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찬 시인은 25살에 낸 첫 시집 『구관조 씻기기』로 최연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내놓은 두 번째 시집 『희지의 세계』도 출간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1만권을 쉬이 돌파했다. 시인 김행숙은 그의 시를 “언어에게 옷을 입히는 방식이 아니라 언어를 씻기는 방식을 통해 새로운 시적 경험을 제공한다”고 평했다. 29살의 나이에 벌써 문단에서 나름의 개성을 구축하고 있는 시인 황인찬을 만나서 ‘쉬운 언어로 쉽지 않은 세계를 그려내는’ 그의 시 세계에 대해 들어봤다. 
 
 
 
‘입장’엔 여러 뜻이 있다. 진입, 처지, 장소…. 그의 시 ‘입장’은 입장이란 말이 갖는 여러 요소를, 이미지를, 상황을 모두 품고 움직인다. 이렇듯 그의 시는 어느 하나의 의미로 단정할 수 없다. 어느 하나로 정의하고 규정지을 수 없는 그의 시처럼, 그도 도무지 무어라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는, 다만 ‘황인찬’이다.
 
  -시인은 처음 만나본다. 신기하다.
  “다들 그러시더라고요.”

  -카페에서 시를 쓰는 것도 특이하다. 시 쓰는 스타일이 어떤가.
  “일단 오래 앉아있어요. 오래 앉아서 딴 짓을 좀 많이 해요. 딴 짓하다 시를 쓰고, 생각을 딴 데 돌렸다가 다시 돌아오고 그래요. 생각을 계속 집중해봐야 아까 했던 생각에서 못 벗어나잖아요. 생각이 성큼성큼 잘 안 나가면 그냥 잠깐 내려놓고 딴 짓을 하는 거죠. 그 와중에 다른 책도 읽고 트위터도 하고 웹툰도 보고 그래요.”

  -트위터 활동을 열심히 하더라. 왠지 말 없고 진중할 것만 같은 시인의 이미지와는 많이 달라서 놀랐다.
  “제가 인터넷 인격이 좀 그래요. 특히 트위터는 누구 앞에서 하는 말이 아니라 혼잣말하는 공간이니까 더 마음껏 활개를 칠 수 있어서 마음 편하게 하고 있죠. 할 게 없으니까.(웃음)”

  -재미있게 작업을 한다.
  “그래서 시간이 너무 많이 들어요. 효율이 떨어지죠. 근데 뭐, 돈 벌고 싶었으면 애초에 시를 안 썼을 테니까.”
 
 
   그가 첫 번째 시집 『구관조 씻기기』에서 보인 태도는 잠깐의 ‘멈춤’이었다. 멈춤을 통해 대상을 바라보며 유예상태를 만들려고 했던 것. 그러나 잠깐 멈추는 것만으로는 무엇인가가 바뀔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는 생각에 두 번째 시집 『희지의 세계』를 냈다. 황인찬은 이제 바라보지만 않고 대상에 접근한다. 행동하고, 직접 관여한다. “결국 예술은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어요. 이 삶을 어떻게 대할 것이냐, 인간을 어떻게 대할 것이냐에 대한 얘기니까요.” 그는 인터뷰가 시작되자 눈빛을 낮게 내리 깔며 자신의 세계를 이야기했다.
 
 
  -어떻게 문학을 하게 됐나.
  “원래는 시가 아니라 소설을 쓰고 싶었어요. 고등학교 때 이것저것 골라 집다가 배수아 소설가의 『철수』를 읽었죠. 큰 충격을 받았어요. 너무나도 이질적인 새로움을 주는 소설이었거든요. 그때부터 매달 한편씩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렇다면 왜 계속 소설을 쓰지 않고.
  “막상 대학에 와서는 소설을 한 편도 못쓰겠는 거예요. 이건 이래야 하고 저건 저래야 하는 기준들이 생겨나니까 너무 답답하더라고요. 그제야 제가 쓰고 싶은 게 소설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죠. 그 후 한참을 방황 했어요. 고등학교 때 썼던 소설을 그대로 제출하는 둥 대강 시간을 보냈죠.”

