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사건을 처리할 때 늘 나에게 용기와 힘을 주는 문구가 있다.

“법정소송이란 가해자를 처벌하고 사회적으로 비가시화 되어있는 여성억압을 사회적인 이슈로 만드는 과정이다. 또한 그 억압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만들어왔던 사회적 기제를 부당한 것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과정으로서 사회적 변혁운동의 성격이 강하다.”(Mackin-non Catharine)

우리나라는 1993년 서울대학교에서 벌어진 조교 성희롱 사건을 통해 ‘성희롱’ 개념이 생겨났다. 이는 성희롱을 성적자율권 침해로서 사회적 문제로 인식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변혁의 주체로 나선 피해자의 증언과 피해자를 지지하고 연대하는 활동가들은 법정투쟁을 통해 정조나 순결의 상실이라는 통념을 뒤집고 여성 인권의 관점에서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개념으로 만들었다.

‘성폭력방지 특별법’이 시행된 지 22년이 지난 지금도 성폭력은 우리의 일상 가까이에 매순간 존재한다. 오늘날 성에 대한 통념과 여성에 대한 편견, 혐오는 더욱 강고해졌다고 볼 수 있다.

성폭력은 다른 폭력과 달리 직접적인 성폭력 피해 자체보다도 피해 이후 발생하는 2차 피해에 지배적인 영향을 받는 ‘젠더폭력’이다. 성폭력과 다른 범죄의 차이가 있다면 ‘피해자가 비난받기 쉽다, 피해를 증명하기 어렵다, 평생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것 같다, 피해자에게도 책임이 있다, 피해자의 인생을 평생 망치는 것 같다’라고 한다.(한국성폭력상담소, 2015)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통념은 우리 안에 공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지그문트 바우만에 의하면 사회적 통념의 불평등은 그것을 뒷받침하고 타당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암묵적인 전제들로서 지금까지 숙고되거나 검토된 적이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통념에 대한 믿음은 우리 안에 계속 이어지고 있으며 강력하게 존재한다.
‘술에 취한 너도 책임이 있다, 네가 적극적으로 저항했더라면 성폭력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봐야 이로울 게 없다, 피해를 공개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와 같은 통념이다. 이러한 통념으로 인해 공동체 안의 구성원들이 성폭력 피해가 피해자의 잘못으로 유발된 것처럼 피해자를 비난하고 피해자에게 죄책감과 수치심을 준다. 이렇게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심각한 2차 피해이며 성폭력을 더욱더 강고하게 재생산하는 결과를 낳는다.

성폭력 피해를 당한 여성의 가치평가나 피해자에 대한 비난 논리, 피해자가 자신의 경험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리기 전에 규정해버리는 사회 분위기를 우리 모두 바꾸려고 노력할 때 성 평등한 대학문화로 거듭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논의의 장과 실천력이 중요하다. 또한 학교 차원에서 구성원들의 인식 개선을 위해 젠더와 관련된 교과목을 설치하거나 다른 학문과 젠더 교육을 연계하여 체계적으로 운영하는 것도 중요하다.
강경화 전문연구원
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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