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를 낳았지 나 갖고는 부족할까봐』, 임승유 지음, 문학과 지성사
임승유의 첫 시집은 제목부터 예사롭지 않다. ‘아이를 낳았지 나 갖고는 부족할까 봐’라니. 불온한 상상이 든다 한들 우리 탓은 아닐 것이다.

‘날 감당할 수 있으면 한 번 읽어 보든가’라고 말하는 듯한 시집을 펼쳐 든다. 시인의 말마따나 “이곳에서 일어날 일은 이미 다 일어났다.” 하늘 아래 새로울 것이 없는 이런 시대에 시를 쓰는 일, 그 곤혹과 마주선 주체를 임승유의 시집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시집의 첫 번째 시 좥모자의 효과좦는 동화 <빨간 모자>를 연상시키며 이렇게 시작된다. “친척 집에 다녀와라/가족 중 하나가 그렇게 말해서 여자아이는 집을 나섰다”. 그리고 이어지는 연은 이렇다. “친척 집에 간다는 건/페도라, 클로슈, 보닛, 그런 모자를 골라 쓰는 일 모자를 쓰고 걸어갈 때 모자 속은 아무도 모르고 모자 속을 생각하면 모자 속이 있는 것만 같다 긁적이며 생쥐가 태어나는 것만 같다 고모와 당고모와 대고모의 발바닥으로 가득한/그런 친척 집이 있는 것만 같다”.

할머니 댁에 심부름 가다가 늑대를 만나는 빨간 모자 이야기는 사실 잔혹 동화다. 친척 집에 가는 일은 아이에겐 가족이 아닌 타인을 만나는 첫 경험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그것은 아무도 모르는 모자 속처럼 비밀스럽고 불편하고 “죄책감”과 “나쁜 냄새”를 풍길 수도 있다.

비밀을 속삭이듯 임승유의 시적 주체는 작은 글씨로 말한다. “아이를 낳았지/나 갖고는 부족할까 봐/아이와/아이와/아이를”이라고. “모자 속으로 사라지는 일”처럼 은밀하고 불온한 분위기로 가득한 이 시집을 읽다 보면 아이에서 어른이 되기까지 우리를 스쳐 간 비밀스럽고 위태롭고 불온한 공기가, 끈적한 사탕 같은 기억이 문득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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