  -시로 전환한 계기는.
  “제가 자발적으로 쓴 시를 칭찬받은 적이 있었어요. 근데 그 칭찬해주신 선생님이 정말 멋있는 분이었거든요. ‘아 저게 예술가의 삶이구나’ 싶을 정도로 문학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멋있었어요. 그래서 저런 멋진 예술가한테 칭찬받고 싶다는 생각에 시를 더 열심히 쓴 것 같아요. 원래 칭찬해주면 더 잘하고 싶고 그렇잖아요.(웃음)”

  -본인이 그리는 세계는 어떤 건가.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어요. 다만 언제나 가리키고 싶은 지점은 우리가 지금 사는 삶이고 이 세계예요. 사실 다 엉망진창이잖아요. 모든 것이 엉망진창인 이 세계를 ‘어떻게 마주 보느냐’,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것이 사실 제가 가리키려고 하는 방향성이죠.”

  -세계에 대해 다소 냉소적이다.
  “제정신인 이상 마냥 낙관적으로 바라볼 수만은 없는 세상에 살고 있잖아요, 우리는. 매일 절망을 확인하죠. 하지만 비관만 하고 주저앉는 건 절대 안 돼요. 세상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동시에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야 하고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게 문학이 하는 일이고 예술의 역할이죠.”

  -일반 학생들은 시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알려 달라.
  “시라고 하면 접할 일이 없어서 어색함을 느끼는 거지,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시에 쉽게 접근하는 방법이라면 일단 시집을 읽는 거예요. 시를 한두 편 읽어서는 잘 알 수 없던 것들이 시집을 한 권 읽고 나면 알게 되는 것들이 생기거든요.”

  -시 자체가 잘 이해가지 않는다면.
  “이해의 여부로 접근하면 어려워져요. 원래 예술이란 게 바로 이해되면 재미없잖아요. 처음엔 그냥 말이나 단어나 문장의 느낌을 보고 즐기는 정도면 충분해요. 읽다 보면 점점 눈에 익숙해져요. 점차 익숙해지면서 장르 특유의 문법을 알게 되면 재미있어질 거예요.”


  -중고등학생 때 시를 어절 단위로 공부하다 보니 오히려 그런 식의 접근이 어색하다.
  “사실 시인들 중에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가 바로 일대일로 대응되게 설계해서 쓰는 사람은 없어요. 근데 학교에선 가르쳐야 되니까 여러 의미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고 대표적인 뜻 하나로 모든 걸 정리해버리죠. 그러면 오히려 나머지 의미가 모두 탈락하면서 엉뚱한 의미가 돼버리기도 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한 권의 시집을 읽고 난 후에 이해하라고 한 거예요. 그래야 시인이 그리는 세계를 알 수 있어요.” 

 

 
「무화과 숲」
 
쌀을 씻다가
창밖을 봤다

숲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그 사람들이 들어갔다 나오지 않았다
옛날 일이다

저녁에는 저녁을 먹어야지

아침에는
아침을 먹고

밤에는 눈을 감았다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ㅡ황인찬 시집 『구관조 씻기기』 中

 
 
  -영감이 막 떠오르나.
  “평상시 생각한 걸 메모를 해두는 편이에요. 메모는 한 문장일 때도, 단어일 때도 있어요. 거기서 출발해서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방식으로 시작하죠.”

  -옮겨가는 방식이라니.
  “제목부터 생각하는 거죠. 시 쓸 땐 일단 제목을 적어둬야 다음 발걸음이 움직여지더라고요. 제목을 먼저 적어두고 다음 문장이 좋은 게 나올 때까지 계속 기다리는 거죠.”

  -메모장 볼 수 있나.
  “그건 부끄러우니까 안돼요.”

  -메모가 실제 시로 탄생한 것이 있나.
  “거의 모든 시가 그렇게 탄생했어요. 책을 읽다가, 길을 가다 붙어있는 말을 보다가, 농담을 하다가, 뭐 하나가 갑자기 잡혀서 떠오르는 것이면 뭐든 간에 메모해두죠. 그걸 제목으로 설정하고 거기서부터 거리를 획득하는 방식으로 움직여요. 실제로 ‘구관조 씻기기’도 그렇게 시작했죠.”

