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하늘색. 당연한 명제처럼 들리지만 사실 하늘은 ‘하늘색’뿐 아니라 수많은 빛깔을 갖는다. 하지만 이를 알면서도 우리는 하늘을 떠올릴 때면 하늘색이라 이름 붙여진 연청색을 함께 떠올리게 된다. 실제 하늘의 색은 다양하다는 것을 알지만 이미 규정됐기에 그 틀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은 것이다. 
 
  혐오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혐오 표현이 존재한다. 그 표현의 틀에 갇히면 표적이 된 이들에게선 혐오스런 모습만 떠올리게 된다. 하늘은 하늘색이 아니다. 같은 논리로 혐오 표현에 갇혀버린 사고에서 빠져나올 수만 있다면 어쩌면 혐오할 대상이 없을 수도 있지 않을까. 혐오와 혐오 표현의 관계에 대해 다시금 고민해보기 위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만나봤다.

  말하는 대로
  인간은 사고를 표현하기 위해 언어를 사용한다. 하지만 종종 표현된 언어에 의해 사고가 규정되기도 한다. 언어학자 사피어는 언어와 문화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며 둘 중 하나를 알지 못하면 다른 하나도 알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양명희 교수(국어국문학과) 또한 언어가 인간의 사고와 문화에 엄청난 파급력을 갖는다고 말했다. “인간의 표현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언어는 다시 인간의 사고에 영향을 미쳐요. 일단 어휘가 만들어지면 그 어휘가 인간의 사고에 큰 영향력을 미치게 되는 것이죠.”

  조삼모사. 이는 동일한 결과를 다른 말로 표현해 어리석은 사람들을 속인다는 뜻으로 종종 해석되는 사자성어다. 소위 말장난은 이렇게 한순간에 사람을 바보로 만들기도 한다. 이찬규 교수(국어국문학과)는 그 예시로 고의로 사용하는 모호한 표현인 ‘이중발화’를 들었다. ‘세금 인상’을 ‘세금 현실화’라고 하거나 ‘해고’를 ‘반자의적 탈퇴’라고 하는 등 표현을 달리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사고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같은 의미임에도 말을 모호하게 사용함으로써 사실을 감추거나 상대를 배려할 수 있어요. 언어로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이는 거죠.”

  미디어는 언어가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방식이다. 유홍식 교수(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는 미디어에서 실제 현상보다 과도한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면 대중은 그 표현을 일상적이게 받아들인다고 지적했다. 미디어에서 ‘세금 폭탄’이란 단어를 자주 사용하면서 그 의미가 실제보다 더 가벼워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과도한 표현을 자주 사용하다 보면 원래 있던 의미가 사라지고 사람들이 그 표현을 쉽게 사용하게 돼요. 이렇게 언어의 ‘의미 고갈’이 일어나면 사람들이 위중한 것을 위중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죠.”

  내가 뱉고 내가 맞을 화살
  양명희 교수는 혐오 표현이 겨누는 화살은 대상자뿐 아니라 결국 사용자에게까지 돌아간다고 지적했다. “혐오 표현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그 대상자들에 대한 혐오 의식을 더욱 고착화될 가능성이 커요. 게다가 혐오 표현을 들었던 대상자에게 반대로 사용자 집단에 대한 집단 혐오 의식을 갖게 해 또 다른 혐오를 재생산하죠.” 결국 모두가 모두를 혐오하게 할 뿐이라는 게 그의 지적이다.

  한편 혐오 표현이 소수의 몰지각한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하기에 모두를 대상으로 한 혐오를 불러일으키진 않는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이찬규 교수는 혐오 표현의 대상은 절대 일부에게만 한정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사람들은 한 번 알게 된 언어를 계속해서 다른 곳에 투사하고 싶어 해요. 혐오 표현을 알고 나면 그와 비슷한 행동을 하는 사람만 봐도 그 표현을 사용하게 되는 거죠. 혐오 표현은 그 대상자가 확장되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어요.” 일부만을 노렸다고 주장하던 그 표현들은 결국 모두의 숨통을 좼다.

  “누군가에게 혐오 발언을 하다보면 실제로 그렇게 행동할 수 있다는 것도 보여주고 싶어져요. 인터넷에서 이루어진 혐오 표현이 현실로 옮겨지는 것도 같은 원리죠. 심지어 실제 폭력으로도 이어질 수 있어요.” 이찬규 교수는 혐오 표현이 실제 혐오는 물론 언어와 신체적 폭력의 시발점이라고 봤다.

  승자가 없는 혐오 표현이란 게임. 이를 부추긴 건 혐오 표현에 집중했던 미디어였다. 유홍식 교수는 사회적 의제를 전통매체가 아닌 인터넷에서 설정하게 된 ‘역의제 설정’을 그 원인으로 꼽았다. “이전엔 전통적인 언론매체가 의제를 설정해 정제된 모습으로 보도했다면 이젠 인터넷으로 확산 된 것을 전통매체들이 가져가게 됐죠. 그러다 보니 혐오와 같이 인터넷에서 시작된 현상이 보도로 인해 보편화되는 거예요.”

  물론 미디어에서 혐오 표현을 장려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유홍식 교수는 아무리 비판하고자 했더라도 보도한 것 그 자체가 혐오표현을 확산에 일조했다고 봤다. “언론 보도 행태를 보면, 그게 잘못됐다고 말하면서도 대중이 사용할 수 있도록 많은 정보를 제공하죠. 게다가 미디어가 보도하면 사람들은 그것이 보도 가치가 있을 만큼 이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게 돼요.” 외려 미디어에서 혐오 표현이 담긴 보도를 절제하는 게 사람들의 관심과 사용을 줄일 방법이라는 것이다.
 
 
  쉽게 뱉은 말 한마디가
  사회를 혐오로 이끈다

  영희와 철수처럼
  혐오 표현이 더 큰 혐오를 낳는 악순환을 어떻게 하면 끊을 수 있을까. 양명희 교수는 바른 언어 사용을 대안으로 봤다. “상대의 문제에 대해서 지적할 수 있는 다양한 어휘와 표현이 한국어에는 풍부하게 발달돼 있어요. 논리적이고 비판적인 날카로움은 굳이 혐오 표현을 사용하지 않아도 가능하죠.” 바른 언어만 사용해도 상대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기에는 충분하다는 설명이다.

  “혐오 표현이 사회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은 물론, 본인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 해요.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담은 새로운 틀을 만들어야 하죠.” 이찬규 교수는 많은 이들에게 혐오 표현의 위력을 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대다수가 혐오 표현을 사용한다는 것을 사회적 용인으로 삼아 남용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유홍식 교수는 미디어보단 미디어 수용자들의 노력이 절실하다고 봤다. 미디어는 결국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이기에 공적 기능을 요청할 순 있어도 전면적인 규제를 할 순 없기 때문이다. “수용자들의 의식적인 콘텐츠 소비가 필요하다고 봐요. 다양한 의견을 접하되 우리 사회에 해를 끼치는 콘텐츠는 소비하지 않아서 스스로 소멸하도록 만들어야죠.” 미디어를 규제하진 못하더라도 수용자들의 선택으로 미디어의 자정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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