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둠 속을 걷고 있어요
독서를 통해 세상을 향한 창을
하나씩 열어갔으면 해요

이나영 교수(사회학과)의 연구실에 들어서면 한눈에 그가 사회과학계열 교수임을 짐작할 수 있다. 벽 하나를 가득 메운 페미니즘 서적과 인문사회분야 도서, 또 다른 책장에 꽂혀 있는 여성학 논집. 종종 학생들이 찾아와 책을 빌려 가는 이곳은 이나영 교수가 세상을 들여다보는 공간이다.

-주로 어떤 분야의 책을 읽나요.
“여성학은 간학문적이기 때문에 한 분과에 갇혀있을 필요가 없어요. 인문사회분야라면 이론서부터 주요한 문제작까지 가리지 않고 읽는 편이죠. 그중에서도 특히 젠더, 섹슈얼리티, 식민주의 분야에 관심이 많아요.”

-전공 관련 책이 눈에 띄어요.
“이게 다 평상시에 읽는 책이에요. 사회과학분야에서는 독서가 곧 학술 활동이니까요. 주로 제가 글을 쓰고 가르치는 비소설 장르의 책을 읽어요. 시나 소설이라도 사회성 있는 작품들을 골라 읽죠.”

-교수님만의 독서 습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책을 좀 지저분하게 읽어요.(웃음) 맘대로 줄을 긋고 빼곡히 포스트잇을 붙여 표시해두죠. 그렇기 때문에 필요한 책은 사서 읽는 편이에요. 남의 책을 망가뜨릴 순 없잖아요.”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학부에서 영문학을 전공할 때만 해도 여성주의는 잘 알지도 못하고 큰 관심도 없었죠.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스물넷에 결혼 해서 아이 둘을 낳았어요. 그때 산후조리를 하며 읽은 공지영의 『고등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 등이 이후 제 삶을 바꿔놨죠.”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
“전에는 생각지 못한 고민을 안겨줬어요. 수많은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싸울 동안 나는 무얼 했나 괴로웠고, 여성으로서 겪어야 했던 이중의 억압을 보며 굉장히 마음 아팠어요. 그 후 한국에서 강연을 하다 미국으로 건너가 여성학을 공부했죠. 마음껏 여성학을 공부하던 그때 참 행복했어요.”

-페미니즘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까요.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과 페트리샤 힐 콜린스의 『흑인페미니즘사상』을 추천해요. 『젠더 트러블』은 기존 페미니즘 사상에 경종을 울린 책이에요. 저 또한 많은 이론적 영향을 받았죠. 『흑인페미니즘사상』 역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어요. 저자가 억압의 당사자로서 부당한 차별을 고발하죠. 제가 탈식민주의에 관심을 갖게 된 책이기도 해요.”

-최근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는 무엇인가요.
“지난해 한일 합의 이후로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연구하고 있어요. 이번달에는 일본 대학의 교수들과 함께 중앙대에서 국제 세미나를 진행할 예정이에요. 위안부 문제는 거시적인 폭력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해요. 홀로코스트와도 연결되고요. 하지만 이 문제에 관해 굉장히 무지한 사람들이 많아요. 위안부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위안부’ 문제와 식민지 지배 책임』이라는 책을 추천해요.”

-학생들이 어떤 방식으로 책을 읽었으면 하나요.
“단순한 감상이 아닌 ‘실천적 독서’를 하길 바라요. 저마다 개인적인 이유로 책을 읽지만 개인의 삶은 곧 사회와 맞닿아 있죠. 결국 사회를 이해해야 해요. 여기서 이해한다는 건 수동적으로 사회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부당함’을 인지하고 그 원인을 고민해봐야 한다는 거예요. 부당한 사회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내가 무얼 할 수 있을지 고민할 때 비로소 ‘읽는 행위’가 ‘실천 행위’로 연결될 수 있죠. 자신이 관심 있는 주제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세상을 향한 통찰력을 길렀으면 해요.”

-마지막으로 교수님께 서재란 어떤 공간인가요.
“어둠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창을 내는 공간이에요. 여러 책을 읽으면서 알지 못한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게 다시 제 삶에 영향을 주죠. 언제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삶이 변하는 것처럼 어떤 책과 ‘조우’하느냐에 따라 또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되는 것 같아요. 책을 읽고 제 삶이 변한 것처럼요.(웃음)”
 
이나영 교수의 서재 들여다보기
 
 
 
 
 
 
 
 

 
 
 
 
 
 
이타가키 류타·김부자, 『‘위안부’ 문제와 식민지 지배 책임』, 삶창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구체적인 사실을 알 수 있어요. 문답식으로 쓰여 있어 쉽게 읽을 수 있고 위안부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책입니다.”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길사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 들어봤나요? 주변에서 흔히 볼 법한 아이히만이라는 인물을 통해 ‘악의 평범성’을 보여주는 책이에요. 관련 영화가 나와 있으니 함께 보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주디스 버틀러, 『젠더 트러블』, 문학동네
“주디스 버틀러는 기존의 섹스, 젠더, 섹슈얼리티의 개념을 흔든 사람이에요. 결코 쉬운 책은 아니지만 페미니즘 분야를 공부하고 싶다면 꼭 한번 읽어보길 바랍니다.”

페트리샤 힐 콜린스, 『흑인페미니즘사상』,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우리에게 부족한 ‘차별’에 대한 감수성을 키워주는 책이에요. 흑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던 저자는 ‘억압의 매트릭스’를 통해 인종, 젠더, 섹슈얼리티 등에 관한 차별을 깨닫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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