  -자세한 설명 부탁한다.
  “시상으로 쓰일 검은색 새가 뭐가 있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였어요. 원래 까마귀를 넣을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구관조가 떠올랐죠. 그래서 네이버에 구관조를 검색했는데 어느 지식인 글제목이 ‘구관조 씻기기’였어요. 순간 ‘구관조 씻기기’란 말의 어감이 너무 이상하게 와 닿는 거예요. 심지어 그 내용은 자기가 구관조를 키우는데 어떻게 씻기면 되냐는 질문이었는데 대답이 뭐였는지 아세요? ‘새는 스스로 씻으니까 씻길 필요가 없다’였어요. 근데 그 답변의 문장도 너무 아름다웠어요. 최대한 가치판단을 제외하고 사실만을 적어놓은 중립적인 백과사전식 문장, 그런 드라이한 문장이 굉장히 아름다울 때가 있거든요. 그래서 그냥 그 답변을 시에 가져왔죠.”

  -주제를 먼저 생각해둔다는 건가.
  “아뇨, 제목은 첫걸음이지만 주제라고 할 순 없어요. 제목이 내용을 설명하면 내용이 필요 없죠. 제목이 모든 걸 설명하는데 뭐 하러 내용이 필요하겠어요. 제목은 작품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 단지 풍부하게 해주는 거예요. 내용도 미리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제목과 가장 떨어져 있는 문장을 갖다 쓰죠.”

  -그렇다면 계획 없이 무작정 시작하나.
  “네. 우선 제목을 적어두고 그것과 가장 무관한 걸 떠올려요. 제목과 내용 첫 줄이 비슷하면 같은 자리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똑같은 생각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거죠. 그건 좋은 시가 아녜요. 그래서 제목을 잡아두고 그 제목과 많이 떨어져 있는 다른 문장들을 가져와요.”
 
  -제목과 내용이 전혀 관련이 없단 건가.
  “관련이 생기는 거죠. 말하자면, 제목과 내용이 떨어져 있는 만큼 그사이에 의미의 폭이 넓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제목을 적어두고 그거랑 거리가 있는 방향을 찾아서 움직여요. 일단 첫 연을 쓰면 이 시는 어떤 시가 돼야 할지에 대한 감이 조금씩 잡히기 시작해요. 좀 더 쓰면 이 시의 형태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 방향성이 잡히고 그러면 이제 윤곽을 다져가면서 전체 모양을, 의미의 흐름을 조정해나가는 거죠.”

  -의도하고 시작하는 게 아니라 쓰다 보면 의도가 생긴다는 건가.
  “그렇죠. 내용을 정해두고 쓰는 시라면 쓸 필요가 없어요. 그냥 그 내용을 잘 정리해서 산문으로 쓰면 되니까요. 시를 쓴다는 건 처음 생각했던 그곳으로부터 다른 지점으로 도달할 때까지 적절한 의미의 거리를 확보해 나가는 과정이거든요. 오히려 의도가 있다고 믿고 그걸 미리 정해버리면 스스로가 스스로 생각하는 방향을 곡해하는 거예요.”

  -본인의 시가 수단으로서의 시는 아닌가.
  “그렇게 단언하긴 어려워요. 시에 대한, 삶에 대한, 세계에 대한 것들을 표현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시의 내용, 메시지가 무엇이라고 정해줄 필요는 없어요. 왜냐하면 인간은 착각의 생물이고 머리가 나빠서 우리가 정말 뭘 생각하는지 모르니까요. 다만 어떠한 윤곽이 존재하죠. 그 윤곽을 드러내기 위해선 메시지를 제시하는 게 아니라 어떤 하나의 방향성을 만들어서 움직여야 해요.”

  -결국 시인의 평상시 세계관이 방향성으로 표출되는 건가.
  “네. 제가 어떤 지점을 고민하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거든요. 사실 방향성을 확인하는 작업은 한편으론 동시에 제가 쓴 시를 다시 되돌아보는 일이기도 해요. 그런 것의 축적 속에서 경향성과 방향성이 생기니까 제가 원하는 방향성을 갖기 위해 앞으로는 어떤 것들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죠.”

  -단일 작품 하나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이야긴가.
  “그렇죠. 어떤 작품을 하나 만드는 게 중요한 건 아닌 거죠. 개별 작품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중요한 건 한 권의 시집이고, 한 권의 시집이 모여서 만들어진 한 명의 시인이죠.”

