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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통쾌한 고발-뉴스타파 최승호 PD를 만나다-
유다해 기자  |  yoda@cau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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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9.05  17:4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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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호 PD가 공영방송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대로 얻어낸 
방송 민주화
공정언론으로
사회적 합의 이뤄야

지난달 21일 ‘뉴스타파’가 보도한 ‘이건희 성매매’ 의혹 사건의 파장은 컸다. 유튜브에 게시된 30여 분 분량의 기사는 조회수 천만 건 이상을 기록했다. 많은 시청자는 그리고 이 사람을 기억했다. 최승호 PD. 그는 MBC에서 26년간 PD로 활동하다 2012년 해고돼 독립언론 뉴스타파 앵커가 됐다. 또한 국가정보원 간첩 조작 사건을 다룬 영화 <자백>을 연출했다. 이번 주 ‘학술이 술술술’에서는 파격적인 보도로 세상을 놀라게 하는 그의 강연회를 다녀왔다.

  2010년 서울에서 열린 G20 폐막 기자 회견장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권을 줬다. 통역이 있다는 농담까지 덧붙였다. 그러나 회견장의 침묵은 꽤 오래갔다. 곧이어 한 기자가 일어났다. 기자의 국적은 한국이 아닌 중국이었다. 오바마는 세 번이나 한국 기자를 찾았지만 중국 기자가 질문권을 얻는 데 성공했다. 한국 기자의 질의응답이 결국 이루어지지 않은 채 폐막식은 끝이 났다. 한국 기자는 왜 질문을 하지 않았던 것일까.
 
  왜 그들은 입을 닫았나
  지난달 30일 건국대 법학관 101호에서 뉴스타파 최승호 PD의 특강이 진행됐다. 강의의 주제는 ‘다큐멘터리 <자백>과 국가 그리고 공영방송의 역할’이다. 이날 강의에서 최승호 PD는 한국 기자가 질문하지 않은 이유를 공영방송의 폐쇄적 구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민감한 질문을 하기 전 눈치부터 보는 한국 기자는 자유롭게 질문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기자들의 태도는 다시 보수적인 취재 분위기로 이어져 악순환이 반복된다.
 
  최승호 PD는 자유로운 취재 분위기가 보장되지 않는 언론 실태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사건으로 세월호 사고 당시 각종 언론사가 낸 오보를 들었다. 사건 초기 세월호 관련 보도는 전원구조에 성공했다는 보도였다. 그러나 세월호 사고 현장과 가장 가까웠던 목포 MBC 기자들이 목격한 현장은 달랐다. 침몰하고 있는 배에서 구해진 승객은 거의 없었고 승객 대부분이 배 안에 갇혀있었다. 목포 MBC는 이를 서울 MBC 보도국에 알렸다. 하지만 서울 MBC 보도국은 행정안전부의 공식적인 브리핑이 있기 전까지 오보를 인정하지 않았다. 정확한 사실을 알고 있는 현장의 기자에게 끊임없이 사실 확인을 하기보단 행정안전부를 따르는 안전한 길을 선택한 것이다. 
 
  최승호 PD는 이러한 한국 언론의 분위기를 타파하기 위해서 기자가 질문을 던지는 데에 거리낌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기자가 ‘앰부시(ambush)’라 불리는 잠복 인터뷰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앰부시는 면담자가 인터뷰 요청에 응하지 않을 때나 정상적인 인터뷰가 불가능할 때 면담자의 동선에 맞춰 인터뷰를 시도 하는 것이다. 종종 뉴스타파에서 내보내는 영상에는 이런 장면이 많다. 이는 외국에서는 광범위하게 쓰이는 인터뷰 방법이지만 한국 기자들 사이에선 금기시되고 있다. 한국 언론의 보수적 취재 분위기 탓이다.  
 
  언론 자유,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아
  최승호 PD는 공영방송이 지금의 언론 자유를 누리는 데에는 투쟁의 역사가 필요했다고 소개했다. 그가 MBC에 입사했던 1986년 당시 언론은 정부의 감시와 보도 지침에 따라 발행됐다. 이에 따라 공영방송에 대한 국민의 뉴스 신뢰도는 낮은 수준이었다. 
 
