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식男’ 등의 단어를 만든 연애 칼럼니스트, 그가 작가가 되어 돌아왔다. PD, 드라마 보조작가, 칼럼니스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한 그는 현재 자신이 꿈꾸던 작가가 되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연애전과』, 『요즘남자 요즘연애』의 저자 김정훈 작가(신문방송학과 02학번)를 만나봤다. 
자신만의 색을 찾아라. "퇴근이 목표가 되고 월급이 꿈이 되는 삶을 살지 마세요"

“삶은 뽑기 과자같아요. 늘 열정이라는 설탕과 소다로 끓고 있기만 한다면 언제든지 모양틀로 찍어내기만 하면 되거든요.” 항상 창작에 대한 열정을 간직했기에 결국 그는 자신의 삶을 이야기 할 수 있었다. CJ E&M 예능PD를 마다하고 작가가 되기까지. 정해진 모양틀에서 벗어난 김정훈 작가(신문방송학과 02학번)가 찍어낸 ‘달고나’ 같은 삶의 이야기를 들춰봤다.
 
  내 삶은 어떤 모양일까
  동네 책방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꽤나 좋아한 소년이 있었다. 언젠간 이곳의 책을 모조리 다 읽어 버리리라 다짐하며, 더 훗날엔 이곳에 자신의 책을 한 권쯤 진열하겠노라 꿈꾸는.

  한편으로 그는 소위 ‘범생이’이기도 했다. “제가 상상할 수 있는 미래란 오직 부모님의 바람대로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가고 관련 분야에 취업하는 선택지뿐이었어요. 책과 만화, 드라마를 좋아했지만 ‘예술’은 생각지도 못했죠. 예술은 마치 쉽사리 다가갈 수 없는 미지의 길처럼 느껴졌거든요.”

  읽고 싶은 것도, 쓰고 싶은 것도, 말하고 싶은 것도 너무나 많았지만 선택한 길은 문예창작이 아닌 신문방송이었다. ‘성실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 프레임에 갇혀 공부밖에 할 줄 몰랐던 그에겐 방송국 3사의 PD만이 익숙한 모양틀 이었다.

  그는 PD가 되기 위해 중앙대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했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드라마 PD가 특히 되고 싶었죠. 무조건 콘텐츠로 승부를 보려 했어요. 친구들이 안정적인 취업을 위해 경영학과, 행정학과를 복수전공할 때도 전 디지털문예전공을 복수전공으로 선택했죠. 그리고 이곳에서 소설과 희곡을 배웠어요.” 그는 거의 매학기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학교 공부에 열심이었다.

  졸업과 함께 방송국 3사에 지원서를 내밀었다. 서류에서 떨어질 때도, 아깝게 면접에서 떨어질 때도 있었지만 결론은 연이은 실패였다. 하지만 그는 두렵지 않았다. “SBS 면접에 떨어진 후 동기들을 만났는데 다들 안정적인 직장에서 높은 연봉을 받으며 살고 있더군요. 그런데 웃긴 건 오히려 그 친구들이 절 부러워했어요. 자신들은 이미 취업이라는 꿈을 이뤄서 더는 꿈이 없는데 전 꿈을 향해 노력할 수 있으니 부럽다는 거예요. 그때 친구들에게 ‘퇴근이 목표가 되고 월급이 꿈이 되는 삶을 살지 않겠다’고 큰소리쳤죠.”

  맞지 않는 옷을 입다
  그러던 때, 그는 마침내 CJ E&M 공채에 합격해 PD가 되었다. 자그마치 10여 년 동안 고수하고 지켜왔던 길이었다. “당장에라도 머릿속에서 신선한 콘텐츠를 마구 뽑아낼 수 있을 것 같았죠. 하지만 문제는 당시 CJ엔 드라마가 없었다는 점이었어요. 전 드라마 PD를 하고 싶었는데 말이에요.”

  그래도 언젠가는 CJ가 드라마 판에 진출할 것이라 확신했던 그는 우선 예능 PD로서 경력을 쌓겠다고 다짐했다. “예능을 별로 좋아하진 않았어요. 좋아하는 척하고 붙었을 뿐이었죠. ‘무한도전’, ‘1박 2일’에도 별 흥미가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렇게 입사 후엔 ‘WIDE 연예뉴스’, ‘E-news 명단공개’ 등 예능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하게 됐다. 하지만 예능에 뜻이 없던 그가 예능PD로서 열정과 정신력을 소모하는 일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그는 매일매일이 고된 작업의 연속으로만 느껴질 뿐이었다. 페이스북을 통해 우연히 드라마 PD가 된 친구들의 소식을 볼 때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까지 했다.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채 집에 돌아온 어느 새벽이었다. “옷을 갈아입기 위해 귀가한 어느 날이었어요. 벌거벗고 무심코 거울을 봤는데, 불만 가득하고 생기 없는 얼굴로 사원증만 목에 걸고 있는 제 모습이 비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죠. 사원증이 점점 제 목을 죄어오는 것 같았어요.” 퇴근이 목표가 되고 월급이 꿈이 되는 삶을 살지 말자고 다짐했던 장본인이 정작 피폐한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삶을 찍어낼 다른 모양틀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PD는 남의 목소리가 돋보이도록 잘 포장해주는 역할이지 제 목소리를 내는 직업은 아니었어요. 드라마나 책의 원작자가 되어야만 온전히 제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죠. 과연 내가 이곳에서 드라마 PD를 한들 본부장을 한들, 행복할까란 의문이 드는 거예요. 망설임 하나 없이, 전혀 행복할 것 같지 않았어요. 오히려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가들이 너무 부러웠죠.”

