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17.5.22 월 14:32
학술문화교수님과 강의실 밖 산책
한 알의 대추 속에는 태풍과 천둥이 들어있다-조교수의 시 세 편
주보배 기자  |  bobe@cauon.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6.09.25  03:38:45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조갑출 간호부총장(간호학과 교수)은 40여 년간 간호직에 몸담아왔다. 이 시간동안 그에게 가장 큰 위안이 됐던 것은 의외로 문학이었다. 지금도 조교수는 결혼을 앞둔 제자에게 칼릴 지브란의 「결혼에 대하여」를 건네고 강단에서 제자들에게 어느 소설의 한 장면을 소개한다. 이번주 강의실 밖 산책에서는 조교수가 삶의 길목에서 꺼내 읽었던 3편의 시들을 들춰보았다. 

 

   
 ▲시집을 품에 안은 조교수가 가을 햇살 아래서  미소 짓고 있다.

 
문학소녀가 간호의 길에서 찾은 검은 빛의 비밀
 
조교수의 책장에는 두꺼운 의학서적도 있지만 얇은 시집들도 가득하다. 시집의 표지는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듯 모두 빛이 바랬다. 어렸을 때부터 문학을 사랑했고 지금도 누군가가 노래를 요청할 때면 시를 읊는다는 그. 시를 읽는 순간마다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을 느낀다는 그를 어느 화창한 가을날에 만나봤다. 

  -간호학에 관한 서적일 줄 알았는데 시를 추천해주셨어요.
  “저는 과학기술이 지배하는 사회일수록 오히려 감성의 힘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감성에 집중하는 시간은 곧 자신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시간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요즘 학생들은 감성을 채우려는 노력이 부족해 보여요. 시 한 편을 읽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지만 그 시간 동안 우리의 마음은 촉촉해지고 차분하게 가라앉죠. 시가 감성을 채우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기에 선정했어요.”
 
  -시를 사랑하시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시뿐만 아니라 문학을 좋아했어요. 고등학교 때 문예부장을 맡아 문학의 밤이라는 행사를 주관하기도 하고 백일장에 나가서 상도 많이 탔죠. 당연히 대학에 가서도 문학을 배우고 싶었어요. 하지만 아버지의 병세로 어려워진 집안 형편 탓에 그럴 수 없었어요. 그래서 적십자간호대학에 진학했어요. 당시 간호대학은 등록금이 아주 저렴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문학의 길을 뒤로하고 간호의 길로 접어든 거네요.
  “그렇죠. 「검은 빛」이라는 시는 제가 문학을 포기하고 대학에서 간호학을 배울 때 큰 힘이 됐던 시예요.”
 
…중략/모든 빛과 빛들이/반짝이다 지치면,/숨기어 편히 쉬게 하는 빛./그러나 붉음보다도 더 붉고/아픔보다도 더 아픈,/빛을 넘어/빛에 닿은/단 하나의 빛.
-『김현승 시전집』 의 「검은 빛」 중
 
  -「검은 빛」의 어떤 구절이 마음을 울렸는지.
  “단연 마지막 연이에요. 보통 검은색 하면 우리는 어둠과 절망의 이미지를 쉽게 떠올려요. 하지만 검은색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색보다 진한 색이에요. 또한 빛을 반사하는 흰색과 달리 빛을 흡수하는 색이죠. 작가는 검은 빛을 ‘붉음보다 더 붉고’, ‘빛을 넘어 빛에 닿은 단 하나의 빛’이라고 묘사하죠. 이 부분을 읽고 저는 검은 빛처럼 살겠다는 마음을 굳게 먹었어요. 오죽하면 시를 읽은 이후에는 검은색 옷만 입고 다닐 정도였어요.(웃음)”
 
  -검은 빛처럼 사는 것은 어떤 삶일까요.
  “대학에 오니 주변에는 마치 ‘붉은색’처럼 화려한 친구들이 있었죠. 그 사이에서 저는 어쩌면 볼품없는 색처럼 보였을지 몰라요. 하지만 한번도 제 처지를 비관하거나 가난을 부끄럽게 여긴 적은 없었어요. 아버지가 무능해서가 아니라 편찮아서 생긴 가난이었기 때문이죠. 아버지가 살아계시기만 한 것도 제겐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어요. 간호의 길을 걷게 된 것도 비록 제가 원하던 길은 아니었지만 제게 주어진 이 길을 열심히 걸었어요. 그러다 보니 간호학을 너무도 사랑하게 됐죠. 그때의 저는 제가 처한 상황을 마냥 비관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자 했어요. 마치 모든 색을 흡수해서 단 하나의 빛이 되는 검은색처럼 말이에요.”
 
  -학생들에게 「검은 빛」을 소개하고 싶은 이유를 들려주신다면.
  “학생들도 ‘검은 빛’이 됐으면 좋겠어요. 비록 내가 지금 처한 상황이 검은색을 언뜻 보았을 때의 느낌처럼 어두워 보일지 몰라요. 하지만 검은 빛은 결국 빛을 넘어 빛에 닿은 색이에요. 여러분도 자신의 삶을 비관이 아니라 수용의 태도로 대하고 더 나아가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면 더 짙어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어요. 검은색은 어떤 다른 색보다 다른 화려한 색이라는 걸 잊지 말았으면 해요.”
 
