Imagine your Korea도 ‘너의 한국’이란 단어로 통합적 이미지를 가지면서도 개개인으로 인한 ‘변화’를 전제하잖아요. 이렇듯 한국에 대한 좋은 편견의식을 효과적으로 심어줘서 이미지메이킹을 가능케 하는 거예요. 과거의 맞든 틀리든 무조건 우기는 방식과는 다르게요.”

  -광고 이론을 관광에 접목해 효과를 봤다.
  “아직 섣불리 진단하긴 어렵지만 한국의 관광을 미래의 관광 쪽으로 옮겨놓는 시도를 한 거라고 해두죠.(웃음) 융합적인 관광, 미래지향적인 관광, 다차원적인 가치 제공이 가능한 관광을 위해서요. 그게 열매를 맺기까지 진두지휘했다면 더 좋았을 텐데 계획을 실행할 때쯤 나오게 돼서 아쉽긴 하네요. 그렇지만 요즘은 다른 삶의 목표를 가지고 살고 있어요.”

  -앞으로의 삶의 목표는 무엇인가.
  “목표 없이 사는 게 목표예요. 예전엔 매사 목표지향적으로 살아왔는데, 요즘 나이가 들어서인가? 그동안 최선을 다하고 즐겁게 일했으니 앞으로는 내가 만드는 삶이라기 보단 만들어진 삶을 살게 될 것 같아요. 즐거운 인생이죠. 다만 학교에서든, 어디를 가서든 잘 살고 있을 것 같습니다.(웃음)”

  -당신에게 중앙대란?
  “꿈꾸던 동산이죠. 봄 되면 꽃피고 가을 되면 낙엽 지는 캠퍼스의 풍경이 아직도 생생해요. 흑석에서 하숙을 해서 다른 친구들보다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어요. 그래서 그런지 청룡연못 옆에서 아무 걱정 없이 놀았던 추억, 김밥 한 줄을 사 들고 바위계단을 뛰어 올라갔던 추억 등 학교 곳곳에 그때의 행복한 잔상이 묻어있죠. 아, 그리고 당시는 다른 학교에 있는 친구끼리 서로 자기 대학의 학보를 보내는 게 유행이었던 시절이었어요. 지금은 어느새 꿈꾸던 동산에서 꿨던 꿈을 이뤄버린 나이가 됐네요.(웃음)”


  [변추석 약력]

- 1982 LG애드 크리에이티브디렉터
- 1993~1996 프랫인스티튜트대학원 커뮤니케이션디자인 석사
- 1997 프랑스 칸 국제광고제 심사위원
- 2002 대한민국광고대상 심사위원, 대한민국공익광고대상 심사위원
- 2007 한국관광공사 브랜드광고자문위원
- 2010 국민대 디자인대학원장 겸 조형대학장, 한국시각정보디자인협회 특별위원, 애드타임즈 ‘베스트오브더베스트’ 심사위원장
- 2012 새누리당 제18대 대통령중앙선거대책위원회 홍보본부장
- 2013 제18대 대통령당선인비서실 홍보팀장
- 2014~2015 제23대 한국관광공사 사장
- 2000~현재 국민대 시각디자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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