  1987년 6월 항쟁이 시작되고 기자들이 현장으로 취재를 나갔지만 검열에 의한 편향된 보도만 방송되고 말았다. 하지만 6월 항쟁이 국민의 승리로 끝나고 독재 정권이 물러나게 되면서 언론사도 큰 변화를 겪는다. 6.29 선언 이후 방송 민주화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방송사 협회, PD 협회, 기자 협회 등의 공영방송 노동조합이 최초로 결성되고 이들의 공정언론을 위한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1988년 MBC 노동조합은 처음 파업을 시작하며 공정 방송을 할 수 있는 편집권 독립 장치를 마련해달라고 요구했다. 파업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회사 측과 맺는 단체협약에 ‘공정 방송 조항’이 추가됐다. ‘공정 방송 조항’의 내용에는 노조 측 5명, 회사 측 5명이 참가하는 공정방송협의회의 개최가 포함됐다. 최승호 PD는 이를 계기로 공영방송사에서 뉴스의 편집권이 보장받아야 한다는 개념들이 서서히 자리 잡기 시작됐다고 말했다.
 
  ‘국장 책임제’는 1992년 진행된 50일간의 파업으로 얻은 또 다른 수확이었다. 방송의 실무적인 권한과 책임을 국장이 갖게 하는 국장책임제는 임원들로부터 편집권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됐다.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이사회의 평가에서 벗어나 보도국장이 편집권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되면서 공영방송의 민주화는 한 걸음 더 진보하게 됐다.
 
  국장책임제의 진가는 황우석 교수 파문 사건에서 발휘됐다.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신화가 한창이던 때 최승호 PD는 황우석 교수 연구팀의 일원이었던 이로부터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황우석 교수의 연구 성과가 날조일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메일 한 통으로 취재에 착수한 그는 취재 과정에서 수많은 난관에 부딪히게 됐다. 그러나 국장책임제는 외부 압박에서 벗어나 쉽게 취재 자료를 모으는 데 기여했다. 그리고 황우석 교수의 거짓 신화는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다. 
 
  그러나 최승호 PD는 2008년 정권 교체 이후 국장책임제 체계가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집권 세력이 정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언론을 장악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는 “공영 방송사 사장이 수시로 바뀌고 기자들이 보도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국장이 아닌 간부의 검열을 받게 됐다”고 말했다. 덧붙여 임원이나 간부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취재는 검열을 받는 것이 이제는 일반적인 관행으로 굳어져 버리게 됐다고 말했다.
 
  공영방송이 공정성을 찾기 위한 길
  최승호 PD는 공영방송의 공정성이 회복되지 않으면 언론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계속 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을 믿지 못하는 국민은 정확하지 않은 자극적인 정보에 기댈 수밖에 없다. 정확하지 않은 정보로 국민은 분열하고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하면서 사회는 혼란에 빠진다. 
 
  그는 세월호 사고의 경우에도 방송사가 정상적인 보도를 했다면 사고 이후 극심한 사회적 갈등을 막을 수 있었을 거라 덧붙였다. 그는 “만약 정상적인 공영방송 시스템이 운영됐다면 합리적인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졌을 것이다”며 “공영방송의 올바른 역할에 따르는 사회적 합의로 더욱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함께 고민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승호 PD는 현재 공영방송의 상황에서 공영방송의 공정성을 회복하기 위한 몇 가지 세부적인 방안들을 제시했다. 이사회의 구조 개편이 그중 하나다. KBS의 경우 이사회의 구성원이 여당 측 7명, 야당 측 4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 비율을 조정하거나 사장 임명권이 여당에 쏠리지 않도록 사장 임명에 대한 정치적 균형을 유지하자는 것이다. 그는 기자들의 편집권 독립도 또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공영방송 구성원들끼리의 연대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동료들과 뭉쳤기에 공정성이라는 근로조건을 얻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 공영방송이 제대로 중심역할을 해서 사회의 어두운 면이 점차 사라지고 밝은 사회가 되기를 희망한다”며 강의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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