  -강은교 시인의 「사랑법」은 혹시 교수님의 연애 스토리와 관련이 있나요?(웃음)
  “아쉽게도 그렇진 않아요. 저는 70년대 후반에 대학을 졸업하고 3년 동안 병원에서 간호사 생활을 했었어요. 이 시는 그때 많이 읽었던 시예요.”
 
…중략/쉽게 꿈꾸지 말고/쉽게 흐르지 말고/쉽게 꽃피지 말고/그러므로//실눈으로 볼 것/떠나고 싶은 자/홀로 떠나는 모습을/잠들고 싶은 자/홀로 잠드는 모습을//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그대 등 뒤에 있다
-강은교 시집 『풀잎』의 「사랑법」 중
 
  -어떤 상황에서 이 시를 읽게 되신 건지.
  “간호사는 환자의 병만 돌보는 직업이 아니라 삶을 함께 돌보는 직업이에요. 환자와 직접 대면하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많기 때문이죠. 환자는 병중에 있기 때문에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고 때로는 예민하기도 해요. 게다가 간호사와 함께 일하는 직종은 의사, 임상병리사 등 아주 다양하죠. 이런 상황에 있다 보면 간호사들은 상처받을 때가 많아요. 저 역시 현장에서 간호사로 근무할 때 억울하고 힘들 때가 있었어요. 실수를 해서 의사로부터 질타를 받을 때도 있었고 환자의 보호자로부터 상처를 받은 적도 있었죠. 그때마다 「사랑법」을 많이 읽곤 했어요.”
 
  -「사랑법」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시 속 화자는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 할 것’을 말해요. 저는 이 부분이 ‘고요한 인내’를 말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일에 대해 서두르지 않고, 감정이 시키는 대로 쉽게 흘러가지 않고 조용히 기다리는 자세 말이에요. 저는 이 자세가 간호사가 가져야 하는 자세라고 생각해요. 현장에 이제 막 나아간 간호사들은 상처를 받는 순간이 올 수 있어요. 그럴 때마다 고요한 인내를 품길 바래요. 또 시 속 화자가 마지막 즈음에 언급한 구절처럼 그 상황 자체를 ‘실눈으로’ 봤으면 해요.”
 
  -‘실눈으로’의 의미가 궁금해요.
   “저는 나를 상처받게 하는 순간 자체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라는 의미로 해석했어요. 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조금은 가볍게 생각하는 초연한 자세를 가지라는 거죠. 비단 현장의 간호사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우리 모두가 누군가의 관계 가운데서 상처받을 때 가져야 하는 태도가 때로는 ‘실눈으로’ 보는 태도 아닌가 싶어요.”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은 언제 읽은 시인가요.
  “「대추 한 알」은 2009년 제가 적십자간호대의 총장으로 막 부임했을 때 읽었던 시예요. 저는 당시 전통적으로 명성이 있던 학교를 3년제에서 4년제로 재편해야 한다는 무거운 사명감을 느끼고 있었어요.”
 
…중략/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저안에 태풍 몇 개/저안에 천둥 몇 개/저안에 벼락 몇 개/저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서서/붉게 익히는 것 일게다
-장석주 시집 『시집:붉디 붉은 호랑이』의
「대추 한 알」 중
 
  -그때 「대추 한 알」은 어떤 메시지를 던졌는지.
  “제가 총장으로서 적십자간호대와 중앙대와의 합병을 추구할 당시 많은 고비가 있었어요. 어떨 때는 ‘왜 이 무거운 짐이 나에게 주어졌을까’라는 고민을 할 때도 있었죠. 그때 저는 홀로 차에서 운전을 할 때도 걸어 다닐 때도 이 시를 되뇌었어요. 시 속 화자는 대추 한 알이 익기 위해서도 시련과 역경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해요. 시를 읽을 때 마다 대추 한 알이 둥글고 붉어지기 위해서도 저런 인고의 시간이 필요한데 90년에 달하는 대학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일이 어찌 순탄할 수 있겠느냐며 마음을 다잡았어요.”
 
  -교수님의 ‘대추 한 알’은 무엇일까요.
  “저에게 있어서 대추 한 알은 사명이에요.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온갖 시련을 거쳐야 하죠. 대추 한 알에는 태풍과 천둥 그리고 번개가 들어있듯이 말이에요. 학생들에게도 모두 한 알의 사명이 있을 거예요. 그 사명에 불어 닥치는 태풍과 천둥이 너무 힘겨운 날에는 제가 추천한 시들을 읽어보길 바라요.”

 

< 저작권자 © 중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주보배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신문사 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로 84 중앙대학교 310관(100주년기념관 및 경영경제관) B205호 중대신문사 | 대표전화 : 02-881-7358~9 | 팩스 : 02-817-9347
인터넷총괄책임 : 편집부국장 | 게시판총괄책임 : 편집부국장 | 청소년보호책임자 : 편집부국장
Copyright 2017 중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editor@cauo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