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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태 일러스트레이터(시각디자인과 96학번)성실한 반항아, 그의 도약엔 끝이 없다
임지원 기자  |  jela04089@cau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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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5.30  04:2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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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한 장, 한 장을 새롭게 그리고 있어요. 몇십년을 그렸지만 변화를 멈추지 말자는 마음가짐이에요.” 프로는 달랐다. 정상의 자리에서도 쉬지 않고 도전하는 김형태 일러스트레이터(시각디자인과 96학번). 남의 게임 캐릭터를 그려주던 그는 어느새 자신의 게임을 만들고 있었다.
 
   
 
 
‘과장된 욕망’을 그리다
터부에 맞서는 일러스트레이터
 
궁극적인 꿈을 향해
끊임없이 내민 도전장
 
기억하는가. 2012년을 강타한 ‘블레이드&소울’을 그린 일러스트레이터는 수백만 유저의 영웅이자 ‘신’이 되었다. 육감적인 몸매의 캐릭터로 특징되는 현재 게임 일러스트계의 태초이기도 한 김형태 일러스트레이터. 그의 손끝을 거친 작품만 해도 ‘창세기전3’, ‘마그나카르타’ 등 다수이다. 수천만명의 추억이 담긴 대작을 그려냈음에도 그의 머릿속엔 아직도 새로움이 가득하다. 만화가로 시작해 게임 일러스트레이터, 아트 디렉터를 지나 현재는 ‘SHIFT-UP(시프트업)’ 대표로서 새롭게 도전하는 김형태 일러스트레이터를 만나봤다.
 
   
 
  -다소 육감적인 김형태만의 일러스트 화풍이 눈에 띈다.
  “그리고 싶은 걸 대놓고 묘사하는 스타일이죠. 욕망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과장된 욕망을 표출하는 거예요.”

  -보수적인 분위기에서 이런 그림을 그리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그쵸. 제가 그림을 그리던 90년대엔 검열 때문에 만화책이 까맣게 칠해져 출판되기도 했으니까요. 만화 시장의 자유가 박탈당한 시절이었죠. 하지만 전 그게 너무 싫었어요. 모두가 터부시되는 것을 감추기 바쁜 분위기 속에서 이를 타파하는 펀치를 날려버리고 싶었죠. 그러다 보니 캐릭터의 몸매가 특히 부각되는 자세와 의상을 그리게 됐어요.”

  -현재의 게임 일러스트계는 김형태의 영향을 받았다고 봐도 무방한데.
“과찬이죠. 다만 욕망을 감추고 살던 90년대 사람들에게 제 그림이 공감을 일으켰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좋아해주고 공감해줬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과감한 그림체가 사랑받고 있는 거죠.”

  -일각에선 여성의 성 상품화라는 비판도 있다.
“물론 그게 현실에 악영향을 끼친다면 제한해야겠죠. ‘창작의 제한’이 아닌 ‘접근의 제한’이 필요해요. 창작 자체를 막아선 안되죠. 오히려 성을 매력적으로 상품화해서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소비시키는 시장은 건강한 시장이라고 봐요. 우린 기본적인 의식주도 상품화를 하고 있잖아요. 이성을 좋아하는 감정을 매력적으로 포장해서 파는 걸 상품화라는 표현해 비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예술의 영역에서만큼은 터부시되지 않아야 다양성도 지켜질 수 있죠.”

  -원래 좀 반항적이었나.
“청개구리 심보가 좀 있었죠. 숨기거나 감추지 않고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터부에 정면으로 대항하는 데 쾌감을 느꼈어요. ‘너네 가슴 좋아하지! 그럼 가슴을 이따만하게 그려주지.’ 이렇게요. 아주 옛날부터 그랬죠. 실제로 제가 글래머러스한 여성을 좋아하는 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냥 과장되게 그려버리는 거예요.”
 
  -언제부터 그림을 그렸나.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던 것 같아요. 당시에 그린 그림을 나중에 발견했는데 지하철의 차축, 전동기, 손잡이까지 다 그려놨더라고요. 이후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줄곧 그림을 그렸죠.”

  -그림을 정말 좋아하는 학생이었나보다.
“자든지 그림 그리든지 둘중 하나였죠. 별명이 ‘잠신’일 정도로 잠을 굉장히 많이 잤어요. 엎드리지도 않고 정자세로 앉아서 잘 수 있었죠. 그러다가 쉬는 시간이 되면 벌떡 일어나서 그림 그리고, 만만한 수업시간에 또 그림 그리고.(웃음)”
 
  그림쟁이 소년은 계속해서 그림을 그리기 위해 미대에 진학한다. 1996년, 중앙대 시각디자인과에 차석으로 입학해 정통코스를 밟아 나가는 듯 했으나 수업시간에 플러스펜 하나로 그린 그림 하나가 그의 운명을 바꿨다. 그는 ‘20년차’ 휴학생이다.
 
