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이기호 지음, 마음산책
 
간혹 이상한 이야기들이 있다. 분명 특별할 것도 없고, 기이할 것도 없는, 아무렇지 않은 이야기인데 묘하게도 가슴에 잔상이 남는 이야기들. 작가 이기호의 소설이 그렇다.

  1999년 『현대문학』 신인 추천 공모에서 단편 「버니」를 시작으로 그의 이상한 이야기들은 특별한 세상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첫 출발은 랩이었다. “왔어 왔어, 그녀가 왔어, 나를 찾아왔어, 사무실로 왔어,’(『최순덕 성령충만기』, 「버니」, 7쪽, 문학과지성사)란 문장의 주인공 순희를 래퍼 버니로 탈바꿈 시키면서 이기호는 수많은 평범한 인물들, 혹은 모자란 인물들을 특별한 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소설집 『김박사는 누구인가?』,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최순덕 성령충만기』, 장편소설 『차남들의 세계사』, 『사과는 잘해요』 등을 통해서 그는 폼 잡는 이야기꾼이 되는 대신, 눈물과 웃음을 반반으로 섞는 가차없는 이야기꾼이 되었다.마치 독자들이 닭을 시킬 때 양념일까, 프라이드일까, 고민하는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는 수많은 인물들의 눈물과 웃음의 하모니를 ‘아무렇지 않게’ 맛볼 수 있는 책이다. “짧은 글 우습다고 쉽사리 덤볐다가/ 편두통 위장장애 골고루 앓았다네/ 짧았던 사랑일수록 치열하게 다퉜거늘.”(작가의 말中) 짧은 소설이니 작가의 말은 운율을 탄다. 시조 형식으로 늘여놓겠다고 선포를 하는 이기호의 재치가 번뜩인다.

  그러나 작가의 말은 어디까지나 작가의 엄살일 뿐, 독자들은 마흔 개의 짧은 소설들 속에서 나와 내 가족, 친구, 이웃, 하다못해 사돈의 팔촌, 스쳐 지나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문제는 그 모든 이야기가 마치 나의 이야기인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켜 놓고 한참을 웃었는데 자꾸만 울고 싶어지는 기분을 느끼게 하는 한 방이 존재한다는 데에 있다.

  애꿎게도 생일이 5월 8일이라 해마다 생일에 자기 돈을 내고 카네이션을 사다가 서른여섯의 생일에 취준생이란 신분 탓에 부모님께 지청구를 듣는 형의 이야기(「5월 8일생」), 다방 커피에 익숙했던 아버지가 병원 로비에 자리한 커피전문점의 진동벨을 손에 들고 어쩔 줄 몰라 하며 ‘여보세요?’를 연신 외쳐대는 장면(「입동 전후」), 평생 가수가 되겠다고 애를 쓰며 살던 사촌 형이 집안 재산을 다 탕진하고 결국 죽음에 이르러 염을 하는 장면에서 그 딸이 아버지의 귀에서 보청기를 꺼내며 “아빠, 이젠 애쓰지 않아도 돼요.”(「이젠 애쓰지 않아도 돼요」, 216쪽) 하는 장면에서 우리는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짧은 소설들의 문장 속에서, 그 문장 틈바구니 속에서 부지런히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인물들을 통해서, 어쩌면 나의 삶 역시도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깨달음을 얻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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