 

 

 「오수」
 
그 아이를 개로 만들고 싶어서 나는 쓰기 시작했다
쓰다 보니 그것은 소설이었다 
아름답고 아름다운 소설이었다

“그 아이는 개였다
하얗고 털이 많고 항상 혀를 내밀고 있다

그 아이는 운전을 잘하는 개여서
우리는 차를 타고 어디든 갔다

정말이지 사랑스러운 개였다
나의 품에 안겨서 자주 낑낑거렸다

석양이 질 때면 우수에 찬 개였고
머리를 기대어 앉으면 두 심장이 뛰는 밤이었다

어느 날 나는 나의 영혼을 견딜 수 없었다

그 아이가 너무 좋았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개에게 고백했다

사, 랑, 해

너무 떨려서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억지로 쥐어짜며
한 음절씩 끊어 말했다

그 아이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자꾸 짖었다”

그것을 다 썼을 때, 어디선가 불이 났다 그것은 소설과는 무관한 일이었다 나는 나의 아름다운 소설을 보여 주고 싶었으나 그 아이는 개가 아니다

 

ㅡ황인찬 시집 『희지의 세계』 中

 
 
  -시인으로 산다는 건 어떤 것 같나.
  “자기 자신을 계속 끊임없이 괴롭히는 일이에요. 불안을 가진 채로 회의하고, 그러면서도 이것이 무엇인가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거란 희망을 품죠.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보상을 바랄 수 있는 일도 아니고요. 시 쓴다고 부자가 되진 않거든요.”

  -고독하고 가난한 시인의 길이다.
  “아무리 잘나고 대단한 시인도 부자가 될 순 없어요.(웃음) 물론 보상이라면 이게 의미
 
있는 일이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평가를 받는 것인데 그것도 일시적인 거고 한편으론 허망한 거죠. 그런 의미에서, 남는 게 없는 장사예요.”

  -왜 시인의 길을 선택했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하면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 그리고,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게 시라는 착각. 그런 거겠죠, 일단은.(웃음)”

  -착각은 항상 원동력이 된다.
  “맞아요. 시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시보다 중요한 건 없다는 착각도 덧붙일게요. 그리고 아직 좀 더 해볼게 남아있는 것 같다는 착각도요.”

  -시를 쓰는 건 즐겁나.
  “아니요, 재미없어요. 재미있으면 문제가 되죠.”

  -왜인가.
  “더 잘해야 하고 앞으로 더 나아가야 하는데, 이게 어떻게 재밌을 수 있겠어요. 마냥 재밌으면 아마추어죠.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으면 당연히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어요. ‘이게 끝인가? 정말 더 뭐가 없나?’며 항상 절망해야 하고요. 물론 시를 쓰다가 저도 모르는 지점, 예상하지 못했던 지점에 도달했을 때의 그 놀라움, 즐거움, 쾌감이 있긴 하죠. 한편으론 제가 아직은 계속 시를 써도 된다는 이야기잖아요. 하지만 그것 때문에 시를 쓴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끊임없는 불안의 연속이다.
  “이 길이 맞나, 이게 잘하는 게 맞나, 필요한 게 맞나, 사실은 별로 필요 없는 건데 착각하는 건 아닐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나, 이런 불안들을 계속 참고 견디고 앞으로 나아가는 게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자기 위안을 할 겨를이 없어요. 설령 그런 착각을 하더라도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면 후회해요. 시를 쓴다는 건 항상 후회하고 회의하는 일의 반복이죠.”

  -시는 그럼 무엇인가. 당시 시인의 감정의 해소인가.
  “아니요. 감정의 해소도 아닐뿐더러 일단 시는 감정을 표현하는 일이 결코 아녜요. 감정은 생각과 상황에 따라오는 거지 단지 장식이고 부수적일 뿐이죠. 기쁘다, 슬프다, 이런 감정을 표현하는 게 중요한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어차피 인간의 감정이란 게 거기서 거기라서 의미가 없어요. 감정을 중요한 거라고 생각하면 다 똑같아지죠.”

  -그렇다면 시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뭔가.
  “생각의 간격들, 생각의 전환들, 그리고 건너뜀이죠. 이런 것들은 그 순간이 아니면 할 수 없기 때문에 우연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가장 애착이 가는 시는.
  “없어요. 왜냐면 시는 쓰고 나면 잊어버리고 치워버리는 거라 잘 돌이켜보지 않아요. 괜히 후회되니까요.”
 
