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지 오웰 저/정회성 역 | 민음사 | 2003년 06월
『1984』의 하늘은 잿빛으로 그려진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소설을 쓰는 조지 오웰 자신의 마음이 어두웠다. 부인이 죽고 자신도 폐결핵 3기를 선고받은 뒤였다. 전기도 전화도 안 통하는 스코틀랜드의 외딴 섬에서 『1984』가 쓰인 해는 1948년이었다. 뒷자리에 두 수를 뒤집어 그는 ‘1984’라는 제목을 달았다.

  『1984』의 배경은 공산혁명 이후 전체주의가 지배하는 세계다. 소설 속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전체주의의 분자가 돼 살아간다. 그리고 인간의 조건이 말살된 채 절벽 끝에 서게 된다. 인간이 이런 상황에 놓였을 때 움켜쥐는 것은 고뇌의 끝에 나온 철학적 사변이 아니다. 그것은 지극히 현실적인 그 무엇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들에 대한 갈망이다.

  오웰이 살아온 삶도 그러했다. 영국의 몰락한 귀족 출신으로 영국 명문 고등학교인 이튼 학교를 나온 그였다. 하지만 오웰은 경찰관, 노숙자 등 수많은 직업을 경험했다. 언제고 노동자의 삶은 바뀐 적이 없다는 것이 그가 사회 체험을 통해 얻은 진실이었다. 그리고 그는 당시 기본적인 인간의 조건조차 파괴된 그들의 처참한 삶을 책에 담았다.

  소설 속 지식인과 권력자들이 권력 노름을 할 당시에도 노동자들은 삶의 현장에서 일하고 있었으며 철저하게 외면받고 있었다. 지배층은 대부분 지식인이거나 가진 자들이었다. 그들은 계급철폐가 아닌 계급영속을 추구했다. 마찬가지로 오웰이 현실에서 경험한 정치 집단도 노동자들의 삶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또한 오웰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파시즘, 나치즘과 스탈린주의는 하나라는 것이다. 1936년부터 4년간의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던 경험을 통해 그는 스탈린주의가 나치즘, 파시즘과 같은 전체주의였음을 온몸으로 깨달았다. 스탈린주의는 결코 계급혁명을 추구해 평등사회를 만들려고 하지도 않고, 스탈린주의자는 스탈린의 지령을 받는 전체주의자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바르셀로나에서 참호전을 경험하면서 좌파 정권의 분열을 지켜본 뒤였다.

  그래서 『동물농장』이 풍자였다면 『1984』는 스탈린주의를 향한 고발이다. 전체주의는 어떤 일관적인 신념체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마르크스주의적 평등주의에 대해 강하게 반대하기도 하고 자유주의나 개인주의도 강하게 거부한다. 민주주의 원칙을 조롱하고 대중에게 끊임없이 적을 규정하고 공포와 불안, 증오를 조장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노동자와는 달리 지식인은 끊임없이 관념의 유희를 통해 세계를 유지해 나간다. 소설 속 오브라이언(사상경찰)은 이렇게 말한다. “지식인은 끊임없이 관념의 유희를 펼칠 수 있다.” 지식인은 관념의 유희를 즐기며 집단 혹은 전체의 논리를 완성해 나간다. 칼 포퍼의 지적처럼 그 논리는 역사주의, 유토피아주의와 같은 오래된 철학적 도그마들이다. 끊임없이 ‘이중사고’라는 관념의 유희를 통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전체주의의 본질이다. 오웰은 『1984』를 통해 이를 예리하고 밀도 있게 그려내고 있다.

  그런 시대에 오웰은 오히려 인기가 없었다. 디스토피아 소설의 시작이 된 『까탈로니아 찬가』는 초판으로 고작 1500부를 찍었다고 한다. 당시 사회주의 진영은 독일의 히틀러와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와 싸워야 하는데 왜 소련을 공격하느냐고 비판했다. 그래서 오웰의 외침은 늘 고독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오웰이야말로 사후가 돼서야 재평가됐고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의 실상이 널리 알려지며 『카탈로니아 찬가』, 『동물농장』, 『1984』가 그려낸 디스토피아 3부작의 예언이 힘을 얻게 됐다. ‘1984’는 이제 전체주의의 지옥을 묘사하는 일반명사처럼 쓰이고 있다.

  막상 1984년이 됐을 때 서구 사회는 『1984』의 예언이 틀려서 참 다행이라는 논평을 많이 내놨다고 한다. 1984년의 지옥은 분명 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 예언이 어긋날 수 있었던 것은 오웰과 같은 지식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1984』는 철저히 지옥의 묵시록으로 쓰였지만 인간에 대한 희망을 발견하게 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은 2016년 우리가 아직도 조지 오웰을 읽어야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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