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강남역 인근에서 일어난 여성혐오범죄 뉴스를 보며 잊고 있던 영화가 불현듯떠올랐다. 26년 전 개봉한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는 성폭행을 당한 여성을 죄인 취급하는 사회 분위기와 피해 여성 의 인권 문제를 공론화한 영화였다. 2014년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린 또 한 편의 영화 <한공주>에서 그려진 현실도 1990년의 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전 잘못한 게 없는데요.”라고 말하던 한공주의 목소리와 표정을 잊을 수 없다.

▲ 『이 時代의 사랑』, 최승자 지음, 문학과 지성
문득 최승자의 시가 읽고 싶어졌다. 최승자의 첫 시집『이 시대의 사랑』은 1981년 에 출간되었다. 80년 5월, 국가라는 공권력이 자행한 끔찍한 학살이 있었지만 보도조차 제대로 되지 않던 시절의 일이다. 이 시집에 흘러넘치는 지독한 자기모멸과 자기부정과 상처는 그 시절의 자화상과도 같았 다.“ 일찍이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라는 자기부정의 선언과“ 마른 빵에 핀 곰팡이/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아직 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년 전에 죽은 시체”「( 일찍이 나는」)에 자신을 비유할 수밖에 없었던 지독한 자기모멸은 그녀의 첫 시집을 상처의 기록이자 광주의 알레고리로 읽게 했다.

“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서른 살은 온다./시큰거리는 치통같은 흰 손수건을 내저으며/놀라 부릅뜬 흰 자위로 애원하며.”「( 삼십세」)라고 시인이 노래했던 서른 살을 지나 사십대의 마지막을 건너가고 있는 내게 최승자의 시는 여전히 아프다.“ 너의 목소리가 쇠꼬챙이처럼 나를 찔렀고/그래, 나는 소리 없이 오래 찔렸다.”「( 청파동을 기억하는가」) 폭력의 시절에 맞서“ 깨고 싶어/부수고 싶어/……/ 비명을 지르며 까무러치고 싶어/까무러쳤 다 십년 후에 깨어나고 싶어”「( 나의 시가되고 싶지 않은 나의 시」)라고 절규했던 시 인의 목소리가 들려올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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