  -왜 후회가 되나.
  “별로니까요. 그래서 계속 후회가 되니까요. 근데 한편으론 사실 이렇게 들춰보다가 어, 내가 이거 어떻게 썼지 하는 것들도 있어요. 그런 걸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래는 거예요. ‘도대체 내가 이만큼 어떻게 건너뛴 거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 하면서요. 남의 글 같기도 하고, 내 글 같지 않고.(웃음)”

  -예전 시를 봤을 때 별로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현재 더 발전했기 때문인가.
  “꼭 그런 건 아녜요. 사람이 발전하기는 진짜 힘들잖아요. 그니까 그냥, 향상을 발견한 거죠. 일단 시 자체를 일단 만족할 때까지 쓰는 일이 없어요. 만족할 때까지 쓰면 절대 완성할 수 없거든요. 결과적으로 어떤 의미에서는 타협하는 과정이죠. 더 이상은 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는 거지 이게 만족은 아니에요.”

  -본인의 시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 시가 됐으면 좋겠나.
  “시가 의미를 지니는 건 소용이 없는 일이에요. 시라는 게 의미가 있는 방식은 ‘의미’라고 하는 것을 밀어내고 정제시키고 유보하는 방식으로 ‘의미’를 획득하는 거거든요. 제가 바라는 건, 제 시는 어떤 의미를 지닌다기보다 어떤 의미를 재고하게 하는 것이었으면 좋겠어요. 그게 제 시가 가지는 ‘의미’이길 바라요.”

  -잘 이해가 안 간다.
  “시라고 하는 일은 어떤 의미를 막 추출하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은 결코 아니거든요. 다만 고정관념에 대해 ‘그게 진짜야? 그거 아닐 수도 있지 않아?’ 이렇게 계속 물어보면서 물음표를 던지는 거예요. 예술은 물음표를 던질 때 명확한 메시지를 띄우지 않아요. 다만 다른 방향에서 보도록 하고 쪼개서 보도록 하고 다른 생각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죠.”

  -그럼 앞으로도 의미를 재고하게 하는 시를 쓰고 싶나.
  “네. 앞으로도 제 시는 끊임없이 제가 사는 삶과 그 주변을 끊임없이 둘러보고 생각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모순적이게도 그것조차 시에 대한 명확한 이상과 목표를 확실하게 갖고 시는 이래야 한다고 틀을 짜주는 것 같아서 싫지만요.”
 
 
구관조 씻기기  
                                                                        황인찬
 
이 책은 새를 사랑하는 사람이
어떻게 새를 다뤄야 하는가에 대해 다루고 있다
 
비현실적으로 쾌청한 창밖의 풍경에서 뻗어
나온 빛이 삽화로 들어간 문조 한 쌍을 비춘다
 
도서관은 너무 조용해서 책장을 넘기는 것마저
실례가 되는 것 같다
나는 어린 새처럼 책을 다룬다
 
“새는 냄새가 거의 나지 않습니다. 새는 스스로 목욕하므로 일부러 씻길 필요가 없습니다.”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읽었다 새를
키우지도 않는 내가 이 책을 집어 든 것은
어째서였을까
 
“그러나 물이 사방으로 튄다면, 랩이나 비닐 같은 것으로 새장을 감싸 주는 것이 좋습니다.”
 
나는 긴 복도를 벗어나 거리가 젖은 것을 보았다
 
 
 
  당신에게 중앙대란?
   “즐거웠어요. 문창과는 한 반에 한 명씩 있는 책 읽는 애들이 모이는 곳이거든요. 항상 외롭던 애들이 친구가 생겼으니 얼마나 즐겁겠어요. 함께 모여서 생각하고, 열심히 목소리를 냈죠. 생각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사유해야 하는지 알게 해준 게 중앙대예요. 아주 소중하죠. 그래서 학교가 예술계열이나 인문계열을 축소하는 것에 대해 불만이 아주 커요. 저한텐 그 생각을 할 기회를 마련해준 대학 시절이 너무 값지고 소중한데 학교 정책에 따라 많은 학생이 생각할 기회를 빼앗기니까요. 풍요로운 사유를 가능케 하는 게 예술의 역할이고 인문학의 역할인데 말이에요. 그건 다시 말해 제 소중한 경험들을 줄여나가는 것이기도 하죠. 그런 점에선 굉장히 아쉬워요. 지금도 대학원생 신분으로 몸담고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애증의 공간인 것 같아요.”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