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에서 풀을 뜯던 얼룩말이 자신을 주시하던 표범을 발견하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당연히 얼룩말은 표범을 피해 도망갈 것이다. 이 모습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얼룩말이 표범에 대한 적대적 혐오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자신의 동료가 표범에게 잡아먹히는 것을 보며 성장한 결과다. 이처럼 혐오는 동물도 가지고 있는 원초적인 감정이다. 물론 오늘날 인간 사회에서 주적인 표범은 만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누군가를 혐오하는 원초적인 감정은 더욱 극대화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를 불안에 떨게 하는 숨겨진 표범은 어디에 있을까.

  누가 우리를 분노케 하는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차별·비하 심의 및 시정 요구는 지난 2011년 4건에서 올해 7월 기준 1천352건으로 300배 이상 증가했다. 차별 비하와 혐오 표현이 최근 들어 자주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근래 혐오는 중요한 쟁점이 되며 이에 대한 수많은 논쟁이 이뤄져 왔다. 그러나 사실 혐오는 인간에게 당연한 감정일지도 모른다. “진화심리학에서는 혐오를 아주 오래전부터 생겨난 감정이라고 봐요. 혐오의 탄생은 생물학적인 발상에서 시작됐죠.” 최승원 교수(덕성여대 심리학과)는 혐오는 살아남고자 하는 생존 기제에서 발현된 것으로 자연스럽고 오래된 감정이라고 말했다.

  “한국 사회에서 혐오는 이전부터 팽배했어요. 70, 80년대엔 레드 콤플렉스를 군사주의로 억압했죠. 또한 더는 백의민족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전통사회에 있던 국민성을 요구하기도 했어요.” <현대사회와인권> 강의를 맡은 박선영 강사(중앙대)는 다양성을 최소화시켜 내부분열을 없애는 방식으로 역사가 흘러왔다며 혐오는 한국사회에 항상 존재해왔다고 말했다.

  “경제적 불안이 혐오 현상 심화에 가장 큰 영향을 줬다고 생각해요.” 박선영 강사는 경제적 불안으로 인해 생긴 피해의식과 열등감이 혐오로 변질됐다고 말했다. 신광영 교수(사회학과) 또한 혐오 표현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이유로 경제문제를 꼽았다. “고용문제를 비롯한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경제 불안에 대한 불만이 누적됐어요. 막연한 분노와 불만으로 인해 발생한 감정이 혐오로 표현된 것이죠.”

  허창덕 교수(영남대 사회학과)는 정보화 시대의 도래를 혐오의 원인으로 꼽았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지 않아도 되죠. 이로 인해 자기검열의 과정이 부족해지면서 자기절제를 하지 못하게 돼요.” 익명성이 보장되는 인터넷 세상에선 타인을 비방하고 혐오하는 일이 다반사다. 또한 허창덕 교수는 근본적인 혐오의 원인을 섣부른 자기중심적인 도덕적 판단이라고 말한다. “사실 차이에 대한 인식은 누구나 갖고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자신과 준거집단의 기준에 따라 도덕적 판단을 함으로써 차이를 부정적으로 보게 되죠.”

  지탄의 대상은 낮은 곳에 있다
  우리가 혐오 감정을 가지게 되는 원인은 다양하다. 하지만 혐오 현상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사회적 약자’를 혐오한다는 것이다. “원래 혐오에 대한 대상은 약자가 아닌 강자였죠. 실제로 반일 감정 또한 일제 강점기엔 강자와 싸우던 무기였어요. 그런데 오늘날엔 약자에게 그 화살을 돌리고 있죠.” 김동일 교수(대구가톨릭대 사회학과)는 약자가 자신의 이익을 갈취할 것이라는 오해로부터 혐오가 출발한다고 말했다.

  특히나 혐오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집단에 가하기 쉽다. 최승원 교수는 약자를 대상으로 한 혐오가 인지적 왜곡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봤다. “인간은 모든 현상을 편하게 보려는 속성이 있어요. 모르는 것을 잘못된 것이라고 쉽게 치부하죠. 예를 들어 ‘김치녀’라는 단어도 전제가 ‘난 그러한 여자를 만나본 적이 없다’는 것이거든요. 알지도 못하는 대상이 심지어 사회적 약자일 땐 혐오가 쉽게 발생하죠.”

  최근 만삭인 임산부를 70대 노인이 강제 추행한 사건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충격에 빠졌다. 사회적 약자 간에도 혐오가 발생하는 것이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장근영 선임연구원은 약자가 약자를 혐오하는 행위의 원인을 자신의 지위를 확인하려는 태도 때문이라고 말했다. “소수자가 다른 소수자를 차별, 혐오하는 행위는 자신이 누군가보단 우위에 서고자 하는 거예요. 이를 통해 자신의 위치를 확인함으로써 낮아진 지위를 보상하려는 동기가 포함돼 있죠.”
 
  계속되는 혐오의 위협
  우리가 그 중심에 서 있어

  20대, 혐오의 중심이 되다
  혐오 현상이 가장 문제시되는 것은 혐오의 주축이 10대, 20대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왜 20대는 혐오세대의 주축이 된 것일까.

  “한국의 초·중·고 교육체계에는 인권 교육이 부재하죠. 그 자리엔 입시경쟁에 따른 교육만이 남아있어요. 그렇다 보니깐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를 얻지 못해요. 그렇기 때문에 잘못된 관념에 사로잡히는 것이죠.” 신광영 교수는 대학에서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책임이 아닌 기능적인 기술만을 강조해 인식의 제고를 가져오기 힘들다며 안타까워했다. 최승원 교수 또한 약육강식의 교육체계로 인해 혐오 현상이 짙어진다고 지적했다. “20대가 혐오의 주축이라지만 혐오가 그들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현행 교육체계에선 타인에 대해 공감하는 문화를 배우지 못한다는 거예요. 이런 현실로 인해 젊은 세대의 사회에서 혐오 현상이 나타나는 거죠.”

  공동체 생활의 경험 부족은 척박한 사회를 만든다. 타인에 대한 배려는 공동체 생활에서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20대는 80, 90년대 연대성을 경험하지 못했죠. 그 당시 대학에선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연대적 노력이 있었어요. 이러한 공동체적 경험의 부재는 비단 20대만의 문제는 아닐 테지만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철학적 고뇌가 부족한 건 사실이죠.” 박선영 강사는 연대성의 부족으로 인한 공동체 의식 부족이 혐오 사회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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