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저명한 사회학자인 울리히 벡은 그의 저서 『위험사회』를 통해 현대사회가 성찰과 반성없이 근대화를 이뤘다고 지적했다. 그는 산업화와 근대화를 통한 과학기술의 발전은 현대인들에게 물질적 풍요를 주었지만 이와 함께 새로운 위험도 수반했다고 주장했다. 더 복잡해진 현대사회의 위험은 예측할 수 없어 그 파괴력도 상상 이상이라고 분석했다.
 
  기술 문명의 최전선에 있다는 대학 연구실도 마찬가지였다. 1999년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실험실에서 대형 폭발 사고가 일어났다. 화재는 15분 만에 진압됐지만 현장에서 실험 중이던 대학원생 3명이 온몸에 중화상을 입었다. 결국 그 학생들은 운명을 달리했다. 
 
  17년이 지난 지금, 대학 연구실의 안전 경고등은 아직 켜지지 않았다. 2012년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이 발간한 ‘연구실 안전관리 정책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상위 30개 연구중심대학의 안전관리 전담 인력은 평균 52명(최소 11명~최대 76명)이다. 하지만 그에 비해 한국 대학의 안전관리 전담 인력은 1~2명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타업무를 겸임하고 있어 업무부담이 큰 상황이다. 특히 대학의 경우 매년 졸업생과 신입생이 발생해 안전관리팀의 역할이 더욱 막중하다.
 
  이러한 안전관리 실태의 원인은 모호한 법체계에 있다. ‘연구실 안전환경 조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연구주체의 장은 연구활동종사자에게 연구실 사용에 따른 안전성 확보 및 사고예방에 필요한 교육·훈련을 실시해야 한다. 하지만 안전교육에 관한 세부적인 설명은 찾아볼 수 없다. 대학본부가 교육 당사자에 따른 개별적인 교육 내용을 포함하고 학부생에 대한 오프라인 강의를 제공할 의무는 없다는 것이다. 실례로 중앙대는 현재 대학원생에게만 연구실 안전에 관한 오프라인 강의를 제공하고 학부생에게는 온라인 강의만을 제공하고 있다는 실정이다.
 
  정부에서 진행하는 현장점검은 잘 만들어진 ‘현장’만을 점검하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는 2007년부터 현장지도·점검 활동을 통해 대학 실험시설을 관리 감독해왔다. 감독 시 미래부 담당 공무원과 국가연구안전관리본부 소속 안전 전문가 등 3~5명으로 구성된 팀은 연구실의 안전관리 규정 이행 여부를 점검한다. 하지만 이러한 현장점검은 불시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한 달 전부터 대학과 실험실에 미리 통보한 뒤 진행된다. 대학에겐 그럴듯한 연구실 환경을 만들 한 달의 시간이 주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미래부의 안전 감사가 ‘보여주기식’은 아닌지 의심하게 한다.
 
  연구실 안전관리는 연구원은 물론 대학 내 구성원의 생명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경시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연구실 안전관리에 대한 모호한 법체계와 실효성이 의심되는 현장점검 제도는 연구실 안전관리에 대한 국가의 시선을 의심케 한다. 울리히 벡이 강조했듯 연구실 안전사고의 위험은 일어나기 전에는 측정할 수 없다. 측정 불가능한 위험성을 감소시키기 위한 최우선 과제는 사전에 마련한 안전장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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