  -20년째 휴학 상태라고 들었다. 가능한 이야기인가.
“지금은 제적이 되지 않았을까요.(웃음) 2학년에 올라가기 전에 휴학한 뒤로 이렇게 오랫동안 복학을 하지 않게 될 줄은 몰랐죠. 1학년 땐 장학금도 탈 정도로 나름 모범생이었는데 말이에요.”

  -왜 휴학을 했었나.
“1학년 2학기 수업시간에 플러스펜으로 그린 만화가 당선돼서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맥(MAC)’을 사야 했어요. 그런데 등록금까지 함께 낼 형편은 안됐죠. 시각디자인에선 UI(User Interface), UX(User experience) 디자인, 타이포그래피, 광고디자인 등 그림 그리는 것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걸 배우기도 했고요. 어쩔 수 없이 휴학하고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죠.”

  -그럼 바로 만화가로 데뷔한 건가.
“아뇨. 학원폭력물이라는 장르가 문제시되어 연재하지 못했어요. 만화산업에 대한 규제가 심하던 때였으니까요. 제 실력 부족도 있었겠지만 상심이 컸어요. 결국 만화를 접고 컴퓨터 컬러링을 공부하면서 일러스트레이션을 배웠어요. 마침 CG가 도입된 때라 컬러 작업이 쉬워졌죠. 그러던 중 게임회사의 눈에 띄어서 취직하게 된 거죠.”

  -게임회사에 입사하며 게임 일러스트레이터의 길을 걷게 됐나.
“게임회사에서 그림도 그리고 디지털 컬러링도 했어요. 그리고 게임 일러스트레이터를 매력적으로 느끼기 시작했죠. 흑백으로 그리던 만화보다 훨씬 흥미로웠어요. 그런데 회사가 부도나면서 준비하던 첫 참여작은 묻혀버렸죠.”

  -유감이다. 이후엔 무얼 했나.
“이후 일러스트레이션과 3D 기술을 연구하는 데만 주력했어요. 당시는 컴퓨터 컬러링뿐 아니라 3D 디자인을 다루는 툴도 막 출시됐을 때죠. 출시되는 모든 것이 새로웠던 시기예요.”

  -일러스트레이션은 어떻게 공부했나.
“거의 독학이었죠. 컴퓨터 동호회 같은 데서 사람들에게 물어보며 함께 공부했어요. 누구에게나 디지털 컬러링은 처음 접하는 분야였으니까요. 덕분에 여러 실험적인 시도를 해보며 특색있는 페인팅을 선보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대학은 당시 큰 의미가 없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은 않아요. 역설적이게도 당시 저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느꼈던 UI, UX 디자인을 배운 게 지금 와서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요즘 모바일게임을 만들게 되면서 제가 직접 메뉴를 디자인하고 있거든요. 버튼 크기나 위치는 어느 정도 되어야 하나, 버튼을 눌렀을 때 반응이 어떻게 되나 등 전반적인 부분을 컨트롤 하는 일이죠. 색채론 등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 필수적인 이론도 공부하게 됐고요.”
 
   
▲  NC 소프트에서 게임 ‘길드워2’ 제작 당시 동료들과 함께.
 
  원석은 점점 빛을 발했다. 게임회사 ‘소프트맥스’에서 ‘창세기전2 외전: 템페스트’의 엔딩과 캐릭터 일러스트 외주를 맡게 된 계기로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일러스트레이터로서 본격적인 발걸음을 내딛는다. 그는 소프트맥스에서 게임 ‘창세기전3’과 ‘마그나카르타’ 제작에 참여한 후 NC소프트로 이직해 아트 디렉터로서 ‘블레이드&소울’을 맡게 된다.
 
  -‘창세기전’ 시리즈를 통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소프트맥스에 처음 입사해서 그린 창세기전2 외전은 기존에 존재하던 틀을 크게 벗어날 수 없다는 한계가 있었지만 창세기전3엔 제 스타일을 온전히 녹여낼 수 있었어요. 캐릭터와 무기 수백개에 제 혼을 거침없이 쏟아 부었던 것 같아요.”

  -일러스트레이터로선 최정상에 오른 셈이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그렸나.
“순전히 그림에 대한 ‘애정’이었다고 생각해요. 좋은 그림을 관찰하며 그 장점들을 흡수하려고 노력했죠. 눈길이 가는 그림이 있다면 ‘왜 이 그림은 좋아 보이는가’를 끊임없이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 장점들을 조합해 제 색을 입힌 것뿐이에요. 가장 중요한 건, 나만 좋은 그림이 아닌 남들도 좋아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일러스트를 그리는 거죠.”

