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다른 대학에서 교수 생활을 하는 친구로부터 우스갯소리를 하나 들었다. “30대 교수는 학생들에게 어려운 것만 가르치고, 40대 교수는 학생들에게 중요한 것만 가르친다. 50대가 되면 자신이 아는 것만 가르치고, 60대가 되면 생각나는 것만 가르친다. 그리고 명예교수는 말이 나오는 대로 떠든다.” 어디까지나 우스갯소리니까 한 번 웃고 끝내면 될 이야기다. 그런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묘하게 설득력이 있다. 그냥 웃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내가 위 이야기의 주인공이 돼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그치지 않았다. 
 
  요즘엔 상황이 바뀌어 인문학 분야에서 30대에 대학의 전임교수가 되는 것이 어렵지만, 운 좋게도 나는 30대 후반에 전임교수가 됐다. 돌이켜보면 유학을 마치고 막 돌아와 따끈따끈하던 새내기 시절, 위 이야기의 30대처럼 설익은 학문을 가지고 의욕만 내세워 강단에 섰던 것 같다. 40대를 돌이켜보면 학문적으로도 안정이 되면서 학생들에게 중요한 것도 많이 가르쳤지만 한편으로는 대학이라는 사회에 익숙해지면서 타성에 젖은 부분도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좀 더 잘할 수도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중앙대의 가족이 되어 20년이란 세월이 흘러 50대 후반이 된 지금, 우물 안에 비친 내 모습을 보듯이 가만히 나 자신을 되돌아본다. 스스로 고립된 섬에 갇혀서 내가 하고 싶은 얘기만 떠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고백한 시인의 참회가 강단에 서는 내게도 있는지 점검해본다. 그리고 머지않아 육십 줄에 들어서서는 우스갯소리의 주인공이 되어 정년을 채우기 위해 그냥 생각나는 것만 가르치고 마는 존재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지…. 
 
  이제는 막내딸보다 열 살 가깝게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는 현실에서 나는 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주어야 할까? 기성세대의 탐욕이 팽배한 이 사회에서 학생들에게 어른들을 무작정 따라오라고만 할 것인가?
다소 부족한 부분은 있었지만 그래도 나름 만족할 만한 학문적인 성과는 있었다. 전공인 일본 고전 운문을 연구하고자 하는 후학들을 위해 일본의 대표가집을 번역하고 주해와 해설을 달아 출판하는 작업을 해왔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러나 이 같은 학문적인 물림만이 교수가 할 일은 아닌 듯싶다. 
 
  ‘아이들은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는 말이 있다. 어찌 가정에만 국한되는 말이랴. 대학사회에서는 ‘학생들은 교수의 등을 보고 자란다’로 바꾸어 적용할 수 있다. ‘그분’의 학문은 어느 정도 용인할 수 있지만, ‘그분’의 등을 보고 따라가는 것은 싫다는 평가가 내게 돌아온다면 그것은 대학교수로서는 실패한 것이다. 그저 생각나는 것만 떠들고 마는 삶이 아니라 학생들이 나의 등을 보고 자라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살기가 참으로 힘들다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강단에 선다
 
 
구정호 교수
일본어문학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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