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17.6.8 목 18:50
인터뷰중대신문이 만난 사람
자비에 리오데 교수(프랑스어문학전공)운명처럼 다가온 Corée, 그의 가슴에 오래 남다
신예솔 기자  |  yesol@cau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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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6.04  23:5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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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김다혜 기자
서라벌홀 복도를 거니는 자비에 리오데 교수(프랑스어문학전공)를 마주친다면 훤칠한 키와 준수한 외모에 한 번쯤 뒤돌아볼지도 모른다. 한때 모델로 활동한 적도 있는 그는 사실 어느덧 중앙대에서 20년이 넘게 강단에 서고 있는 교수이다. 프랑스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던 청년이 그때까지만 해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작은 나라 한국에 반하기까지. 한국에 대한 무한한 애정 하나로 자신조차 상상하지 못했던 삶을 살고 있는 자비에 리오데 교수를 만나보았다.

 
우연히 구경 왔던 한국
마치 내 나라인 듯
첫눈에 반하다
 
다시 돌아갈 날까지
중앙대에서 머무르고 싶다
 
 
 
 
겉모습으로만 그를 판단한다면 아마 그에 대해 아무것도 깨닫지 못할 것이다. 누군가의 눈엔 그저 외국인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그는 20년이 넘도록 한국에 머물며 IMF 금융위기, 2002 월드컵 개최 등 한국 사회의 많은 변화를 몸소 체험해왔다. 이제 한국이 내 나라처럼 느껴진다는 자비에 리오데 교수. 서라벌홀에 위치한 연구실에서 만난 그는 누구보다 한국을 사랑하고 그만큼 날카롭게 한국 사회를 꿰뚫고 있었다.
 
  -처음 한국 땅을 밟은 계기는.
  “1989년에 처음 한국을 방문했어요. 전년도 한국에서 88올림픽을 개최하면서 유럽에 홍보가 많이 됐었거든요. 그때 처음 한국이라는 나라를 알게 됐고 어떤 곳인지 궁금해졌죠.”
  -89년의 서울은 어땠나.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외국인을 찾아보기 힘들었어요. 지나가는 곳마다 저를 신기해하고 쳐다봤죠. 하지만 정말 좋은 곳이었어요. 호기심에 온 여행이었지만 넉 달 동안 한국에 머물며 완전히 반해버렸죠.”
  -어떤 점이 그렇게 좋았나.
  “우선 사람들이 너무 좋았어요. 어딜 가든 저를 진심으로 대해줬고 친절했죠. 다들 마음이 넓고 순수했어요. 그리고 여행 막바지였던 10월 요한 바오로 2세가 한국에 방문했어요. 천주교 신자인 저는 여의도 광장에서 열린 미사에 참가했죠. 그때 그곳에서 앞으로 한국에서 살아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뭐라고 설명하긴 힘들지만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다는 묘한 감정이 들었죠.”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맞아요. 사실 저조차도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운명적으로 다가온 감정이었어요.(웃음)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낯선 땅에 왔다가 돌아갈 때쯤엔 평생 살고 싶어진 거니까요.”
 
프랑스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던 그는 한국 여행 후 고국으로 돌아가 프랑스외대 한국어과에 입학한다. 한국을 좀 더 알고 싶기 때문이었다. 늦은 나이였지만 그는 1학년부터 다시 시작해 약 2년 반 동안 한국어를 공부하고 나서 1992년 운명처럼 사랑에 빠졌던 그곳, 한국을 다시 찾는다.
 
