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같은 작품을 스스로 죽인 자들의 술잔을 기억하며…
  • 김채린 기자
  • 승인 2016.05.23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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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동료 감독이 자기 자신의 작품을, 자식 같은 작품을 스스로 죽이는 모습을 봤습니다. 우리는 주류에서 화려한 잔치를 벌이고 있지만 우리의 동료 감독 누구는 지금 쓴 소주를 마시며 비통해져 있을 겁니다.” 지난 2012년 제33회 청룡영화제에서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최민식의 수상소감이었습니다. 당시 대형 상업영화에 밀려 영화 <터치>를 조기 종영해야만 했던 민병훈 감독에 대해 언급한 것이죠.
 
  하지만 4년이 흐른 지금도 이 문제는 여전해 보입니다. 지난 1873호 기획을 준비하며 만났던 취재원들은 하나같이 ‘다양성 영화를 상영하는 곳이 너무 부족하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사실 기자는 다양성 영화에 대해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다양성 영화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에서 시작한 기획이었죠.
 
  그렇게 기획을 준비하며 <45년 후>라는 다양성 영화가 보고 싶어진 기자는 곧바로 상영시간표를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오전 8시40분과 오후 3시50분 단 두 차례 상영에 그쳤습니다. 그곳은 ‘강남 최초의 예술영화관’이라 불리는 곳인데도 말이죠. 게다가 이 영화를 상영하는 곳은 서울에서 단 6곳 뿐이었습니다. 이는 비단 영화 <45년 후>만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지난 2015년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가 예술영화전용관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방식을 바꾼 이후 다양성 영화에 대한 접근성 문제는 더 심화됐습니다. ‘관객의 바뀐 영화 소비패턴을 반영한 것’이라고 그 취지를 밝혔지만 결과는 예술영화전용관들의 연이은 폐업이었죠. 실제로 지난해에는 ‘씨네코드 선재’가, 지난 12일엔 ‘스폰지하우스 광화문’이 문을 닫았습니다. 이에 영진위는 예술영화에 한해 스크린쿼터를 도입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여전히 구체적인 시행방안은 나오고 있지 않은 상황이죠.
 
   지난 기획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기자는 다양성 영화에 대해 관심을 가질 기회가 없었을 것입니다. 자의 반, 타의 반이었지만 어쨌거나 기회가 있던 것이죠.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관객들은 다양한 영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합니다. 이는 소비자의 마땅한 권리이기도 하죠. 상업적인 이익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면 이익을 창출하지 못하는 영화는 사라집니다.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영화 산업은 특정 장르나 대형 배급사에 의해 선택된 영화들만 남게 되겠죠. 관객은 선택하고 싶어도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당연한 소리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동안 누군가에 의해서 끊임없이 제기돼온 문제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장르의 다양성이 무너지고 난 후에는 더 늦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때는 이미 우리의 선택권은 사라진 뒤니까요. 더 늦기 전에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상업영화와 다양성 영화가 공존할 수 있는, 보다 진정성 있는 논의를 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요. 쓴 소주 대신 모든 영화인과 관객들이 웃으며 소주 한잔 기울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고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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