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백남기 동문은 행정학과 68학번으로 중앙대에 입학했다. 그리고 그해부터 유신독재에 대항하는 민주화 운동을 하다 2회 제적당했다. 복학한 해인 1980년에도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다 계엄군에 체포돼 징역을 살았다. 그는 중앙대 재학 시절 법대 학생회장과 부총학생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와 함께 운동을 했던 김경일 신부는 그를 ‘법대의 전설’로, ‘안기고 싶은 이’로 회상했다.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많은 사회적 갈등이 있다. 일각에선 이 사건을 이념적, 당파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논쟁을 시작하기에 앞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백남기 동문이 ‘운동권’이었는지 아니었는지가 아니라 그가 국가 폭력 앞에 선 한 사람의 개인이라는 것이다.
 
  백남기대책위원회에 따르면 현재까지 중앙대를 비롯해 고려대, 숙명여대, 한국외대, 한양대 등 10여 곳에 추모 시설이 설치됐다고 한다. 학내에선 분향소가 설치됐고 각종 성명서가 부착됐다. 그 성명서들엔 알게 모르게 각 주체 간 미묘한 입장 차가 드러난다. 그러나 누구도 이 죽음을 정치화할 필요는 없지만 굳이 이를 걱정해 소극적으로 대처해선 안 된다.
 
  그런 측면에서 양캠 총학생회의 태도는 아쉽다. 적극적인 추모보다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분향소는 일부 단대 학생회와 몇몇 학내 단체가 주도해 설치됐다. 이런 상황에서 학내 추모 분위기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가 한때 중앙대 학생으로서 학내 민주화에 기여했던 만큼 양캠 총학생회는 더욱 적극적인 추모 분위기를 형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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