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인간
  • 중대신문
  • 승인 2016.10.08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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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향연(Symposium)』은 소크라테스가 등장하는 사랑 이야기다. 다른 모든 일에서도 그렇지만 그의 사랑 이야기는 까다롭고 사람을 힘들게 한다. 이는 아마도 사랑만큼 인간의 진면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일도 드물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은 인간의 위대함과 한계를 동시에 드러내 준다. 사랑에는 육체와 정신의 즐거움과 고통이 교차하며 인간에 대한 헌신과 기대, 원망과 질투 등이 뒤범벅이 된다.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에서 사르트르(J. P. Sartre)가 인간 자유의 절대적 성격을 강조하면서 그 대표적 사례로 헌신적인 이타적 사랑과 쾌락적인 이기적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그래서 사랑 이야기가 철학과 그렇게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실은 가장 철학적인 주제이다. ‘철학적’이란 그만큼 사랑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의미이다. 사랑만큼 알다가도 모를 일이 과연 존재할까? 어떤 가수는 ‘사랑밖에 난 몰라’라고 말하지만 정말 알고 하는지 모르겠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신화에서부터 시 그리고 음악에까지 사랑을 노래한 것을 보면 인간은 사랑하도록 ‘저주받은’ 것 같다. 좬향연좭의 신화 속에서도 사랑은 원래 한 몸이었던 한 쌍의 인간들이 신의 저주를 받아 갈라져서 끊임없이 자신의 반편(半偏)을 찾아 헤매는 과정으로 묘사된다. 그래서 인간의 모든 환희와 고통은 바로 이 반편의 현존 및 부재와 연관이 있다. 다른 신화에 따르면 에로스(Eros)는 ‘부와 방책(方策)의 신’ 포로스(Poros)와 ‘가난과 무책(無策)의 신’ 페니아(Penia) 사이에서 태어나 태생적으로 충족과 결핍의 행위를 ‘어리석게’ 반복하게 된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이지만 사랑은 인간의 자기실현 과정과 결단의 노력이기도 하다. 고대 그리스에서 교양있는 시민계급 사이에 동성애가 유행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물론 나이 많은 상대자가 멘토를 겸하는 경우가 많았다. 서로 간의 육체적 관계도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소크라테스에게도 자신을 흠모하는 알키비아데스(Alki-biades)라는 청년이 있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철학적 신념에 따라 육체적 관계를 거부하고 영혼의 사랑을 추구한다. ‘플라토닉 러브’는 여기에 그 기원을 둔다. 육체는 영혼의 감옥이며, 철학은 죽음의 연습이고 죽음 이후에 영혼이 불멸한다는 신념 속에 살아가는 그의 입장에서 사랑의 길은 확고하다. 
 
  그런데 이런 사랑이 과연 행복했을까? 플라토닉 러브는 근본적으로 완벽한 존재를 욕망하며 그 대상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데 이런 욕망을 만족시켜줄 수 있는 인간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충족될 수 없는 사랑은 불행한 것처럼 보인다. 
 
  세상만사를 유물론적 관점에서 설명하는 에피쿠로스학파는 사랑을 방탕하고 병든 영혼에서 탄생한 키마이라(Chimaira)와 같은 것이라고 규정한다. 이 학파는 기본적으로 성적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육체와 관계를 맺음으로써 그 욕구를 해소하는 자를 지혜로운 자로 간주한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몸이 선사하는 단순한 쾌락에 만족하지 못한다. 인간은 자신이 상상한 괴물을 무서워하는 아이처럼 사랑을 꾸며낸 후 그 대상을 최고의 가치로 숭배하며 그것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을 슬퍼하곤 한다. 이렇게 단순한 쾌락이 상상력의 산물인 열정에 의해 왜곡된다. 그래서 에피쿠르스적 현인은 사랑의 열정이 생기려는 기미가 느껴지면 곧바로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성적 방랑(放浪)을 추구한다. 
 
  루크레티우스(T. C. Lucretius)는 사랑의 열정이 우리의 상상력의 산물이기에 이러한 열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반대방향으로의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설파한다. 온갖 치장과 향기로 둘러싸인 문 뒤에 숨어있는 연인의 본모습을 상상함으로써 ‘열정에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충고한다. 아우구스티누스(A. Augustinus)가 육체적 관계를 맺지 않는 정신적 결합을 완전한 결혼이라 말한 것은 종교적 입장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가혹한 주장이지만 먼 인생길을 가는 인간에게 ‘작은 교훈’은 될 것 같다. 
 
  대체로 사람들은 사랑이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몽테뉴(M. de Montaigne)는 “어려움에서 비롯된 쾌락에는 얼얼하고 따끔한 상처가 필요하다. 화살과 불의 고통이 없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고 말한다. 사랑 때문에 힘든 사람에게 세상에 쉬운 일이 하나도 없다는 게 위로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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