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를 떠올리게 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다. 낮아진 자존감을 다시 떠오르게 하는 방법도 비슷하다. 끊임없이 나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고 자기 위안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의 나를 사랑해”, “이 세계에는 나와 똑같은 사람은 없어” 자기암시를 되뇌어도 거울 앞에 서 바라본 모습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어릴 적부터 복잡한 심리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으로 형성되어온 자존감은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이 그들을 작아지게 만드는 것일까.

  범인은 따로 없었다
  아르바이트 취업포털 ‘알바몬’에서 ‘자존감 도둑’과 관련해 실시한 설문조사의 결과는 다소 충격적이다. ‘엄마’가 14.1%의 응답률로 자존감 도둑 1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엄마에 이어 동기(13.9%), 절친(11.5%)도 자존감 도둑으로 꼽혔다. 설문결과에 따르면 아이러니하게도 가족이 가장 많이 개인의 자존감 저하 현상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어린 시절 양육자와의 안정적인 애착과 성장 과정에서 충분한 사랑과 관심은 자존감 형성에 가장 중요한 요인이죠. 어린 시절 부모님 상실경험이나 양육자로부터 학대경험은 심리적 위축을 가져오게 해요.” 학생생활상담센터 조혜현 전문상담연구원은 유년 시절 경험한 만성적인 애정결핍이 성인이 된 후에도 다양한 형태에서 불안정한 관계를 맺을 위험이 있다고 설명했다.

  적십자간호대학 한종숙 교수(간호학과)는 한국 사회에서 뿌리 깊이 박혀있는 가족을 포함한 집단 문화가 자존감에 큰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타인의 시선에 예민한 한국 사회에서는 나보다 타인에게 인정받으려 노력하죠. 하지만 진정한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선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노력이 필요해요.”

  집단 문화에선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는 일이 잦다. 조혜현 전문상담연구원은 ‘부족하다’, ‘열등하다’와 같은 비교인식으로 인해 자존감을 잃어버리게 될 뿐만 아니라 반대로 오만하고 안하무인격인 태도 또한 자존감 결여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설명했다. “심리학자 프로이트는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을 ‘일을 할 수 있고, 남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어요. 이는 스스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인 자존감이 갖춰질 때 가능한 일이죠.” 중앙대병원 김선미 교수(정신건강의학)는 자존감은 정신적인 질병과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설명했다. “우울증과 같은 정신건강의학과적 질환은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더욱 쉽게 걸리기 쉬워요. 우울증의 증상으로 자존감 저하가 동반될 수 있죠. 또한 자존감 저하된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된다면 우울증에 걸릴 위험도 커져요.”

  나만의 문제는 아니다
  일상을 공유하는 소셜미디어는 자존감 저하 현상의 새로운 원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좋은 곳에 여행을 가고, 값비싼 음식을 먹는 사람들을 보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소셜미디어가 가져다주는 상실감은 상당해요. 소셜미디어에서 보이는 타인의 삶과 자신의 처지를 비교하면서 자괴감에 빠지게 되죠.” 평론가 백우진씨는 이러한 현상이 TV 드라마에 등장하는 경제적·사회적 지위가 높은 주인공을 보며 느끼는 감정과 같다고 봤다.

  “아이돌 스타의 팬덤 문화가 다이어트 열풍과 성형수술의 붐을 일으키면서 미의 표준에 영향을 줬어요. 이른바 루키즘의 전면화로 정형화된 미적 범주에서 벗어났다고 생각되면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이죠.” 김지은 강사(문화콘텐츠융합전공)는 아이돌 문화와 함께 생성된 외모지상주의가 20대 학생들의 자존감 저하에 중요한 원인으로 꼽았다.

  대중매체에서 제공하는 화려함만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부정적인 정보를 자주 접하게 되는 것도 자존감 상실을 가져오고 있다. “경제적 양극화 문제를 비롯한 암울한 정보들이 뉴스에서 계속해서 다뤄지면서 청년들의 자존감에 상당히 큰 영향을 주고 있어요.” 유홍식 교수(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는 수저 계급론, 청년실업과 같은 암울한 사회적 현상이 반복적 보도됨에 따라 청년들이 무기력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지은 강사는 대중매체에서 보여주는 방송콘텐츠는 철저히 자본주의적 메커니즘에 의해 재생산된다고 말했다. “방송에선 화려함만을 끊임없이 제공하고 있죠. 프로그램 제작자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시청률 극대화’가 무조건 필요하잖아요.” 자본에 따라 움직이는 현실에서 대중매체는 더욱 자극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울타리가 없기에
  김선미 교수는 20대 대학생들은 특히나 스트레스에 취약한 시기에 놓여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대학진학률이 높아지면서 비교적 청소년기의 범주가 확장돼 20대 초·중반까지도 청소년기에 해당하게 됐어요. 이로 인해 부모의 지원이 닿지 않는 사회의 현실에 부딪히게 된 20대 대학생은 정서적으로 불안할 수밖에 없죠.” 오히려 30대, 40대 나이 때가 되면 자신을 현실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자존감이 저하될 위험이 적어진다.

  한종숙 교수 또한 20대 자존감 저하의 요인으로 급작스러운 환경의 변화에 따른 스트레스를 꼽았다. “20대 학생들의 발달단계는 심리적·경제적으로 독립을 준비하는 과정에 있어요. 필연적으로 많은 갈등을 경험하게 되고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되죠.”

  “취업 스트레스는 대학생들의 고민 중 1위를 차지하고 있어요. 사회적으로 취업난이 심각해지면서 학생들에게 높은 스펙을 요구하고 있죠. 이로 인한 심리적 압박이 상당해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맹목적으로 쫓는 것은 심리적 압박감을 증대하는 큰 요인이죠.” 조혜현 전문상담연구원은 학생들이 조금 더 적성, 흥미, 성격 등 자신 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목표를 설정하는 것을 추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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