  -남들이 좋아하는 일러스트라.
“제가 좋아하는 그림을 남들도 좋아해 준다는 건 큰 축복이기도 해요. 특히 게임 일러스트는 순수예술이 아닌 상업예술이기 때문이죠. 다 함께 즐거워할 수 있어야 해요. 이타적인 거죠. 이런 면에선 오히려 상업예술이 더욱 순수하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마그나카르타와 블레이드&소울에 이르러서는 아트 디렉터로서 거듭나기도 했다.
“일러스트레이터로서만 활동하다가 지휘·감독을 하게 됐죠. 마그나카르타 땐 평소 해보고 싶었던 3D 작업을 직접 구현해 볼 수도 있었어요. 공부를 많이 해야 했지만요. 소프트맥스를 나와 NC소프트의 블레이드&소울 제작에 참여했을 땐 원화부터 3D 모델링까지 모든 비주얼을 관리할 뿐 아니라 프로그래밍과 엔진 작업에도 관여했어요. 당시 최대 80명의 디자이너와 함께 일했었죠.”

  -어떻게 아트 디렉팅의 영역까지 넘어가게 됐나.
“더욱 많은 영향을 끼치고 싶었어요. 기본적으로 일러스트레이션은 기획자의 생각을 시각적으로 표현해내도록 도와줄 뿐이거든요. 자기가 그리고 싶은걸 그리기보단 남이 그리고 싶어 하는 그림을 그리는 거죠.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어느 정도 성과를 이룬 후엔 좀 더 많은 과정에 참여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어요.”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좀 더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아트 디렉터가 되려면 그림 하나만 잘 그려선 부족해요. 게임 전반의 그래픽 구현이나 3D 자체를 게임 시스템과 접목시켜 실제로 작동할 수 있게 만드는 엔진에 대한 개념까지 이해해야 하죠. 한마디로 게임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굴러가는지를 꿰뚫어 파악해야 하죠.”

  -원래 아트 디렉팅에 욕심이 있었나.
“하다 보니 내가 하고 있는 일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단순한 만화를 그리다가 캐릭터, 무기 등을 그리는 게임 원화가가 되고,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었다가 게임 비주얼 전반에 관여하는 아트 디렉터가 된 거죠.”

  -블레이드 소울에 얽힌 일화가 있다면.
“팬 미팅을 한 적이 있어요. 근데 고등학생들이 정말 많더라고요. 한 고등학생이 와서는 게임 너무 재미있게 하고 있다고 사인을 받아가더라고요. ‘근데 이거 미성년자 이용 불가 게임인데….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거야!’ 하면서 사인해주고 보냈죠.(웃음)”
 
  승승장구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게임 일러스트의 최정상에서 성공한 아트 디렉터까지 거침없이 달려온 그에게 뜻밖의 제동이 걸렸다. 이미 보석이 ‘되어버린’ 원석은 더 이상 무엇이 ‘되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뒤늦은 슬럼프에 삶의 방향성을 잃어버린 그는 1년 반 동안 인생의 가장 힘든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왜 뒤늦게 슬럼프가 찾아왔나.
“제게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밤새워 공부하고 박봉으로 힘들게 일할 때가 아니었어요. 오히려 성공적으로 블레이드&소울을 마친 후가 제겐 가장 힘든 시기였죠. 만족할 만한 게임도 만들어 봤고 상업적으로도 작품으로서도 인정을 받았던 그때, ‘이제 뭐 하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정신적으로 힘들어지더라고요. 죽을 만큼 공허했죠.”

  -다른 사람에겐 배부른 소리로 들릴 수 있다.
“지금은 배부른 소리로 들릴 수 있겠지만 여러분들에게도 언젠간 이 시기가 반드시 올거예요. 저도 야간작업을 하던 때가 가장 힘든 줄 알았죠, 뭐. 하지만 몸이 힘들다고 힘든 게 아니더라고요. 그리고 더 이상의 기술적 발전은 원화의 본질과 멀어지는 것은 아닐까란 고민도 있었죠.”

  -기술의 발전으로 원화의 본질과 멀어진다는 게 무슨 말인가.
“이미 현재 기술력으로는 제 그림의 디테일을 넘어서는 3D가 구현되고 있어요. 더 이상의 발전을 추구한다면 이젠 제 그림의 한계를 넘어서서 실사에 가까운 3D를 만들어내야 해요. ‘한계를 벗어나 새로운 분야를 개척’, ‘일러스트레이션 본질로의 회귀’ 이 두갈래길에서 정체된거죠.”

  -고민의 결과는 무엇인가.
“결국 제 그림 스타일을 고수하고 일러스트레이터의 본질을 유지하자는 결론이 섰어요. 그리고 게임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할 당시 더 많은 영향을 끼치고 싶어서 아트 디렉터가 되었다면, 이번엔 아예 기획, 개발, 아트 등 게임 전체를 지휘·감독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회사를 차려 제가 만들고 싶은 게임을 직접 만들면서 기존 그림 스타일을 유지하기로 했죠.”
 