  발가벗겨진 ‘나’
  결국 그는 ‘화성인 X파일’ 제작 당시 사표를 던졌다. 그리고 그 길로 작가 교육원에 등록했다. “사람은 살면서 다양한 역할의 옷을 입어요. 티셔츠 위에 뭘 입을까를 고민하는 것처럼 ‘난 저걸 하고 싶은데 엄마, 아빠의 아들로서 이걸 하는게 맞나’라는 역할갈등이 곧 삶을 스타일링해나가는 과정이죠. 근데 우린 가끔 겉옷에만 빠져 정작 자신이 완전히 발가벗었을 때 ‘진짜 나’는 누구인지를 잊고 사는 것 같아요. 저도 원래는 단지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을 뿐이죠. 그것이야말로 변하지 않는 제 본래 모습이었어요.” 그의 나이, 이미 서른을 넘겼던 때다.

  때마침 연애상담을 몇 번 해줬던 후배의 권유로 잡지 ‘코스모폴리탄’에 컨트리뷰트로 참여하게 됐다. 이때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 두세 달간 의뢰를 받아 글을 쓰게 된 것이다. “이때 주변에서 책을 내라는 제의를 받았어요. 저도 ‘연애 칼럼니스트’보단 본격적으로 작가로 데뷔하고 싶어서 기획안을 작성해 출판사마다 엄청나게 뿌렸어요. 맨땅에 헤딩한 거죠.”

  그러나 출판은 결코 쉽지 않았다. 대다수의 출판사에선 전직 PD라는 직함뿐인 그에게 ‘고정독자도 없으면서 어떻게 2천 부 이상을 팔 수 있겠냐’며 혀를 내둘렀다. “거듭되는 퇴짜에 지칠 때쯤 한 군데서 책을 낼 수 있었어요.” 그렇게 나온 첫 책이 『연애 전과』다.

  작가로서 데뷔한 후 그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이야기와 콘텐츠를 창작하는 데 집중했다. 드라마 ‘미생’과 ‘동네의 영웅’ 보조작가로 활동하기도 하고 다음 TV팟과 스토리볼 등에 연애에 관한 이야기를 연재하기도 하며 입지를 다져갔다.

  달콤 쌉싸름한 작가의 삶
  그는 아직 성장 중이다. 특히 최근 두 번째 책  『요즘 남자 요즘 연애』를 출간하고 난 후엔 한 단계 더 발전한 모습을 보였다. “두 번째 책을 낼 때 담당 편집자가 제게 이런 말을 했어요. ‘당신이 첫 책을 냈을 때보단 생각이나 문장이 훨씬 잘 다듬어지고 무거워졌다’며 ‘좋은 작가가 될 수 있을 거다’라고요.”

  지금은 많은 팬을 보유한 그이지만 한때는 냉혹한 평을 받기도 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게 첫 책을 냈을 때만 해도 소수 블로거에게 엄청난 혹평을 받았어요. 당시엔 잘 이해가 안 갔지만 지금 와선 그들이 제게 무엇을 기대했는지, 제가 왜 그 기대에 미치지 못했는지를 알 것 같아요.”

  소년의 꿈은 서른이 넘은 지금 이뤄졌다. 동네 책방의 모든 책을 읽지는 못했지만 언젠가 자신의 책을 서점 한켠에 놓겠다는 꿈은 현실이 됐다. “남들은 PD가 되고 싶어서 안달이지만 오히려 그곳에서 나와 제 이야기를 하는 지금이 행복합니다. 이제는 퇴근, 월급으로부터 자유로이 제 세계를 그려나갈 수 있으니까요. 제게 요구된, 기대된, 강요된 틀이 아닌 저만의 색을 찾은 것 같아요.(웃음)” 자신만의 색을 찾은 그는 이제 더 이상 누군가의 모양틀에 갇힌 ‘범생이’가 아니다. 그는 꽤 달짝지근한 자신만의 삶을 맛보고 있었다.
 
 
  -책소개
①『연애전과』
①『연애전과』
 
  최근 개그우먼 장도연이 청소년페스티벌에서 추천하기도 한 책. 실전 연애의 비법을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등 교과과정으로 재구성한 성인들의 연애자습서다. 어릴 적 초등학교 전과 같은 참고서를 만들고 싶었다는 저자의 말처럼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희망적 메시지가 아닌 100%
 ②『요즘 남자 요즘 연애』
현실 속 이야기가 담겼다.
 
 ②『요즘 남자 요즘 연애』
  ‘머니투데이’에 연재된 칼럼 ‘김정훈의 썸’을 소설로 각색해 요즘 남자들의 생각과 연애관을 더욱 생생하게 전달한다. 나름대로 철학 있는 바람둥이, 늘 허탕만 치는 낭만파, 연애보단 자기 앞날이 우선인 현실파, 그리고 연애 휴지기 중인 생각 많은 관찰자의 이야기다. 삼십 대 초반 남자 넷의 수다를 엿볼 수 있는 김정훈 판 ‘섹스 앤드 더 시티’.
 
  [Q&A]
  Q. 전직 ‘연애 칼럼니스트’로서 연애를 ‘잘’한다는 건 뭘까요.

  A. 행복한 거죠. 행복은 뜨거울 수도 있고 차가울 수도 있어요. 연애를 잘 하는 건 혼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온도를 상대방과의 소통을 통해 경험할 수 있는 게 아닐까요. ‘함께’ 그림을 그리고 있는 그 시간 자체에 감사하고 그 시간을 이어갈 수 있는 거죠.(웃음)
 
  Q. 작가라는 직업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A. 우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거죠. 10년 뒤든, 30년 뒤든 언제나 말하고 싶은 걸 말하고 쓰고 싶은 걸 쓸 수 있다는 게 매력이에요. 또한 작품을 완성할 때마다 자신의 한계를 발견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또다른 과제를 던져줄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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