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평강왕 때 온달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놀림을 받을 만큼 괴상한 용모를 하고 있었지만 마음씨는 착했죠.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바보온달이라고 불렀습니다.’ 온달이 바보라 불린 이유는 괴상한 용모보다도 착한 마음씨 탓이 더 크다. 아무리 놀려도 화를 내지 않고 성심이 좋아 궂은일을 도맡아 해 바보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알아줘 나의 속마음 
네게 상처 주면 행복해질까
 
 
 오늘날에는 ‘호구’라 불리는 바보온달이 존재한다. 호구는 자신의 이익을 챙기지 못한 채 남에게 휘둘린다며 무시당한다. 호구가 온달보다 못한 점은 곁에 평강공주가 아닌 호구를 이용하는 사람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권선징악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어쩌다 착한 사람이 손해를 보는 사회가 도래한 것일까.
 
  호구의 탄생 
  성격은 자라온 환경에 영향을 받아 형성된다. 호구가 가지는 이타주의적 성향 또한 어린 시절 양육환경으로부터 만들어진다. 장경은 교수(경희대 아동가족학과)는 호구들에게 ‘착한 아이 콤플렉스’처럼 착하게 살아야 인정받는다는 무의식이 내재돼 있다고 봤다. “부모가 권위적으로 자녀를 통제하면 아이는 주체성을 잃게 되고 부모의 말에 순종하게 되죠. 복종하지 않았을 땐 강한 두려움을 느끼기도 해요.” 
 
  또한 장경은 교수는 유아기에 부모와 형성한 관계가 성장기에 맺는 모든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부모가 아닌 타인의 거절까지도 두려워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규범에 대한 절대성을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는 순종적 태도를 한층 강화한다. 결국 착한 아이는 착함에 대한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호구로 성장하게 된다.
 
  한국사회의 뿌리 깊은 집단 문화는 호구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서예지 학생(심리학과 박사 2차)은 내집단과 외집단을 확연하게 구분하는 집단 문화가 인간이 가진 본능적 친애 동기를 극대화한다고 설명했다. “내가 원하는 주류 집단에 속하기 위해선 그 집단에서 요구하는 것을 들어 줄 수밖에 없죠. 가령 사회 초년생들은 기성세대의 주류 문화에 속하기 위해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까지 무리한 노력을 하기도 해요.”
외부 환경과 무관하게 스스로 호구처럼 행동하는 이도 있었다. 허지원 교수(심리학과)는 자발적 호구가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기적이라는 낙인과 거절에 대한 불안에 몰두하는 사람들은 호구를 자처해요.” 
 
  허지원 교수는 호구가 긍정적 평가만을 목적으로 선함을 베푸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호구가 인정에 대한 욕구만을 추구하진 않아요. 그들의 내면 깊숙한 곳엔 우울과 분노 또한 자리 잡고 있죠. 이런 욕구들은 ‘이번 한 번만 참자’는 심리예요. 자신을 지키고 다른 사람을 곁에 두기 위해서 미성숙하고 비효율적이지만 익숙한 전략을 취하는 셈이죠.”

  난 절대 시키지 않았어
  호구 주위에는 거절하지 못 하는 그들의 특성을 이용해 이득을 취하고자 하는 이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서예지 학생은 호구의 행동 동기가 친애 동기라면 이들의 특성을 악용하는 사람들에겐 권력 동기가 작용한다고 말했다. “권력 동기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성향이에요. 자신의 통제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무리한 부탁을 하기도 하죠.” 그 결과 상대적으로 친화 동기가 강한 사람들이 이들의 부탁을 수행함으로써 호구로 거듭나는 것이다.
 
  또한 허지원 교수는 호구를 이용하는 자들의 심리를 오히려 자신이 호구에게 좋은 기회를 줘 상대가 자발적으로 도왔다고 여기는 것으로 해석했다. “고질적으로 호구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내 덕분에 네가 이런 일도 해보는 거야’라고 생각하며 상대에게 칭송을 요구하기도 해요.” 이에 대해 부탁을 들어주는 사람이 ‘네 덕분에 이런 경험을 해본다’는 제스처로 자신의 평판을 관리하고자 할 때 호구와 이들을 이용하는 자의 관계가 고착된다는 설명이다. 결국 착취적인 부탁과 승인은 역할극처럼 손발이 척척 들어맞게 된다.

  나빠져야 살아남는다?
  ‘착하면 손해’임을 경험으로 학습한 사람은 호구가 되느니 나쁘더라도 영악해지기를 선택하기도 한다. 가령 도서 『페페로니 전략』의 작가 옌스 바이트너는 ‘착한 사람 콤플렉스를 버리고 권력욕을 긍정하라’고 주장한다. 작가가 타인에 대한 공격성을 내면의 잠재성이라고 긍정하기 때문이다. 
 
  박정윤 교수(심리학과)는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자기방어 기제의 발현으로 보았다. “자신이 상처를 입기보단 남에게 상처를 주는 것을 선호하게 됐어요. 결국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방식으로 본성과 다른 영악한 거짓된 자아를 내세워 타인과 관계를 맺으려 하죠.” 서예지 학생은 자기방어 기제를 자신이 지각한 위험 상황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심리적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제한된 자원으로 인한 과도한 경쟁 상황에서 위험을 느낀 사람들은 먼저 책잡히지 않으려는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게 돼요.” 
 
  호구 문화의 만연으로 서로 먼저 상처를 주려 한다면 세상은 점점 악해질 수밖에 없다. 선이 통하는 세상을 위해선 호구는 분명 필요한 존재지만 현재처럼 손해를 감수해야만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렇다면 호구가 아닌 호인으로 남을 수 있는 세상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박정윤 교수는 호구 스스로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갖는 자기 신뢰를 갖기를 강조한다. “자신을 믿는 사람들은 그 행동을 하면서 두려워하지 않아요. 착하다는 것은 대인관계에 있어서 정말 좋은 장점이잖아요. 하지만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오직 손해를 본다는 경제적 가치만을 근거로 평가절하되는 것뿐이거든요.” 
 
  서예지 학생은 타인이 개인의 삶에 대해 평가의 잣대를 들이미는 것 자체가 잘못된 점임을 지적했다. “착한 사람은 호구라 낙인찍혀도 자신의 삶에 만족해요. 불편을 겪더라도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더 편하게 느낄 수 있거든요. 그들의 삶을 평가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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