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정신의 집이면서 길입니다
다른 세상을 꿈꾸게도 하고
떠나게도 하죠

“글이란 게 참 묘한 것이, 괴로움과 고민을 해소할 뿐 아니라 아픔을 어루만져줘요. 정서가 순화되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그런 글의 힘이 있더랍니다.” 누구나 하나쯤 아픔을 안고 살아간다. 문학을 통해 아픔을 치유받은 가출 소년이 현재는 시인이 되어 시대의 아픔을 치유하게 되기까지. 시인 이승하 교수(문예창작전공)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문학을 처음 접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가출소년으로 떠돌며 방황하던 중 접한 책이 도스토옙스키의 『죽음의 집의 기록』입니다. 이 책을 통해 제 고민과 방황이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죠. 문학은 제게 구원의 손길이었습니다. 이 세상에 죄 없이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요. 어떤 고통도 견디고 극복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했죠.”

-교수님께 방황했던 시절이 있었을 줄은 몰랐어요.
“경찰관이던 제 아버지는 폭력 가장이었어요. 더군다나 사법고시에 합격해놓고 문학의 길을 선언한 형 때문에 당신의 분노는 극에 달했죠. 불똥은 고스란히 저와 제 동생에게 튀었어요. 아버지의 폭언과 폭력을 견디지 못해 고등학교를 두 달 다니다 집을 뛰쳐나왔죠.”

-유감입니다. 집에는 언제 들어가셨나요.
“독서실에서 4일을 연속으로 굶자 견디다 못해 형한테 찾아갔는데 그곳에서 아버지께 붙잡혔죠. 내려오는 길에 신문을 보니 사람을 찾는 코너에 제 얼굴이 실려 있더라고요.(웃음) 그러나 아버지는 여전했고 전 다시 집을 나와 부산, 대구, 춘천 등 전국 각지를 떠돌며 10대 후반을 보냈어요.

-그렇군요. 가장 영감을 준 작가는 누구인가요.
『이별 없는 세대』, 『5월에, 5월에 뻐꾸기가 울었다』를 쓴 볼프강 보르헤르트가 제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는 전쟁, 병마와 싸우면서도 수많은 작품을 남겼어요. 생명의 불꽃을 피워올려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을 제게 가르쳐준 작가죠.”

-‘글’ 중에서도 하필 시를 쓰게 된 이유가 있나요.
“사랑하는 누이동생이 있습니다. 동생은 시를 쓰고 싶어 했어요. 그러나 갑작스레 찾아온 병이 동생의 노래를 앗아갔습니다. 전 동생의 못다 이룬 꿈을 대신 이뤄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항상 동생의 몫까지 열심히 살며 열심히 시를 써야겠다고 다짐했죠. 그래서 제 시엔 불행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소재로 등장해요.”

-교수님께 있어 ‘시’는 정말 특별한 의미군요.
“그렇죠. 정신의 집이면서 길입니다. 다른 세상을 꿈꾸게도 하고 떠나게도 하죠. 학부 때 시를 가르쳐주셨던 구상 시인이 하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시(詩)란 말(言)로써 절(寺)을 짓는 행위다’, ‘참선하고 수양하는 청정한 공간을 만드는 행위이지 그저 말장난이나 하고 우스갯소리나 하는 것이 아니다’는 거예요. 묘하게도 시인을 짧게 발음하면 신이 되고 신을 길게 발음하면 시인이 됩니다. 시인은 세상을 창조한 절대자인 신의 위임을 받아 또 다른 세상을 만드는 건설자이자 기존의 세상을 언어로써 부수는 파괴자인 셈이죠.”

-하지만 요즘 학생들은 시를 잘 읽지 않아요.
“운문이 아닌 산문이 되어버린 요즘 시들 때문에 사람들이 시를 부담스러워 하게 됐습니다. 서구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은 현대시는 길고, 어려운 데다 음악성도 잃어버렸어요. 시는 산문과 달리 호흡을 할 수 있고, 운율과 리듬이 있다는 점이 매력인데 말이에요.”

-그렇다면 학생들은 어떤 시를 읽어야 할까요.
“생명력이 긴 시를 읽으세요. 이상화, 윤동주, 이육사, 한용운의 시처럼 여전히 읽히고 있는 시요. 반짝 각광받는 미래파 시는 10년 뒤만 해도 이미 지나간 시대의 시가 될 거에요. 유행을 타는 시가 아닌 시의 본령을 공부했으면 좋겠습니다.”

-서재에 책이 정말 많네요. 교수님께 서재는 어떤 의미인가요.
“제게 서재는 영혼의 안식처라고 할까요. 사색의 공간, 창작의 공간이면서 재충전의 공간입니다. 책이 있어서 늘 머물고 싶은 공간이죠. 이곳에서 대체로 죽은 분들의 책을 읽고 있습니다. 세계명작이니 고전이니 하는 것들을 말이에요. 그리고 그분들이 제게 이야기를 합니다. ‘너도 죽을 거야, 죽기 전에 열심히 읽고 써야지’라고요.”
 
이승하 교수의 서재 들여다보기
 
 
 
 
 
 
 
 
 
 
 
 
 
 
 
도스토옙스키, 『죽음의 집의 기록』, 열린책들
“19세기 중엽, 시베리아 감옥에서의 죄수 생활을 기록한 체험 소설이에요. 우울하면서도 괴이하지만 생생한 서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작가와 함께 고통에서 구원받게 되죠.”

볼프강 보르헤르트, 『5월에, 5월에 뻐꾸기가 울었다』, 강
“작가는 전쟁반대론자라는 이유로 군 감옥에 갇혀 젊은 나이에 디프테리아로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병상에서 남긴 작품은 후에 불멸의 작품으로 빛을 발하게 되죠. 이 책에서 그 위대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승하, 『감시와 처벌의 나날』, 실천문학사
“ 『감시와 처벌의 나날』은 제가 30년 동안 정신병원 면회를 다니고 10년 동안 교도소 교화사업을 다니며 쓴 시를 모은 시집입니다. 벽 속에 갇힌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죠.”

옥타비오 파스, 『활과 리라』, 솔
“시에 있어 음악성이 왜 중요한가를 말해주는 시론서입니다. 시의 역사는 곧 노래의 역사, 리듬의 역사, 음유시의 역사임을 말해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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