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온 시간을 돌이켜보면 호들갑이었던 ‘삼양라면 공업용 쇠기름 사건’, ‘쓰레기 만두 사건’, ‘포르말린 통조림 사건’ 등은 모두 오보였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로 국내 최대 시장점유율을 갖고 있던 라면회사 하나가 존폐의 위기에 내몰리게 됐죠. 쓰레기 만두 사건으로 인해 한 업체 사장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습니다.

  ‘페이스북’ 페이지, ‘중앙대 어둠의 대나무숲’에 지난 2일 올라왔던 글은 큰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글의 내용은 수년 전 한 학과의 남학생에게 두 차례에 걸쳐 성폭행을 당했다는 충격적인 내용인데요. 자신 말고 피해자들이 더 있다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성폭행 가해 남성을 뒤늦게라도 잡아야 한다는 댓글 수백 개가 달렸죠. 경찰 수사를 요구하는 의견부터 아직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만큼 기다려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지난 11일 해당 페이지 관리자는 한편의 글을 게시합니다. 당시 작성글의 내용이 사실이 아니고 서로 오해한 부분이 있었다는 내용이었죠. 이와 함께 최초 작성자의 사과문을 첨부했습니다. 사과문에선 ‘작성된 글은 제가 직접 작성한 글이 아니라 공감해준 사람들이 각색한 글이다’며 ‘자신의 의도와 달리 가해자로 지목된 이에 신상이 유출된 것에 대해 사과한다’는 내용이 담겼죠. 하지만 이미 사건은 일파만파로 퍼져 외부언론에까지 공개된 후였습니다. 가해자로 지목된 이는 이미 신상이 알음알음 공개된 상태였죠. 더 큰 문제는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어둠의 대나무숲(어대숲)’은 필터링 없는 ‘대나무숲’을 만들겠다는 구호와 함께 지난해 4월 만들어진 페이스북 페이지입니다. 어대숲은 익명의 페이지 관리자에게 별도의 제보함 링크로 제보를 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죠. 언론에 회자된 이번 사건 때문이었을까요? 중앙대 어대숲의 경우 타대에 비해 압도적인 숫자인 약 1만여명이 페이지에 ‘좋아요’를 누른 상태입니다.

  어떤 글들이 올라오고 있었을까요? 제보의 유형은 크게 13가지로 분류됩니다. 어대숲 관리자는 운영상의 경험에 따르면 ▲분실물 ▲사랑 고백 ▲학내 이슈(PRIME 사업, 광역화 등) ▲정치 이슈 순으로 글의 숫자가 많다고 밝혔는데요. 관리자는 “분야를 막론하고 비판하는 글이 대부분이다”며 “카페 사장, 팀플 동료, 선배, 이성, 연인, 교수, 행인, 대학본부 등 비판의 대상은 다양한 편이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특성들 때문인지 어대숲의 생명력은 길지 못합니다. 지난 21일 기준으로 페이스북에 ‘어둠의 대나무숲’을 검색했을 때 약 47여개의 대학 어대숲이 나왔는데요. 하지만 제대로 운영되는 페이지는 드물었죠. 특히 지난 3월 1일 인하대 어대숲은 운영 종료를 알리기도 했습니다. 관리자는 종료를 알리는 글에서 ‘의도는 익명성을 바탕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 마음껏 하며 재미있게 놀자는 것이었다’며 ‘하지만 일련의 일들로 어대숲의 본래 의도가 많이 변질됐다’고 폐지 이유를 밝혔죠.

  실제로 이번 일을 계기로 중앙대 어대숲 관리자 역시 폐쇄를 포함해 여러 방안을 고려 중이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관리자는 “현재 온갖 욕설을 받고 있다”며 “이미 어대숲은 처음의 의도와 어긋나게 흘러가고 있고 존재 가치는 퇴색됐다고 봐 폐쇄를 포함한 여러 조치를 고려 하고 있다”고 말했죠. 자유로운 의사소통이라는 본래 가치는 이미 무색해져 버린 셈입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가 아니었다’는 몇몇 사건들은 결국 모든 글들까지 의심케 했습니다. SNS 상의 확인되지 않은 정보는 곧 인터넷신문과 대형언론사로 확산됐고 그 와중엔 분명 선의의 피해자도 있었을 겁니다. 어대숲은 존폐의 기로에 섰죠. 당나귀 귀인 줄 알았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가 아니었습니다. 우린 이 책임을 도대체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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