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뚝이는 좌우로 흔들리다가도 결국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오뚝이 안의 무게추가 중심을 잡아주기 때문이죠. 기자는 지난 2주 동안 기획기사를 준비하면서 무언가의 정체성은 오뚝이의 무게추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체성에는 무게추와 같이 중심을 잃지 않고 서 있을 수 있도록 하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자는 재정지원사업 관련 기사를 준비하면서 교육부가 내놓은 사업의 평가 기준을 살펴보고 각 대학의 입장을 취재했는데요. 그 과정에서 교육부가 내건 기준이 획일적일 뿐만 아니라 각 대학의 정체성을 해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대학은 사업을 수주하려면 교육부가 내건 기준을 충족해야만 합니다. 취재 결과 재정지원사업 중 ▲ACE 사업 ▲CORE 사업 ▲PRIME 사업의 평가 지표엔 모두 전임교원 확보율, 학생 충원율, 졸업생 취업률 등이 포함돼있었습니다. 사업의 목적이 각각 다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때문에 대학들은 각각의 정체성에 맞는 차별화된 사업 계획안을 내놓는 것이 어렵습니다. 게다가 어떤 대학은 공대 중심 학문 단위 개편안에 맞추느라 본래의 강점 분야인 단대 정원을 축소하는 경우도 있었죠.
 
  김영란법 역시 본래의 정체성을 잃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김영란법은 공직자에 대한 부정청탁과 금품 수수를 금지함으로써 직무수행의 공정성을 보장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발의된 법안이었죠. 김영란법은 2012년 처음 제안된 이후로 5년이 지난 올해 본격적인 시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5년 동안 김영란법은 여러 차례 수정이 이뤄졌죠.
 
  일각에서는 김영란법이 수정 과정을 거치면서 본래의 취지대로 흘러가고 있지 않다는 비판이 일고 있습니다. 처음 추진했던 법안은 공직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었지만 ‘선출직 공직자의 제삼자 민원 전달 행위’가 부정청탁의 예외 사항으로 법률에 포함됐죠. 이에 본래보다 규정이 완화됐다는 비판이 대두됐습니다. 공익적인 목적이라는 기준이 모호할 뿐 아니라 부정청탁을 받은 공직자들이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죠.
 
  수정된 김영란법에선 ‘이해충돌방지조항’은 삭제되기도 했는데요. 이해충돌방지조항은 친족 특채와 같이 공직자가 지위를 이용해 사익을 추구하는 일을 막는 조항입니다. 부정청탁금지 조항과 함께 법률안의 주요 조항이었죠. 실제로 법안의 발의자인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이해충돌방지 규정은 반부패정책의 핵심인데 빠져서 아쉽다”고 밝혔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여러 번의 수정을 거치게 된 김영란법은 ‘공직자 집중 마크’라는 본래의 정체성을 잃게 된 것처럼 보입니다.
 
  기자가 어릴 적 가지고 놀던 오뚝이는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서 무게추가 고장 나버렸습니다. 무게추가 고장 난 오뚝이는 쓰러지기 일쑤였죠. 무게추가 없는 오뚝이가 제대로 서 있을 수 없듯이 정체성을 잃은 그 어떤 것도 중심을 잡을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대학이든 법안이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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