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기사는 20대 학생 4명의 인터뷰 내용을 각색한 것입니다. 기사에 등장하는 이름은 가명이며 특정 인물의 시점에서 소설 형식으로 인터뷰 내용을 재구성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야 이 호구야! 미쳤다고 그 돈을 빌려주니.” 어릴 적부터 주변 사람들의 부탁을 거절 못 하던 민석이 친구들에게 면박을 받는 일은 하루 이틀이 아니다. 사업을 시작해 돈이 궁하던 선배에게 오십 만원을 빌려줬다고 친구에게 알리자 호구라느니, 세상 물정도 모르는 놈이라고 잔소리를 쏘아댄다. 
 
  “아니야, 일주일 있다가 갚는다고 했어. 걱정 안 해도 돼.” 자신을 계속 조롱하던 친구에게 걱정하지 말라 일러뒀지만 마음이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일주일이 지났지만 선배의 연락은 깜깜무소식이다. 어쩔 수 없이 휴대폰 버튼을 눌렀다. ‘선배 저 민석이에요. 죄송하지만 언제쯤 돈 갚아주실 수 있을까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답장은 오지 않는다. 그렇게 별다른 말없이 전전긍긍하던 삼 주일이 지났고 선배는 조금씩 나눠 돈을 갚았다. 미안하다 말 한마디 없는 선배를 보며 화가 났지만 좋게좋게 넘어가자고 스스로를 위로 했다.
 
  개운치 않은 마음을 달래던 중 한 친구에게 메시지가 왔다. 반가운 마음에 앱을 켰지만 메시지 내용은 그리 반갑지 않다. ‘민석아 나 이번학기 졸업학점 계산 쫌 해줘. 나 계산 못 하는 거 알잖아~ 도와줘 ㅠㅠ 너만 믿는다? ㅎㅎ’ 도움을 주고자 시작했던 일이었지만 언제부턴가 당연시하는 친구의 태도에 당황스럽다. 하지만 그는 친구를 걱정하는 마음에서야 못 해줄 게 뭐 있겠냐는 생각이다. 이번에는 단호하게 거절할까 고민도 해보지만 끝내 답장을 보낸다. ‘그래, 언제까지 보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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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겠다. 너 연경이랑 같이 팀플 한다며? 못해도 A는 떼 놓은 당상이잖아.” 수업이 끝나고 강의실 밖으로 나가던 연경은 자신을 두고 이리저리 떠드는 목소리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비웃음인지 칭찬인지 모르는 말들은 그의 가슴팍을 파고든다.
 
  평소 학점관리를 철저히 하던 연경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타인과 함께해야 하는 공동 과제다. 그에게 공동 과제는 늘 개인 과제였다. 매번 공동 과제를 할 때마다 모든 것을 떠맡아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주제부터 자료조사, PPT까지 모든 것을 준비했던 때도 있었다. ‘그래. 이렇게 하면 내 실력이 늘겠지’라며 스스로를 위안해보지만 마음속 억울함만큼은 위안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점은 동일하게 받아야 하는 상황은 연경에게 가장 스트레스다.
 
  그래. 이 모든 게 연경의 성격 탓이다. 연경은 주어진 일을 어떻게든 열심히 해서 끝내야 직성이 풀린다. 남들이 게으름을 피워도 연경은 꿋꿋이 자기 일을 끝내고 타인의 일 또한 도맡아 하는 게 부지기수였다. 그런 그를 보며 주변 학과 사람들은 연경과 함께할 땐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된다며 우스갯소리를 하곤 했다. 연경은 매우 기분이 상했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사실이기에 딱히 대꾸할 수 없었다. 그리곤 ‘결과만 좋으면 됐지’라고 생각했다.
 
  “연경씨, 너무 부담스러워요. 열심히 하는 건 좋은데 제가 팀장이잖아요.” 공동 과제가 끝나고 연경에게 돌아온 것은 비난뿐이었다.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은 다른 팀원들을 대신해 이것저것 열심히 도왔던 그에게 팀장이 칭찬과 격려 대신 질투 섞인 질타를 보낸 것이다. 그 순간 손이 부들거릴 정도로 화가 났다. 하지만 반박하지 못한 채 이 또한 절제하지 못한 자신의 탓이라고 스스로를 책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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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진은 중·고등학교 때  타인으로부터의 상처를 받은 뒤 거절하지 못하는 병에 걸렸다. 한 번의 거절로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고 느꼈던 과거의 기억 때문이다. 그는 착해지고 싶었다. 그래서 어린 시절 친구 무리 속에서 매번 부탁을 들어주는 것을 자처했었다.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한 한 번의 거절이 자신을 바라보는 친구들의 태도를 한 번에 바꿨다.
 
  결국 혜진은 무리 속에서 겉돌게 됐었다. 이를 못 참고 학교로 전학까지 갔지만 그 트라우마는 아직도 그를 괴롭힌다.혜진의 대학생활도 그리 녹록지 않았다. 그는 재수로 인해 동기들보다 한 살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애써 활발하게 행동하며 동기들을 편하게 해주려 했다. 나이로 인해 동생들이 자신을 어려워할까 봐 걱정해서다.하지만 그럴수록 지켜야 하는 선을 넘는 동생들은 스멀스멀 생겨났다.
 
  자신에게 힘들었던 얘기를 다 털어놨던 한 동생이 그랬다. 너무 편하게 해준 탓일까. “혜진아! 야 이 미친 X아! 해달라고, 해줘!”자꾸만 자신에게 욕을 하고 의존하는 횟수가 늘어난다. 심지어 강압적으로 자신의 사생활을 털어놓아 달라고 요구하기까지 하며 그를 괴롭힌다. 혜진은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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