  -다시 한국에 찾을 땐 아예 정착할 마음이었던 건가.
  “그렇죠. 한국에서 살 생각으로 들어왔어요. 석 달 이상 머무르기 위해선 어서 취직해야 했죠.(웃음)”
  -중앙대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운이 좋았죠. 처음 한국에 들어와 학원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같이 일하던 선생님의 사촌이 중앙대 교수님이셨어요. 마침 프랑스어문학전공의 교수 자리가 나서 1993년부터 중앙대 학생들을 가르치게 됐어요.”
  -어느덧 강단에 선 지 23년째다.
  “중앙대는 물론 한국에 있는 웬만한 원어민 교수님 중에선 제가 가장 오래됐을 걸요.(웃음)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엔 오랫동안 교수로 남을 생각은 없었어요. 지금 제 모습은 전혀 상상하지 못한 미래죠.”
  -원래 무얼 하려고 했나.
  “프랑스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만큼 한국 기업에 취직하려 했어요. 열심히 면접 보러 다녔죠. 중앙대에 머무르면서도 솔직히 처음 몇 년간은 마음이 딴 곳에 가 있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교수로 지금까지 남게 됐나.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이 일이 잘 맞는다는 걸 깨달았어요. 막연히 경영학을 공부했지만 알고 보니 제 성격은 경영과는 거리가 멀더라고요. 경영학에서는 옷을 어떻게 팔지 연구하지만 저는 필요한 사람에게 옷을 그냥 줄 사람이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가르치는 일은 자신이 가진 것을 아낌없이 주는거였어요. 수업이 끝나고 다가와 궁금한 걸 묻는 학생들을 보며 내가 무언가 도움을 줄 수 있구나라는 생각에 기뻤죠. 한편으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무실에서 한국인들에게 둘러싸여 한국어로 업무를 볼 생각을 하니 눈앞이 아찔하기도 했고요.(웃음)”
  -중앙대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추억이 있다면.
  “1998년부터 2014년까지 17년 동안 여름방학 때마다 안성캠퍼스에서 열었던 프랑스어 캠프가 기억에 많이 남아요. 계절학기 수업은 아니었고 학생들과 함께하기 위해 특별히 만든 프로그램이었죠.”
  -어떤 캠프였나.
  “5주 동안 교수와 학생들이 다 같이 안성캠퍼스에서 지내며 프랑스어로 생활했어요. 하루에 4시간 동안 프랑스어 수업도 진행하고요. , 사실 그건 핑계고 나머지 20시간을 어울려 놀았죠.(웃음) 매일 함께 밥을 먹고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당시 함께 했던 학생들은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17년이면 많은 학생들이 거쳐 갔겠다.
  “규모가 꽤 컸어요. 전국적으로 홍보한 덕분에 다른 대학의 학생들도 오고 대만에서 직접 찾아온 학생도 있었죠. 많은 때는 약 120명 정도가 모였어요. 프랑스문화원 등에서 후원을 받아 프랑스 현지에서 직접 요리사를 초청해 안성캠퍼스 조리실에서 한 달 동안 불어로 요리 수업을 받고 현지 기업인들도 초청해 함께 어울렸죠. 캠프가 끝날 때는 프랑스 현지 기업으로 바로 인턴을 떠나거나 매년 몇몇을 뽑아 부상으로 한국-파리 왕복 비행기 표를 주기도 했어요. 다들 진심으로 즐거워했죠.”
  -뜻깊은 시간이었겠다.
  “다시 돌아가도 그보다 더 알차게 진행할 수는 없을 정도로 좋은 캠프였다고 생각해요. 프랑스어 실력이 느는 것은 물론 함께 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죠.”
  -어쩌다 캠프가 끝이 났나.
  “안타깝게도 해가 갈수록 참여 인원이 줄어들더라고요. 2010년이 지나면서부터는 여름방학 때 아예 프랑스로 떠나는 학생들이 늘어났죠. 결국 2014년을 마지막으로 캠프를 그만둬야 했어요.”
  -아쉬움이 컸겠다.
  “어쩔 수 없죠. 그래도 그렇게 훌륭한 캠프가 있었다는 걸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어요. 지금은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걸로 만족하고 있죠.(웃음)”
 
