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성찬 교수는 에리히 프롬의 이론에서 현재를 변화시키는 힘을 찾았다

2016 중앙게르마니아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불안은 인간이
자유를 버리게 했다

 

자유를 지키려면 깨어 있음과
동시에 조직돼 있어야 한다


1933년,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의 수상으로 취임했다.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으며 수백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장본인인 히틀러는 당시 유럽 국가 중 가장 민주주의적인 제도를 갖췄다던 독일에서 선거를 통해 정권을 장악했다. 왜 독일 국민들은 히틀러를 선택한 것인가. 이에 에리히 프롬은 사회심리학적 분석을 통해 인간이 스스로 자유를 버리게 된 원인을 분석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나치가 유럽의 대부분을 점령한 1941년 발간된 『자유로부터의 도피』에 고스란히 담겼다. 지난 20일 302관(대학원) 301호에서 에리히 프롬과 그의 저서인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주제로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안성찬 교수가 강연을 진행했다.
 
  자유는 축복인가, 저주인가
  근대 이전 인간의 직업, 미래, 생활 등은 모두 신분과 교리 등에 구속돼 있었다. 인간 개개인은 그 자체로 규정될 수 없었고 그가 속한 신분, 가문, 종교의 일원으로서만 존재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의 미래를 염려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정해진 신분과 교리에 맞춰 살기만 하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세를 벗어나 근대로 접어들며 그동안 사회의 모든 것을 규정하던 신의 권위와 신분의 속박은 사라졌다. 근대의 기치인 자유와 이성은 인간의 자율성과 주체성을 주장하며 신과 신분이 사라진 빈자리를 차지해갔다. 그 결과 인간은 더 이상 신분 등에 얽매일 필요 없이 자신의 이성을 통해 스스로 선택을 내릴 수 있게 됐다. 이는 당대의 지성인들에겐 축복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인간은 자유로울 수 있도록 저주를 받았다”는 장 폴 사르트르의 말처럼 인간은 자유를 불안해했다. 삶의 순간순간은 선택으로 가득했고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자신의 선택이 불러올 결과는 어떨지에 끊임없는 불안을 느껴야 했다.
 
  에리히 프롬은 이러한 불안을 ‘소극적인 자유’의 속성이라고 불렀다. 소극적인 자유는 근대가 부여한 자유로 종교·신분·가문 등 인간을 둘러싸던 ‘원초적 유대’로부터 벗어나 인간이 독립된 개인으로 정의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소극적인 자유에 놓인 개인은 완전히 독립된 존재로서 각종 선택의 상황에 직면하고 이에 대해 오롯이 개인으로서 대응해야 한다.
 
  에리히 프롬이 제시한 ‘자유로부터의 도피’는 소극적인 자유에서 ‘적극적인 자유’로 이행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 적극적인 자유는 소극적인 자유의 상태에서 한발 더 나아가 자기실현을 이룬 상태다.
 
  그러나 누구나 적극적인 자유로 이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기실현을 이루기 위해선 충분한 자원이 필요하므로 자원을 갖추지 못한 개인은 적극적인 자유로 향할 수 없으며 적극적인 자유로의 이행에 실패한 개인을 기다리는 것은 끊임없는 불안 상태다. 이는 결국 개인을 자유로부터 도피하게 만든다. 자유로부터의 도피의 또 다른 이름이 불안으로부터의 도피인 이유다.
 
  히틀러는 왜 자유 위에 탄생했나
  1930년대 독일은 세계 대공황의 영향으로 경제 기반이 완전히 붕괴된 상황이었다. 실업률은 하루가 다르게 치솟았고 중산층은 몰락해 빈민이 넘쳤다. 자기실현을 이룰 자원은 사회에서 사라져 버렸고 몰락한 중산층은 극도의 무기력함과 불안에 시달려야 했다. 이로 인해 몰락한 중산층에게 자유란 불안과 고립감, 무기력함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그들은 자유를 버리고 강력한 권위에 대한 의존을 선택했다. 권위 있는 지도자가 나타나 자신들을 이끌어주고 불안을 일소해주길 바란 것이다.
 
