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두께와 겉표지에 펼쳐진 까만 밤하늘을 보고 우주에 관한 교양서적인 줄만 알았던 『코스모스』는 인류가 우주에 바치는 최고의 대서사시였다. 거대한 우주의 티끌이라도 알아내기 위한 몸부림이 담긴 투쟁기였으며 우주로 발을 뻗기 위한 끝없는 시도가 기록된 역사서였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는 한상준 교수(물리학과)를 만나 그가 이 책을 사랑하는 이유를 들어봤다.
 
 

 

인터뷰를 위해 연구실에 들어선 기자를 보자마자 한상준 교수는 노트와 펜부터 꺼냈다. 그는 학생과 대화를 나눌 때면 그 학생의 이름과 대화 내용을 간략히 기록한다고 했다. 얼마나 자주 열어봤으면 노트의 한 장 한 장이 전부 너덜너덜했다. “내가 필요해서 만났던, 나를 필요로 해서 찾아왔던 내가 만난 사람이니까요.” 가을 햇살처럼 온화하게 웃는 그에게 학생들을 위해 책을 추천해달라고 말하자 그는 단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이 책을 건넸다.

 
  -『코스모스』는 매우 흥미롭지만 매우 두꺼운 책이기도 해요.
  “위대한 책인 만큼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내용이 방대한 편이에요. 그래도 저는 500여 페이지를 이틀 만에 읽었어요. 우리나라에서 이 책이 처음 출판된 1981년에 읽었으니까 제가 딱 기자님처럼 대학생
일 때겠네요.”
 
  -이틀 만이라니. 책에 푹 빠져들었나 봐요.
  “지금은 검색창에 ‘우주’라고 검색하면 수많은 이미지를 볼 수 있지만 그때 당시는 우주에 대한 이미지를 접하기 힘든 시기였어요. 허블 망원경이 발명되기 전이고 인터넷도 보편화된 시기가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 이 책을 열기만 하면 신비롭고 광활한 우주를 엿볼 수 있었죠. 그게 너무 좋았어요. 또 물리학도다 보니까 책 내용을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던 이유도 있었던 것 같아요.”
 
  -물리학도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있다면.
  “지금은 이과생들이 의대나 약대를 많이 선택하지만 제가 학생일 때는 물리학과가 ‘짱’이었어요.(웃음) 전교 1등을 넘어서 지역에서 1등을 해야 갈 수 있었으니 말 다했죠. 과학이 좋았으니 과학 관련 분야를 전공하고 싶었는데 이왕이면 최고로 인정받는 물리학과에 가고 싶었어요. 물리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해보고 싶다고 느낀 건 대학교 4학년 때예요. 졸업을 앞두고 ‘졸업 전에 기초 전공 서적을 다시 한 번 꼼꼼하게 읽어보자’는 생각에 전공 서적을 읽다가 물리학의 매력에 빠져버렸죠.”
 
  -교수님의 전공인 플라즈마물리학과 우주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궁금해요. 
  “고체를 가열하면 액체가 되고 액체를 가열하면 기체가 되잖아요. 다음으로 기체를 가열하면 전자와 이온으로 분리되는데 이 전리된 기체 상태가 바로 ‘플라즈마(Plasma)’예요. 별은 온도가 워낙 높아서 기체가 아니라 플라즈마 상태예요. 한마디로 우주는 플라즈마의 세계죠. 물리학에서 우주를 다루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35년째 이 책을 사랑하고 계세요. 이유가 있다면.
  “세이건 교수가 시카고 대학에서 학부생 시절 전공한 학문이 물리학이 아니라 인문학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아요. 그는 박사 학위 과정에서 본격적으로 물리학을 연구했죠. 두 학문을 어우른 덕분에 그는 『코스모스』에 과학적 지식을 넘어선 의미와 가치를 담았어요. 인류의 삶에 관해 논했고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죠. 제1장에서 ‘독자들은 이 책에서 우주적 관점에서 본 인간의 본질과 만날 것이다’고 말한 것처럼 우주를 연구하면서 절감한 인류의 본질에 관해 이야기해요. 칼 세이건이 이 세상에 없는 지금까지도 『코스모스』가 그의 이름을 빛내는 이유인 것 같아요.”
 
