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교지가 위기에 처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위기의 이유로 항상 학생들의 무관심을 꼽죠. 교지 위기론에 대한 이러한 분석은 어쩌면 식상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기자는 취재과정에서 과연 교지가 위험에 처한 것인지 의문을 갖게 됐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교지에 찬란했던 황금기는 대체로 80년대를 기준으로 합니다. 학생들이 줄을 서서 교지를 받아가던 시절이었죠. 하지만 그것이 정말 자연스러운 일이었을까요? 군사정권이 일반사회는 물론 대학사회까지 거칠게 몰아붙이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교지는 기성 언론이 탄압받던 상황에서 비교적 올바른 말을 할 수 있었습니다. 군사정권 치하에서 드러난 기성 언론의 한계와 사회적 문제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던 대학가의 분위기가 우연히 맞물려 교지 붐이 일었던 거죠. 서울의 봄처럼 교지는 너무 이른 봄을 맞았습니다.

  분명 오늘날 대학사회는 30년 전과는 다릅니다. 어쩌면 이런 분위기는 그리 특별할 것 없이 모든 언론이 겪는 문제는 아닐까요? 그렇기에 오늘날 교지의 위기는 오히려 사회 변화 속 자연스러운 결과라 할 수 있죠. 일찍 찾아온 봄과 비교해 너무나 위기스러운.

  찬란했던 시기를 뒤로하고 교지는 학생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여러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이런 전환에는 어떻게, 무엇을 보여줄까란 물음도 병행됐죠. 이에 따라 교지들은 각기 다른 대안을 선택했습니다. 어떤 교지는 문화생활에 관련한 가벼운 주제를 주로 다루며 학생들의 공감을 이끌고 있죠. 한편 대항언론의 색깔을 유지하며 사회적 차원의 논의를 교내로 끌어들이려는 꽤 용감한 교지도 있습니다.
 
  혹자는 이런 교지들의 변화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황금기를 비교기준으로 삼아서겠죠. 하지만 그 황금기가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면 그리고 그들의 변화가 시대 변화에 따른 산물이라면 그들의 변신은 도태가 아니라 진화 아닐까요?

  기자는 그 근거를 그들의 치열함에서 찾았습니다. 어떤 교지가 어떤 방향을 택했든지 간에 그들은 적어도 편한 길을 택한 것은 아니었죠. 아니 오히려 변화하는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그들은 존폐의 명운을 걸었습니다.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사투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기자는 그들이 처한 상황이 결코 위기가 아님을 알 수 있었습니다. 위기 또는 위험보다는 본격적인 출발을 위한 자연스러운 준비운동에 가까웠다고 생각한 거죠.

  교지가 생긴 지 70여 년이 지났습니다. 70여 년이라면 한 사람의 일생 정도의 시간일 뿐이죠. 그래서 교지라는 매체에 대해 어떤 프레임을 요구하는 것은 어불성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사람의 삶도 정의하기 어려운데 교지의 어떤 방향성이 정해져 있다는 생각은 그 얼마나 위기스러운 생각일까요?

  지금의 교지들은 저마다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그들만의 프레임을 구축해 나갈 것이죠. 기자는 그들이 치열함으로 각기 다른 색깔의 역사를 써내려갈 것이라 굳게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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