  스스로도 몰락한 중산층 출신이었던 히틀러는 강력한 권위를 갈망하는 몰락한 중산층의 이런 속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몰락한 중산층들의 불안을 해결해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모든 사회문제의 원인을 유태인에게 돌려 지지자들이 유태인에게 무자비한 권력을 행사하며 무력감을 해소하도록 하며 세를 불렸다. 그리고 1932년, 총선거에서 37.4%의 표를 얻은 나치당은 독일 제1당이 되기에 이르렀다.
 
  이런 현상을 지켜본 에리히 프롬은 파시즘 사회에서 발생하는 자유로부터의 도피는 ‘사도마조히즘(Sado-masochism)’의 형태를 띤다고 진단했다. 파시즘 사회에서 인간은 힘들게 얻은 자유를 포기해 스스로에게 고통을 주고(Masochism), 동시에 타인에게 고통을 주며 자신의 존재를 과시(Sadism)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유로부터의 도피가 꼭 파시즘 사회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에리히 프롬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인간이 스스로 자유를 버리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1934년 파시즘에 물든 독일을 떠난 에리히 프롬은 미국 망명 생활을 하며 미국인들이 ‘자동인형적 순응’ 상태에 접어드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경제 대공황 이후 포퓰리즘에 경도돼 버린 미국인들의 모습을 보며 에리히 프롬은 민주주의 시민의 주체성이 말뿐인 허상이 됐음을 알아차렸다.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으로서 미국인들은 주체적으로 삶을 선택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지만 실제로 그들은 당시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 등에 ‘자동인형처럼’ 순응하고 있을 뿐이었다.
 
  21세기에도 인간은 도망친다
  파시즘의 도래는 단지 역사 속 한 현상일 뿐일까. 미국 정치계의 괴짜 이단아 정도로만 취급받던 도널드 트럼프가 현재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가 된 것을 보면 그렇지만은 않다. 몰락한 중산층들의 심리를 통해 히틀러의 탄생을 분석했던 에리히 프롬의 이론은 도널드 트럼프에게도 해당된다. 도널드 트럼프를 유력 대통령 후보로까지 만든 것도 미국 사회의 몰락한 백인 중산층들이기 때문이다.
 
  1980년대 신자유주의가 미국 사회의 지배적인 체제가 된 이후 미국 사회의 빈부격차는 커져갔다. 특히 지난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미국의 중산층은 완전히 붕괴했다. 부는 1%에게 집중됐고 99%는 실업과 부채에 시달려야 했다. 이 상황에서 트럼프는 빈부격차 등 사회문제의 원인을 이민자들에게 전가하며 지지층을 형성했고 몰락한 백인 중산층들은 그의 권위적인 태도에 열광했다. 트럼프는 80년 전 히틀러 방식으로 대통령 자리를 노리고 있다.
 
  자유를 지키려면 깨어라
  1930년대의 독일과 2016년 미국의 예는 중산층의 몰락이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불러온다는 메시지를 남긴다. 이는 현재의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의 빈부격차는 날로 커지고 있고 중산층의 비율은 감소하고 있다. 경제민주화, 복지 등을 통해 탄탄한 중산층을 만들어내고 이를 재생산해내는 정치를 형성해가야 하는 이유다.
 
  이를 위해선 에리히 프롬이 자유의 이중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것과 같은 ‘성찰성’이 필요하다. ‘자신이 진정 자유로운지, 자동인형적 순응 상태에 있지는 않은지’를 스스로에게 되물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개인에만 머문 성찰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없다. 타인과의 연대를 통해 중산층의 확장과 자원의 평등한 분배를 지향하는 정치적 힘을 조직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사회는 자유를 향유하는 사회를 재생산해낼 수 있다. 자유로부터 도피하지 않는 사회는 이처럼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지속될 수 있을 때에만 보장 가능한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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