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를 알아주는 이는 없다고 했던가.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통해 당시 피렌체를 지배했던 메디치 가문의 신임을 받기 원했지만 평생 이를 알아주는 군주를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마키아벨리는 ‘현대정치학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또한 그의 저서 『군주론』을 배우지 않는 정치학도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그렇다면 『군주론』은 왜 이토록 현대 정치학계의 열렬한 환영을 받는 것일까. 이번주 강의실 밖 산책에서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읽고 현실을 마주했다는 김동현 강사(정치국제학과)를 만나봤다.
 
 
 
   
현실주의가 절대다수인 정치계,
그러나 이상은 삶의 가장 현실적인 동력이다
 
게오르그 루카치는 『소설의 이론』의 서문에서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라고 탄식한다. 그의 탄식 속에는 이상에 다다를 수 없는 데서 기인한 학자의 목마름이 담겨있다. 여기 타오르는 이상에 대한 갈증으로 신음했던 또 한 명의 학자가 있다. 젊음의 시절, 이상을 좇던 그가 지독히도 현실적이기로 유명한 마키아벨리(오른쪽 그림)와 니체의 학문을 치열하게 탐독(耽讀)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군주론』은 정치학에 입문할 때 반드시 공부하게 되는 책인 것 같아요. 교수님은 언제 처음으로 이 책을 접하셨나요.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이 책을 펼쳐봤어요. 하지만 그때는 말 그대로 펼쳐보기만 했어요. 시험 공부를 위해서 필요한 부분만 들여다봤지 제대로 읽지 않았던 거예요. 사실 대학 시절의 저는 『군주론』을 깊게 들여다보는 것을 의식적으로 피했던 것 같아요.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말하는 바가 불편했기 때문이에요.”
 
  -불편했다니. 어떤 이유에서였나요?
  “그때의 저는 세상과 정치를 바라볼 때 이상주의적인 시각이 강했어요. 저는 어렸을 때 제가 굉장한 재벌 집 아들인 줄 알았을 정도로 부족한 것 없이 많은 사랑을 받고 컸어요. 특히 어머니께서 제게 삶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시각을 물려주셨죠. 이러한 가정환경이 제가 이상주의자로 성장하도록 영향을 준 것 같아요.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세상과 정치를 완전히 현실적인 시각으로 바라본 사람이에요. 특히 『군주론』에서 이러한 관점이 두드러졌죠. 그래서 늘 『군주론』을 읽는 것을 주저했어요.”
 
  -그렇다면 언제 제대로 읽게 된 건지.
  “영국에서 유학 시절을 보낼 때 제가 글라스고 대학의 강단에 설 기회가 있었어요. 저는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서양정치사상사>라는 강의에서 고대부터 근대까지의 서양정치사상에 대해 강연하게 됐죠. 당장 강단 위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니까 마키아벨리를 깊게 연구하게 됐어요. 자연스레 마키아벨리의 대표작인 『군주론』도 그때서야 제대로 읽게 됐어요.”
 
  -그때는 불편하지 않았던가요?
  “아니에요. 오히려 마음에 와 닿았었어요. 그때는 일련의 사건을 겪은 후에 제가 현실을 바라봐야겠다는 생각을 조금씩 하게 됐던 시기였기 때문이죠."
 
  -어떤 일을 겪었던 건지.
  "저는 강단에서 정치학을 가르치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유학길에 올랐어요. 하지만 『군주론』을 깊게 읽었던 당시엔 그 꿈이 좌절될 위기를 여러 차례 겪은 후였어요. 박사 학위를 받는 과정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던 거예요. 또 제가 굉장히 신뢰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기도 했었죠. 현실을 직시하기로 본격적으로 마음을 먹은 것은 미국 유학 시절 아버지가 간암으로 돌아가셨을 때였어요. 미국에 있는 저를 만나기 위해 투병 중임에도 찾아오셨을 때 뵌 것이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었죠. 그때 이후로 저는 제가 이 세상에 혼자 남겨진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 이상 세상을 아름답게만 볼 수는 없게 된 것이죠.”
 
  -많은 생각이 들었을 것 같아요.
“저는 제가 가진 세계관과 정치를 바라보는 관점이 옳다고만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제 삶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현실은 제 생각을 받아들여 주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때부터 저는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과연 타당한가’는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통해 검증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이상(理想)이 허상(虛想)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현실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 거예요. 이렇게 된 이후로는 마키아벨리의 사상을 집중적으로 공부했던 것 같아요. 현실적으로 세상과 정치를 바라보는 방법을 파악하기 위해서였죠.”
 
  -『군주론』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부분은 어디인가요.
  “제17장이에요. 마키아벨리는 제17장에서 ‘인간은 아버지를 죽인 원수보다는 유산을 빼앗아간 사람을 더 오래 기억한다’고 말해요. 처음에는 이 문장을 읽고 굉장히 충격을 받았어요. 하지만 이 충격적인 문장 안에 마키아벨리의 핵심적인 사상이 가장 적나라하고 노골적으로 드러나요. 인간은 날 때부터 악하다는 성악설(性惡說)과 자기 이익을 강력히 추구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담겨있죠."
 