  -우주를 연구하다 철학적 고민을 하게 된 거네요.
  “고대 과학자는 곧 철학자이기도 했어요. 대표적으로 탈레스가 그랬고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랬죠. 지금은 서로 다른 학문으로 분화됐지만 그들에게 있어서 철학과 과학은 다른 학문이 아니었어요.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 함께하는 학문이었죠. 이 책의 제목인 코스모스는 ‘질서정연한 우주’라는 뜻으로 기원전 5세기경에 확립된 개념이에요. 그런데 그리스인들은 코스모스, 즉 질서정연한 우주의 근본을 ‘아르케(Arche)‘라고 말했어요. 철학이라는 담론의 탄생 자체가 바로 아르케를 찾으려는 노력과 더불어 이루어졌어요. 이처럼 철학과 과학은 그 뿌리를 맞대고 있죠.”
 
  -세이건 교수가 말하는 인류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우리 은하에는 2000억 개 이상의 별이 있어요. 그리고 우주에는 이런 은하가 3000억 개 이상 존재하죠. 게다가 우주는 끊임없이 팽창하고 있어요. 그러니 아무리 상상해 봐도 우주의 크기는 가늠조차 할 수 없어요. 당연히 우주적 관점에서 볼 때 인류는 ‘미비하다’는 표현이 조심스러울 만큼 작은 존재예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이를 인지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우주 전체에서 보게 되면 한 점도 안 되는 지구에서 온갖 투쟁과 알력 다툼을 벌이고 있죠. 우리가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지 알지 못한 채 너무 많은 욕심을 내는 거예요.”
 
  -우주의 크기를 실감하면 갑자기 허무해져요.
  “맞아요. 우주를 연구하는 사람들도 그런 생각을 해요. 실제로 일본의 한 천문학자는 자신이 평생 연구해 밝혀낸 사실이 우주의 티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70대에 자살을 택했어요. 살아생전 동아시아에서 그보다 우주를 잘 아는 사람이 없다는 평을 들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참 아이러니한 일이죠. 그러나 칼 세이건이 말하고자 하는 인류의 본질은 결코 ‘미비함’뿐만이 아니에요. 그는 분명 인류가 겸손할 필요성에 대해 역설하지만 인류가 얼마나 고귀한 존재인지도 이야기해요.”
 
  -인류가 미비하면서도 고귀하다니. 어떤 뜻인가요.
  “인류는 별에 의존해 살고 있으면서 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예요. 아주 작은 존재지만 거대한 우주와 그 안에 있는 원리를 사고할 수 있는 위대한 역량을 지녔다는 거예요. 물론 아직 우주에 대해 밝혀낸 부분은 아주 적지만 인간은 계속해서 우주를 더 많이, 깊이 알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저는 그 노력의 과정 자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더불어 인간에게는 우주와 비교했을 때 아주 작은 존재라는 걸 인지할 이성이 있어요. 스스로의 위치를 깨닫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거대한 우주를 탐구하려고 계속해서 노력한다는 점에서 인간은 그 자체로 존귀하다고 말할 수 있어요.”
 
  -세이건은 ‘과학의 대중화’를 선도했던 인물로도 평가돼요.
  “맞아요. 『코스모스』 이전에 제작됐던 다큐멘터리 역시 과학이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만들었죠. 저도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우주의이해> 역시 물리학 전공자가 아닌 이들도 물리학을 흥미롭게 느낄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강의하게 됐어요.”
 
  -과거처럼 과학 지식이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므로 현재는 ‘과학의 대중화’가 많이 이뤄졌다고 생각해 요.
  “저는 여전히 안타까워요. 오늘날 사람들은 과학의 엄청난 혜택 속에서 살아가고 있어요. 우리를 둘러싼 것 중에서 과학의 힘을 빌리지 않은 것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삶의 각박함으로 인해서 우연이라도 하늘을 바라볼 여유가 없고 자연 현상에 대한 호기심조차도 잃어버린 게 아닌가 싶어요. 과학이 가져다준 문명의 이기는 즐기지만 과학을 연구하고 싶지는 않은 모순적인 모습이 우리의 실상인 듯해요.”
 
  -물리학과 같은 순수 과학에 대한 관심이 떨어진 시대예요. 물리학도들에게 한 마디 해주신다면.
  “물리학을 비롯한 기초학문을 하는 학생들은 그 학문의 순수성과 이론의 경이로움에 빠져드는 경험을 체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요. 이로 인해 그 힘든 과정들을 다 인내할 수 있게 되며 자신의 학문에 대한 자긍심도 커지게 되죠. 인생에 있어 단 한 순간이라도 가치 있는 무언가에 미쳐보는 경험은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어요. 물리학을 비롯해 순수 과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어렵다고 느끼지 말고 단 한 순간이라도 물리학에 미쳐보자’ 라고 외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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