  -그렇다면 지금의 ‘꿈’은 무엇인가.
“지금의 꿈은 회사가 살아남아서 ‘꿈을 꿀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죠. 회사가 5년 이상 성장하고 매출을 내면 그땐 내가 만들고 싶은 걸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에요.”

  -요즘은 어떤가.
“당장 눈앞의 현실들이 절 괴롭히니까 고민할 틈조차 없어요. 당장 다음달 월급을 주는게 가장 큰 숙제죠.(웃음)”

  -더 이상 공허할 틈은 없겠다.
“행복해요. ‘창업 한번 안 해보고 인생을 접는 건 너무 아까운 일이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금 굉장히 만족하고 있어요. 평생 해보지 않던 일을 하는 거니까. 정말 더 일찍이 창업하지 않은 게 아쉬울 정도예요.”
 
   

데스티니차일드의 컨셉과 전투 방식 등에 대한 회의가 이뤄지고 있다.

 
  만화가로 시작해 게임 원화가, 일러스트레이터, 그리고 아트 디렉터까지.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게 도전장을 내밀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의 고민의 결과는 늘 새로운 도전이다. 지금은 ‘시프트업’ 대표로서 도전을 시작하는 김형태 일러스트레이터, 그는 현재 시프트업의 첫 작품으로 모바일 게임인 ‘데스티니차일드’를 준비하고 있다.
 
  -준비하고 있는 데스티니차일드는 어떤 게임인가.
“데스티니차일드는 캐릭터가 살아 움직이는 모바일 게임이에요. 마왕의 후손인 주인공이 차기 마왕을 뽑는 마계쟁탈전에 참여하게 되며 일어나는 일들을 다룬 현실 기반 판타지게임이죠. 주인공은 자신을 도와줄 동료를 콜렉팅 해요. 소원이 있는 사람과 계약을 하고 그 사람의 욕망을 ‘차일드’로 재탄생시켜요. 그런 차일드들을 성장시켜나가면서 모으는 게임이죠. 올해 하반기 출시를 준비하고 있어요.”

  -재미있는 세계관이다.
“그쵸. 영혼을 얻기 위해 욕망의 본질과 대면하는 게임이에요. 그 와중에 여러 인간군상을 보게 되기도 하고 자신과 같은 목적을 가진 악마후보생들과 싸우는 이야기를 그리는 게임이죠.”

  -우리나라 게임업계의 현황은 어떤가.
“세계적으로는 이미 게임산업이 할리우드 영화산업을 뛰어넘은 지 오래고 중국의 경우 문화적, 상업적 증진을 위해 게임업계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죠. 그러나 우리나라는 정부의 강력한 탄압과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생존해나가는 잡초 같은 개발자들 덕에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거예요. 우리도 지원책이 충분했다면 세계 정상에 오를만한 실력자들이 많은데 말이죠. 실력자들이 다들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죠.”

  -게임이 사회 문제의 원인이라는 부정적 선입견이 있다.
“그건 후진국적인 책임 전가에요. 사회문제에 대한 책임을 게임이라는 매체에 떠넘기고 ‘우린 할 건 다했어’라는 면죄부를 스스로 가지는거죠. 이렇게 비뚤어진 생각들은 ‘셧다운제’ 등의 규제로 나타나기도 해요. 셧다운제로 인해 무너지는 한국 게임업계와 청소년의 인권침해는 신경도 안쓰고 말이에요. ‘당연히 게임이 문제다’는 사고에서 벗어나 본질을 탐구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게임에 대한 차별도 사라지게 될 거라 믿어요.”

  -마지막으로 게임 일러스트레이터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우리나라 게임업계는 굉장히 강해요. 소비시장의 규모와 정부의 열악한 지원에 비해 훨씬 질높은 작품이 수두룩하죠. 또한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현실에도 불구하고 스마트기기의 확대와 가상현실, VR 등이 개발되고 있어 앞으로가 기대되는 상황이에요. 여러분의 꿈과 멋진 도전을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당신에게 중앙대란?
“안성캠퍼스에서 동기들과 공부하던 때가 생생하네요. 짧지만 소중한 인연과 배움을 준 곳이죠. 지금도 친구들을 만나면 ‘함께 졸업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이야기를 하곤 해요. 너무 일찍이 사회생활을 하느라 끝까지 함께하지 못한 게 아쉽기도 하죠. 대학이란 아무리 들렀다 가는 곳이라 하더라도 제겐 큰 의미가 있어요. 이렇게 와서 인터뷰도 해주시고 특강도 불러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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