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 가장 빛나는 시기. 여러분의 하루는 어떻게 지나가고 있나요? 강의를 듣고 과제를 하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저물어 가고 있진 않나요. 이렇게 젊은 날의 하루하루가 모여 우리의 모습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번학기 중대신문 심층기획부는 20대 청춘, 그 젊은 날의 초상을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오늘의 초상은 ‘빠순이’입니다. 학창시절 여러분이 좋아하는 연예인은 누구였나요. 입시공부에 치이던 날들을 달래준 이는 비단 친구나 가족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로 울고 웃으며 위로를 받기도 했을 텐데요. 하지만 때때로 그런 팬들에게 주변에서  보내는 눈초리는 따갑기만 합니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비난받는 팬들의 속사정. 젊은 날의 초상과 함께 들여다보시죠.
 
  
 
 
  팬덤 문화를 치기 어린 시절 잠깐 겪는 열병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나 아이돌 팬 문화는 10대의 전유물이라며 시간이 지나면 당연히 다음 세대에게 넘겨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한편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속앓이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20대이지만 영원히 빠순이고 싶은 이들은 ‘그 나이에 아직도 아이돌이나 좋아하니?’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가면을 쓰곤 한다. 사랑엔 나이가 없다더니 ‘아이돌을 사랑하는 나이’는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내 나이가 어때서
  ‘빠순이’라는 단어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은 ‘오빠’와 ‘순이’의 합성어다. 빠순이는 2000년대 젝스키스, HOT와 같은 아이돌 가수를 열광적으로 좋아했던 10대에게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오늘날에 빠순이라 불리는 팬들은 오히려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들보다 나이가 많기도 하다. ‘평균 연령 17세 최연소 아이돌 그룹’과 같이 점점 더 어려지는 연예인의 나이와 반대로 그들을 좋아하는 팬들의 나이는 더이상 10대에 국한되진 않는다.

  “20대가 되니 제 또래나 저보다 나이 많은 아이돌은 찾아보기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난 이젠 어른이야’라는 생각으로 다른 곳에 눈을 돌렸죠. 그러다 음악방송을 통해 한 아이돌 그룹을 알게 됐어요. 신나는 일레트로닉 사운드의 음악과 멋진 비주얼이 제 눈을 사로잡았죠.” 이혜원 씨(가명)는 자신보다 어린 아이돌 그룹을 좋아할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어느새 그들이 음악방송에서 1위 하는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릴 정도로 팬이 돼 버렸다.

  하지만 순수한 팬심을 곱게만 바라보지 않는 사람들이 그를 힘들게 했다. “제가 아이돌을 좋아한다고 말하니깐 ‘우와 너 아직도 아이돌 좋아해?’라며 비웃더라고요. 그 후로 전 누구를 좋아한다고 밝히지 않아요. 콘서트도 남들 모르게 다녀오곤 하죠.” 이혜원 씨는 ‘지난 주말에 뭐했어?’라는 물음이 ‘주말에 또 콘서트 갔어?’라는 질문으로 바뀔까 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타인들의 지나친 관심과 시선은 팬을 당당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학창시절에는 ‘덕질’을 편하게 했죠. 여중·여고를 나왔거든요. 그땐 쉬는 시간에 뮤직비디오를 틀어놓고 다 함께 보기도 했어요. 그런데 대학에 오니깐 아이돌을 좋아한다는 것을 숨기게 되고 혹시나 팬인 게 들킬까 봐 걱정하기도 해요.” 김정은 학생(가명)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수년간 빠순이를 자처해왔다. 하지만 성인이 돼 대학에 오자 연예인을 좋아하는 자신을 철없고 한심하다고 생각할까 봐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부끄럽진 않지만…
사실상 빠순이를 가장 불편하게 만든 것은 가족이었다. 한승연 학생(가명)은 부모님에게 아직도 자신이 빠순이임을 밝히지 않는다. “부모님 몰래 덕질을 하고 있어요. 연예인을 좋아한다고 말은 했지만 콘서트에 갈 때엔 이를 비밀로 하곤 해요.”

  “제가 숨어서 덕질을 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가족 때문이죠.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자라 어린 시절엔 연예인은 고사하고 드라마 본방사수도 못했어요. 비디오테이프, 카세트테이프를 모으곤 했는데 보이는 족족 어머니가 다 부숴버렸죠.” 이혜원 씨는 어린 시절 받았던 간섭 때문에 좋아하는 연예인을 숨기는 것이 습관화돼 버렸다. 하지만 이것이 모두를 위한 평화라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타인들의 차가운 시선은 팬들을 위축되게 만든다. “원래 주변 사람들에게 좋아하는 연예인이 있다고 말하는 편이었어요. 그런데 몇몇 사람들이 나이 먹고 뭐하는 짓이냐고 나무라더라고요. 아이돌을 좋아한다니까 생각 없는 극성팬이라 취급하기도 했죠.” 김수민 학생(부산외대 영상언론융합학과)은 자신을 특정 아이돌의 팬이라고 소개하자 주변에서 사생활을 침해하는 극성팬과 동일시해 기분이 나빴다고 말했다. 이뿐만 아니라 ‘걔 언제 군대 가냐?, 걔 아마 공익으로 빠질 걸?’이라며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을 조롱하는 행위도 서슴지 않는 모습에 큰 상처를 받았다.

  이러한 환경에서 다년간 팬 활동을 했던 이들은 해탈하기도 하고 되레 숨어버린다.  즉, ‘일코(일반인 코스프레)’를 자처하게 된 것이다. “연예인의 팬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고정관념이 사회에 박혀있는 만큼 일코는 팬들에게 요구되는 요소가 돼버린 것 같아요.” 도지영 학생(가명)은 좋아하는 감정이 잘못된 행동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숨겨야 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또한 이혜원 씨는 자신에게 일코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고 말했다. “저의 멘탈, 사회적 지위 보호가 가장 우선이잖아요. 존중받지 못하는 취미를 굳이 보여주고 싶지 않아요.”

  모든 일코 현상은 타인으로부터 받는 배타적인 시선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자발적 일코’와 ‘비자발적 일코’를 나누는 것은 무의미하다. “숨기고 덕질하는 것이 편하죠. 제가 아무리 당당하다 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제게 빠순이라며 비난하겠죠.” 한승연 학생은 팬들에게 일코를 하게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가 일종의 폭력처럼 여겨진다고 말했다.일코가 유행하게 되면서 팬들 사이에선 일코배경, 일코사진, 일코텀블러 등을 제작하는 게 유행한다. 최대한 팬임을 티 내지 않는 선에서 그들만의 문화를 유지해 나가고 싶은 것이다.

  특별하지 않게
  “아이돌을 좋아하는 게 할 일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잖아요. 팬덤 문화를 이해하는 자세를 모두가 가졌으면 좋겠어요.” 이호정 씨(가명)는 타인들이 개인의 취향에 대한 이해심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정은 학생 또한 서로를 존중해주는 문화가 널리 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 고등학교 동창은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덕질하고 전 연예인 덕질을 해요. 서로 관심 분야는 다르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자랑하고 사진을 나누기도 하죠. 이는 상대방을 향한 존중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해요.”

  한승연 학생은 사람을 좋아하는 데 있어서 ‘왜’라는 질문은 불필요하다고 말했다. “모두가 각자의 가치관이 있잖아요. 어떤 사람이 연예인을 좋아한다고 해서 한심하게 보는 것 자체가 한심한 거죠. 제게 왜라는 질문은 필요치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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