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약동을 찬미한 르네상스
신성과 이성을 조화시킨 거장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평론가인 로맹 롤랑은 “천재가 어떤 인물인지 모르는 사람은 그를 보라”고 말했다. 여기서 그는 바로 이탈리아의 화가이자 조각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다. 지난 18일 103관(파이퍼홀)에선 서울캠 학술정보팀의 주최로 미켈란젤로를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파리1대학에서 역사와 미술사를 전공한 안현배 강사(성공회대 교양학부)는 ‘예술로 떠나는 유럽여행-르네상스의 거장 미켈란젤로’를 강연했다.
 
 
 
르네상스, ‘살아있음’을 쫓다

장 레옹 제롬의 그림인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 에로스의 화살을 맞고 생명체로 거듭나는 갈라테이아에게 피그말리온이 발뒤꿈치를 들어 올린 채 격정적으로 입 맞추고 있다. 상반신에서부터 시작한 생명의 기운이 이제 막 갈라테이아의 종아리로 퍼져나가는 순간, 피그말리온은 자신의 손에 닿아오는 따스한 살결의 감촉을 통해 그녀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듯하다.

살아있음. 르네상스의 조각가들은 ‘살아있는 조각상’을 끊임없이 열망했다. ‘실제와 다름없는 인간’이자 ‘궁극의 아름다움’은 조각가들이 그토록 예술품에 담고자 했던 르네상스의 정신이었다. 그리고 그 한복판에 미켈란젤로가 있었다. 안현배 강사는 “미켈란젤로야말로 르네상스의 시대정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천재화가다”며 “그의 작품 속에선 ‘살아있는 생명체의 재현’과 ‘미의 극치에 대한 표현’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방치된 대리석, ‘도시의 심장’이 되다
미켈란젤로는 방치돼 있던 대리석을 <다비드>로 탄생시켰다. 본래 다른 조각가의 작품을 위한 것이었던 대리석은 하단 부분에 생긴 균열로 오랜 시간 방치돼 있었다. 하지만 젊은 천재 조각가에게 그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미켈란젤로는 대리석을 아름다움과 힘의 상징으로 둔갑시켰고 지금도 <다비드>는 피렌체의 중심에 서 있다.

안현배 강사는 미켈란젤로가 <다비드>를 통해 드러내려고 했던 바는 당시 피렌체가 처한 상황과 밀접한 관련을 지닌다고 설명했다. 당시 피렌체는 종교적 압제자인 사바나롤라를 몰아내고 공화정을 수복한 뒤였다. 또한 프랑스의 위협으로 도시 전체가 위축됐던 시절이기도 했다. 이에 지도자들은 피렌체의 독립의지를 드러내고 도시의 자존감과 위상을 회복시키기 위해 미켈란젤로에게 조각상을 의뢰한다.

미켈란젤로는 <다비드>를 통해 골리앗과의 전투 직전인 다윗을 형상화했다. 팔에 곤두선 섬세한 핏줄은 전투를 앞둔 긴장을 드러내며 투석기 끝을 그려진 손에선 강인함이 나타난다. 다비드의 감정이 절정을 이루는 곳은 그의 눈동자에 있다. 다비드의 부릅뜬 눈에서는 강렬한 용기와 함께 적을 향한 분노가 일렁인다. 안현배 강사는 “다비드에서 풍기는 기상은 마치 어떠한 권력에도 굴복하지 않겠다는 피렌체의 독립에 대한 의지와 자존감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철저한 계산으로 탄생한 ‘고요한 슬픔’
성경 속 마리아는 죽은 예수가 매장되기 전 마지막으로 아들을 품에 안아본다. 이때의 마리아와 예수를 많은 미술가들이 작품으로 형상화했지만 그중에서도 최고의 찬사를 받는 <피에타>는 미켈란젤로가 24세에 완성한 작품이다. 안현배 강사는 “<피에타>가 최고의 평가를 받는 이유는 철저한 계산 끝에 그만의 해석을 작품에 담아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피에타>의 묘미는 그 섬세함에 있다. <피에타>를 위에서 바라보면 예수의 몸이 마리아의 흘러내리는 천 밖을 단 한 부분도 벗어나지 않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미켈란젤로가 30세가 넘은 아들의 시신을 품에 안은 어머니가 어색하거나 힘겨워 보이지 않도록 예수의 시신은 조금 작게, 마리아의 옷은 풍성하게 조각했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죽음에 이른 아들을 자신의 품에 온전히 안고 있으며 어머니 무릎 위의 예수는 마치 요람 위에 태아와 같다.

미켈란젤로는 스스로를 화가가 아닌 조각가라고 칭했을 만큼 조각에 집요한 정성을 쏟았다. 그는 어느 각도에서 바라봐도 완벽한 작품을 만들고 싶었으며 수많은 <피에타>가 범람하는 시대에서 그만의 <피에타>를 탄생시키고자 했다. 결국 그의 손끝에서 완성된 <피에타>는 슬픔과 비탄을 표현하는 가장 완벽한 ‘전형’이 됐다.

‘우리 모두’는 심판의 대상이다
미켈란젤로는 <최후의 심판>의 인물들을 ‘천국과 지옥’이라는 양분된 공간이 아닌 심판자 예수를 중심으로 한 공간에 배치했다. 심판을 향해 돌진하고 있는 인물들을 통해 관객은 우리 모두가 심판의 대상임을 깨닫고 자신이 언젠가 심판대로 향할 순간을 무의식적으로 상상하게 된다.

미켈란젤로도 예외는 아니다. <최후의 심판>의 정중앙에 있는 예수의 바로 오른쪽 아래에는 제 살가죽을 들고 있는 바르톨로메오가 있다. 미켈란젤로는 바르톨로메오가 들고 있는 벗겨진 가죽에 자신의 얼굴을 그려 넣었다. 그림을 그린 자신조차 심판의 대상이라는 점을 결코 잊지 않고 죽음과 죄에 대한 공포를 일그러진 살가죽 위에 형상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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