‘Bonjour! 안녕하세요, 자비에입니다.’ 자비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은 강단뿐만이 아니다. 매일 KBS 라디오에서도 자비에를 만날 수 있다. 현재 그는 드림하이’, ‘최고다 이순신등 한국 드라마를 통해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외국인들에게 한국말을 가르치고 있다. 낯선 한국 땅에서 자신의 적성을 발견한 후 각종 방송과 라디오에서 맹활약하며 재능을 100% 발휘하고 있는 자비에 리오데 교수. 한국을 향한 사랑만큼 어느덧 그는 한국과 프랑스를 잇는 민간 외교관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EBS에서 프랑스어 강사로 활동한 경력도 있던데.
  “어떻게 알았어요?(웃음) 1999년부터 자비에와 함께라는 코너를 맡아 출연했었어요. 전국 각지 대학교에서 프랑스어를 공부하는 학생들을 찾아가 촬영을 진행했죠. 퀴즈도 풀고 상황극 연기도 하고요.(웃음) 지금 다시 봐도 재밌는 방송이에요. 종종 강의 자료로도 활용하고 있죠.”
  -진행에 연기까지 다재다능한 것 같다.
  “정말 즐겁게 녹화했어요. 한국과 프랑스를 잇는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죠. 프랑스인이라는 점을 살려 유익한 콘텐츠를 전달할 수 있어 뜻깊었어요. 덕분에 EBS 강의 말고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맡았죠.”
  -또 어떤 활동을 했나.
  “8년 전부터 KBS 라디오에서 프로그램을 맡고 있어요. 처음엔 매일 1시간씩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코너를 맡았죠. 제가 직접 국악, K-pop 등을 공부해 프랑스어로 방송했어요. 당시 가요 프로그램 대기실을 방문해 소녀시대, 아이유 등 유명한 한국 가수들을 인터뷰하기도 했죠. 이소라, 박정현 등 실력 있는 가수들을 스튜디오로 초대해 라이브도 듣고요. 그 후엔 오감만족이라는 여행 프로그램을 3년간 했어요. 목요일에 한 주 강의를 모두 끝마치고 금요일부터 주말 동안 혼자 여행을 다녀온 뒤 직접 대본을 쓰고 방송을 했죠. 덕분에 울릉도 빼곤 전국 각지를 다 가봤어요.(웃음)”
  -웬만한 한국인보다 다양한 경험을 한 것 같다.
  “아마 그럴 거예요. 한국을 소개하는 여러 프로그램을 맡으면서 한국의 정치, 사회, 문화를 두루 공부할 수 있었고 전국 방방곡곡 여행을 다니면서 많은 경험을 했죠.”
 
1989년 처음 한국을 방문해 운명처럼 한국과 사랑에 빠졌다는 그. 군사정권의 긴장감이 아직 감돌던 시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어느덧 20년이 넘게 한국에 머무르고 있는 그의 눈에 비친 한국은 어떤 모습일까. 자비에 리오데 교수가 바라본 한국 사회의 변화를 들여다보았다.
 
  -한국에 머무른 지 어느덧 20년이 넘었다.
  “시간이 참 빨리 가요.(웃음) 한편으로 안타까운 건 그렇게 오랜 시간 머물렀어도 아직 한국 사회에서 저는 외국인일 뿐이라는 거예요. 아마 앞으로 20년을 더 머물러도 그런 시선은 바뀌지 않을 것 같아요. 한국인의 눈에 저는 그저 이방인일 뿐이죠.”
  -답답할 때도 많겠다.
  “그렇죠. 많은 걸 공유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이에요. 그나마 제가 한국에서 살기 시작한 1990년대 초반에 비하면 외국인을 많이 찾아볼 수 있지만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 외국인은 아웃사이더에 머무르는 느낌이에요. 아마 외국인에 대한 인식 변화는 매우 더디게 이뤄질 것 같아요.”
  -처음 한국을 찾았던 89년과 비교해 가장 많이 변했다고 느끼는 점은 무엇인가.
  “개인주의가 심해졌다고 느껴요. 전엔 모르는 이를 만나도 인간적으로 존중하는 느낌이 있었는데 점점 자신과 자신이 아는 몇몇 사람 외엔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아요. 특히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에게는 더더욱이요. 카페에서 주문할 때도 커피 한 잔 주세요라고 말하곤 받아들고 쌩 나가버리잖아요. 식당의 아주머니들께도 따로 말을 걸지 않죠. 감사하다거나 수고하다는 말 한 마디가 인색해지는 것 같아요. 한국 사회에서 개인주의가 심화하는 반면 타인을 존중하는 인간다움이 사라지는 것 같아 정말 안타까워요. 무엇보다 이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면서 여러 문제가 일어나는 것 같고요.”
  -그렇다면 오늘날 프랑스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
  “현재 프랑스인에게 가장 중요한 건 바로 가족이에요. 가족과의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고 가족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죠. 프랑스에도 맞벌이 부부가 많지만 저녁에는 다들 집에 돌아가 가족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나눠 먹어요. 그게 가족 아닌가요?(웃음)”
  -한국에서 볼 수 있는 가족 풍경과는 사뭇 다른 것 같다.
  “잘 알고 있어요. 프랑스에 비하면 한국의 집은 마치 잠만 자는 호텔 같죠. 대부분 회사 동료, 친구들과 늦게까지 시간을 보내다 밤늦게 또는 새벽이 다 되어서야 집에 들어가잖아요. 집에 잘 들어왔는지 서로 겨우 확인만 하고 다시 방에 들어가고요. 함께 하는 동안에는 주로 다 같이 텔레비전을 보며 별 대화 없이 시간을 보내지 않나요? 프랑스도 결코 완벽한 나라는 아니지만 최근 한국의 그런 변화는 정말 안타까워요. 가정에서부터 친밀한 관계를 맺고 여러 배움이 이뤄져야 하는데 가족 공동체가 무너진 것만 같죠.”
  -한국 사회에 대한 분석이 남다르다.
  “그만큼 한국 사회에 애정이 있으니까요. 관심이 없다면 결코 알 수 없었을 거예요. 처음 한국에 와서 느낀 사람들의 모습과 비교하면 요즘 들어 빠르게 변하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처음 한국에 온 순간과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을 얘기하며 마치 사랑에 빠진 이처럼 행복한 표정을 짓던 그는 한국 사회의 이면을 날카롭게 꼬집으며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그만큼 한국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기 때문일 테다. 우연히 들렀던 한국에 반해 어느덧 한국에서 인생의 절반을 보낸 그. 앞으로 그의 계획은 무엇일까.
 
