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지난해 한 영상을 보고 울컥했던 적이 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백악관의 대테러조정관이 청문회에 나와 한 발언 때문이었다. 그는 청문회에 나와 유족들에게 사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돼 감사하다는 말로 발언을 시작했다.

  이후 이어진 그의 말은 정부라는 거대 권력이 작은 개인에 용서를 비는 모습이었다. “여러분의 정부는 실패했습니다. 정부는 최선을 다했지만 국민을 보호하지 못했고 그렇기 때문에 최선을 다한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저는 이 실패에 대해 모든 사실이 규명되는 과정에서 여러분들의 이해와 용서를 구하고 싶습니다.” 기자는 이 영상을 통해 영화 <스파이더맨>의 명대사인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이상적인 말이 단지 영화 속 대사가 아님을 느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큰 힘을 지녔다는 자들은 책임을 회피하고 책임은 불균등하게 분배된다. 근래 산업계에 부는 구조조정 바람으로 인해 조선업계 노동자 수만명은 실업의 불안에 떨고 있다. 반면 산업계의 발전은 뒤로 한 채 기존의 방식만 답습해온 경영진, 전시성 정책엔 세금을 퍼부으면서도 장기적인 산업정책엔 무관심했던 정부는 구조조정 대상에서 자신들을 쏙 빼놓았다.
 
  이외에도 옥시 레킷벤키저는 검찰의 수사가 시작된 이후에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에게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세월호 참사가 있은 지 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책임자 처벌의 길은 요원하다. 한국 사회에서 기자가 본 영상과 <스파이더맨>의 대사는 환상일 뿐이고 책임은 오롯이 약자 개개인에게 전가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앙대는 어떠한가. 부실하게 시행된 광역화 모집 제도로 광역화 학생들이 입은 불이익은 상당하지만 책임의 흔적은 부재하다. 지난해 광역화를 추진했던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 임에도 책임을 지겠다고 나서는 자는 없다. 지난 2월부터 직을 수행하고 있는 현 교무처장이 광역화 학생들에게 사과한 것은 아이러니이며 책임을 지려는 대학본부의 진성성이 결여돼 있다는 증거다.
 
  누구 하나 책임을 지려는 자가 없으니 설명도 없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광역화 모집 제도를 준비하며 대학본부가 내걸었던 ‘다양한 전공탐색의 기회’는 이미 무색해졌다. 광역화 학생들을 초점으로 한 학사제도는 마련되지도 않았고 이들의 선발·지도 등을 담당하기로 한 단대별 광역화 운영위원회는 제대로 기능하지 않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어떤 이유로 광역화 모집의 부실화가 진행됐는지에 대해 학생들은 설명을 듣지 못 하고 있다. 대학본부는 서둘러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다. 결국 광역화 학생들의 불만과 불안만 남았다.
 
  중앙대는 미래를 선도하겠다며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미래를 선도해야 할’ 학생들이 마주한 것은 결과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는 게 상책이라는 태도뿐이다. 변화를 원한다면 변화를 신뢰하게 만드는 책임 의식을 먼저 보여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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