 
 ▲니콜로 마키아벨리(1469~1527)
   
 
  -또 다른 핵심적인 내용은 무엇인가요?
  “우선 정치를 도덕과 분리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핵심적이에요.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정치는 권력투쟁의 장이며 그 투쟁에서 이기려면 ‘비르투(Virtu)’라고 불리는 일종의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해요. 군주가 가져야 할 비르투의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잔악성’이에요. 군주는 때로는 잔인해야 하고 악해질 필요가 있다는 거예요. 정치를 윤리나 도덕의 수단으로 보고 군주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소양을 ‘덕(德)’으로 여겼던 동양의 정치사상과 상반되는 대목이죠."
 
  -교수님은 정치와 도덕이 분리될 수 있다고 보시나요?
  “정치학자로서 그 질문은 정말 어려운 질문이에요.(웃음) 하지만 정치학자로서 마지막까지 고민해야 하는 질문이라고도 생각해요. 극단적으로 얘기하자면 세상에는 99%의 현실주의자와 1%의 이상주의자가 있어요. 마키아벨리와 니체를 비롯한 99%의 현실주의자는 인간의 도덕성은 학습에 의해 만들어진 가공물이라고 생각하죠. 저는 인간의 도덕성이 태초부터 내재해 있던 것인지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허구인지 아직 결론 내리지 못했어요. 다만 할 수 있는 말은 만약 1%의 이상주의자가 없다면 이 세상은 멸망할 수도 있다는 거죠. 저는 명분이 제대로 서 있지 않으면 진정한 실리를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신다면.
  “대부분의 정치가가 정치의 꿈을 좇게 된 계기나 시작은 이상을 위해서예요. 자신이 생각하기에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정치에 뛰어들죠.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도 결국은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이상을 위해서예요. 결국 이상은 현실을 추구해 나가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것이죠."
 
  -교수님의 작은 ‘군주론’을 듣고 싶어요. 좋은 군주는 어떤 군주인가요?
  “최장집 교수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라는 책에 ‘대한민국처럼 민주화가 어느 정도 이뤄진 국가는 지도자를 뽑을 때 도덕성이 잣대가 돼야한다’는 내용이 있어요. 저 역시 군주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도덕성이라고 생각해요. 대통령은 결국엔 공익을 위해 일하는 사람인데 도덕성이 높으면 당연히 사익을 추구하지 않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에요. 또 도덕적인 지도자가 당선돼야 국민에게 돌아오는 혜택이 많아진다는 이유도 있어요. 비도덕적인 사람이 지도자가 되면 국민에게 돌아오는 몫이 적을 수밖에 없어요. 도덕성이 높은 사람을 뽑았을 때 국민에게 돌아오는 이익과 혜택이 더 많다는 이유라면 저 역시 굉장히 현실적으로 접근하는 셈이네요.(웃음)”
 
  -『군주론』을 강의할 때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군주론』을 강의할 때면 마키아벨리의 냉정함 때문에 학생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저를 쳐다봐요. 정치의 현실적인 면을 처음 접했을 때 그 ‘당황스러움’이 눈에 가득 들어있죠. 그 나이 때 학생들 대부분은 이상주의자라서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아요.(웃음) 하지만 마키아벨리의 현실적인 생각은 비단 정치뿐만 아니라 우리 삶에도 적용되는 이야기예요."
 
  -어떤 부분이 적용될 수 있을지.
  “『군주론』을 읽고 난 이후에 저는 정치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가 ‘권력투쟁의 장’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인간의 삶 자체가 정치이기 때문이죠. 마키아벨리는 그 권력 투쟁의 삶 속에서 우리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메시지를 던져요. 그 메시지는 ‘항상 준비하라’는 거예요. 예측해야 할 것을 항상 예측하고 예측할 수 없는 것까지 예측하면 더 좋다는 것. 마키아벨리 식으로 표현하면 99%의 비르투를 준비했을 때 1%의 ‘포르투나(Fortuna)’, 즉 운이 따라온다는 거죠.”
 
  -교수님도 1%의 포르투나를 믿으시나요?
  “포르투나에 관한 것은 제가 마키아벨리와 가장 시각을 달리하는 부분이에요. 마키아벨리가 말했던 포르투나는 신(神)적인 영역이에요. 인간의 삶이나 운명을 주재하는 자는 신이나 외부적 존재라는 거죠. 하지만 저는 마키아벨리와는 달리 이 세상에 포르투나는 없다고 생각해요. 1%의 포르투나는 우리의 비르투, 즉 능력으로 메꿔갈 수 있어요. 인간은 자기 삶의 처음부터 끝을 스스로 개척해나가는 존재라고 믿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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