  -프랑스엔 자주 방문하나.
  “매년 가고 있어요. 이번 여름방학에도 두 달간 프랑스에 다녀올 예정이죠. 특히 한국은 여름에 너무 더워서 잠을 잘 수가 없어요. 그때만큼은 한국이 싫죠.(웃음) 프랑스로 피신해야 해요.”
  -가면 주로 뭘 하나.
  “가족과 함께 지내요. 부모님께서 연세가 좀 있으셔서 곁에 머무르며 이것저것 하면서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하죠. 집이 숲 속에 있어서 차분히 생각을 정리하기도 좋고요. 아침에 일어나면 마당에 사슴이 찾아오기도 하고 밤엔 깜깜한 하늘 말곤 아무것도 없어 조용해요.”
  -한국과는 매우 다른 분위기일 것 같다.
  “정반대죠. 그래서 좋아요. 서울 도심을 벗어나 프랑스에서 머무르는 동안 어떻게 보면 힐링을 하고 오는 거죠. 옛날엔 방학 때도 프랑스에 가지 않고 안성캠퍼스에 내려가 캠프를 열었지만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 더더욱 힐링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웃음)”
  -언젠가는 프랑스로 돌아갈 생각인가.
  “중앙대에서 교수 생활을 마치고 나면 프랑스로 돌아갈 생각이에요. 한국을 너무 사랑하지만 나이가 더 들면 가족이 있는 곳에서 지내고 싶어요.”
  -그때쯤 한국은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글쎄요. 어떤 모습이든 좋은 기억으로 남을 거예요.(웃음) 한국에서 머무르는 동안 많은 사랑을 받았으니까요. 28년 전 처음 한국 땅에서 느꼈듯 한국은 언제까지나 제 마음의 고향으로 남을 겁니다.
 
  당신에게 중앙대란?
  “한국에 들어와 우연히 인연을 맺게 된 중앙대는 제가 처음으로 교수 생활을 시작한 곳이자 앞으로도 평생 머무를 곳이죠. 한 곳에 오랫동안 몸담으며 쌓이는 끈끈함이야말로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평생 인연을 맺은 가족은 바로 중앙대에요.(웃음) 지난주엔 저희 전공 주점에서 제 첫 제자 세 명을 만났어요. 당시만 해도 군대에 다녀온 복학생이었던 90, 91, 92학번 친구들이었죠. 시간이 흐른 후에도 다시 학교에 찾아온 학생들을 보며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정든 중앙대에서의 많은 추억은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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