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철 교수는 각국의 예를 들며 뉴라이트 운동을 설명했다.
 
신자유주의 물결과 뉴라이트 운동
“기득권 유지 위해 국정화 추진”
 
지난 3일 303관(법학관)에서 ‘국가권력의 비대화-편향된 역사교육의 대안: 국정화 교과서?’ 강연이 사회학과 BK플러스 핵심사업팀, 사회학과 학생회 등의 주관으로 진행됐다. 이날 강연자인 경희대 김민철 객원교수(후마니타스 칼리지)는 뉴라이트 운동과 국가권력의 비대화 사이의 관계에 대해 설명했다.
 
  현재와 미래는 결국 ‘역사’다
  김민철 교수는 ‘국정화 교과서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물음으로 강연을 시작하며 역사는 곧 기억이라고 설명했다. 김민철 교수는 “우리는 미래의 일을 계획할 때, 그 일에 관련된 기억을 먼저 떠올린다”며 “제대로 기억할 수 없다면 제대로 계획할 수 없는 셈이다”고 말했다.
 
  또한 김민철 교수는 역사는 미래뿐 아니라 현재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김민철 교수는 “과거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없다면 현재의 현상에 얽힌 맥락을 이해할 수 없다”며 “기억은 이처럼 미래뿐 아니라 현재에도 영향을 미치는 만큼 뉴라이트 역사관에 치우친 국정화 교과서의 폐해도 크다”고 말했다.
 
  뉴라이트의 등장
  김민철 교수는 뉴라이트(신우익) 세력의 등장은 국제적 신자유주의 물결과 함께한다고 설명했다. 1970년대 들이닥친 세계적인 경제 불황에 미국과 영국은 신자유주의 체제로 들어섰고 이와 함께 뉴라이트 역사관이 형성됐다는 것이다. 이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시행과 동시에 영국과 미국의 뉴라이트 세력이 당시 위기의 원인을 역사교육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1979년 마가렛 대처는 영국사의 부정적인 면을 연구했던 사회주의자에 대해 ‘영국사를 구제받지 못할 운명·억압·실패의 시기로 서술하고 있는, 국가 자존심을 좀먹는 사람들’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김민철 교수는 대처의 이러한 발언은 한국 국정화 교과서에 찬성했던 이들의 논리와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뉴라이트 역사관은 1990년대에 들어 일본에서도 모습을 드러냈다. 김민철 교수는 그 배경으로 일본 사회의 내부적 요인을 제시했다. 당시 일본 사회는 버블경제 붕괴, 옴진리교 사건 등으로 사회 불안이 치솟는 상황이었으며 뉴라이트 세력이 사회 불안의 원인을 역사 교육으로 돌렸다는 것이다.
역사적 흐름에 반격한 한국의 뉴라이트
 
  김민철 교수는 한국 뉴라이트 세력의 등장은 지배 이데올로기의 약화와 함께한다고 주장했다. 1980년대에 들어오면서 노동·민주화 운동이 거세졌고 기존 지배 계층의 약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에 뉴라이트 세력이 지배계층을 두둔했던 것이다. 김민철 교수는 “약점의 핵심은 지배 계층의 식민지 시절 친일 행위였으며 이에 따라 기존 지배 계층의 정당성에 금이 갔다”고 말했다.
 
  뉴라이트 세력은 이러한 역사적 흐름에 대한 반격으로 등장했다. 김민철 교수는 뉴라이트 세력의 반격을 앞당긴 사건으로 노무현 정부의 ‘포괄적 과거청산 정책’을 강조했다. 포괄적 과거청산 정책은 노무현 대통령이 2004년 하반기부터 진행한 국가보안법 폐지, 과거사진상규명법 등이 중심인 ‘구체제’ 청산 작업이다. 김민철 교수는 “포괄적 과거청산 정책이 뉴라이트 세력에 큰 위협을 줘 뉴라이트 세력이 본격적으로 행동하게 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비대해진 국가권력, 역사를 만들다
  김민철 교수는 국정화 교과서 문제를 뉴라이트 역사관과 국가 권력의 비대화가 동시에 진행된 결과라고 말했다. 지난 2014년 표절 논란, 사실관계 오류, 이미지의 불분명한 출처 등으로 논란을 빚었던 뉴라이트의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채택률이 거의 0%에 이르렀다. 이에 뉴라이트 역사관에 우호적인 국가 권력이 국정화 교과서를 그 대안으로 제시했다는 것이다. 김민철 교수는 “뉴라이트 역사관이 교육계·학계에서 경쟁력을 잃자 국정화 교과서를 통해 뉴라이트 역사관을 제외한 다른 역사관을 제거하려는 것이다”며 “마치 기울어진 운동장의 경기에서도 패배하자 아예 판을 없애버리는 형국이다”고 설명했다.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